*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헌으로 부통령직을 폐지함. ** 국민투표는 선거에 포함되지 않으나, 편의상 기술함.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부 일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관계로 2016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했다.
본 템플릿(틀)은 변화의 시대의 공식 설정입니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선거 기록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2004년 4월 15일에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로, 60.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의원 정수는 299명으로, 외환 위기가 극복되면서 다시 15대 총선 기준으로 복원되었다. 이 선거부터 비례대표 의석 배분 방식이 1인 2표제로 교체되어 인물과 정당을 구분해서 투표할 수 있는 교차 투표가 이루어졌고, 또 올해는 공직선거법 개정에 따라 선거일이 목요일에서 수요일로 개정됨에 따라 이 선거가 마지막으로 목요일에 치러지게 되었다.
이 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민주노동당, 변화당 등이 참여했다. 선거가 치러진 2004년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로 정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으므로 이를 통해 대통령 탄핵 소추 이슈가 총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가 핵심이다. 각 정당들은 탄핵 3당의 열린우리당 심판 및 개헌저지선 확보, 열린우리당의 제1당(내지는 과반) 사수,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변화당의 10석 유지를 목표로 정했다.
선거 결과 열린우리당 151석, 한나라당 120석, 민주노동당 10석, 새천년민주당 9석, 자유민주연합 4석, 변화당 2석, 국민통합21 1석, 무소속 2석으로 나타나 열린우리당이 과반 확보에 성공했다. 노무현 탄핵의 주역인 새천년민주당과 자유민주연합은 군소로 추락한 반면 한나라당은 굳건한 지지층과 단일대오 구축으로 개헌저지선 확보와 함께 제2당을 유지했다.
민주노동당은 13%의 득표율로 10석을 흭득하며 진보정당 사상 최초로 원내 입성과 제3당 확보에 성공했고 16대 국회의 캐스팅보터를 맡았던 변화당은 원내 제3당에서 군소정당으로 전락하였다. 정몽준이 이끄는 국민통합21은 울산 동구에서의 당선을 토대로 원내를 유지하게 되지만 얼마 못 가 사라지고 만다. 이 외에도 녹색사민당, 사회당, 한국기독당, 민주공화당 등 각종 군소 정당들이 참여하였지만 1%를 받은 한국기독당을 제외하면 나머지들이 1%를 받지 못했다.
총선 이후인 한 달 뒤, 헌법재판소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심판에 대해서 일부 발언은 위법으로 인정되나 탄핵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탄핵이 기각되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무소속 당선자가 2명(신국환·최인기)으로 나타나, 역대 최저 인원의 무소속 당선자로 기록되었다.
전라남도 지역은 김대중의 영향이 강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어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의 경쟁이 예상되었는데, 김대중 본인은 새천년민주당의 기대와는 달리 중립을 지키면서도 우리당을 지지하는 듯한 행동을 했다고 한다.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당선된 초선 의원들은 108명이었는데, 대부분 386세대이거나 노동계에 뛰어들었던 인물들이다. 이를 두고 당론과 배치되는 행보를 보여주면서도 탄핵 역풍의 수혜를 받았다는 이유로 '탄돌이', '108번뇌'라는 별명이 만들어졌다.
한편 변화당은 열린우리당의 난입으로 간신히 샌드백 신세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이미 지지자들 대부분이 떠나간 상황에서 김민재 변화당 원내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한번만 기회를 달라'며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고 한다. 그래도 탄핵 세력 심판과 쇄신 예고에 대한 성의가 있었는지 대부분의 후보들이 낙선한 가운데 2석만 간신히 얻을 수 있었다.
여러분은 지금 변화의 시대 시즌 1을 보고 계십니다. 본 세계관은 '변화의 시대'의 공식 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