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헌으로 부통령직을 폐지함. ** 국민투표는 선거에 포함되지 않으나, 편의상 기술함.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부 일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관계로 2016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했다.
본 템플릿(틀)은 변화의 시대의 공식 설정입니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선거 기록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2008년 4월 9일에 치러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로, 역대 총선 최저 투표율인 46.1%를 기록했다. 의원 정수는 299명으로, 지난 총선과 동일하나 비례대표 의석이 2석 줄고 지역구 의석이 2석 늘어났다. 이번 선거에서는 공직선거법 개정에 따라 수요일에 치러진다. 참여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교체된 지 네 달만에 치러지는 선거로서, 공천 파동, 계파 갈등, 신당 창당 등 정치권에 불어닥친 정계 개편과 갈등 상황 속에서 신임 정부의 안정이냐 야권의 견제냐를 놓고 결판을 지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선거에서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변화당, 진보신당, 평화통일가정당, 한국사회당 등이 참여하였다.
선거 결과 한나라당 152석, 통합민주당 81석, 자유선진당 18석, 친박연대 14석,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 3석, 변화당 1석, 무소속 25석으로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했다. 물론 과반을 여유롭게 확보한 것이 아니라 턱걸이 과반이었기 때문에 일단 한나라당의 승리는 확실해보인다. 충청도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선진당은 18석으로 원내 교섭단체까지 가는데는 실패했지만, 제3당에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반면 친박 탈당파들이 주축이 된 친박연대는 14석으로 나타났지만, 무소속 계열 친박계 당선자는 12명으로 나타났다.
통합민주당은 기대치에 미달하는 81석으로 나타나 제1당 사수는 물론 개헌저지선 확보에도 실패했다. 민주노동당은 분당 이후 세가 위축되었는지라 지역구 2석, 비례대표 3석만 건지고 부진했다. 창조한국당의 경우 지역 기반이 약한데다 문국현 본인의 1인 정당에 가까웠음에도 3석을 확보해 명맥을 유지했고, 변화당은 서울에서 1석만 얻었을 뿐, 나머지 후보들은 전부 낙선하였다.
원외정당으로는 진보신당, 기독사랑실천당, 평화통일가정당, 국민실향안보당, 문화예술당, 한국사회당, 시민당, 신미래당, 직능연합당 순으로 나타났는데, 3%에 근접한 득표율을 얻은 진보신당, 2%를 얻은 기독사랑실천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은 모두 1.5%를 넘지 못해 등록 취소를 당했다.
선거 이후 4년 뒤에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동시에 치러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헌법 개정이 논의되었으나 쉽게 이뤄지기에는 불가능했다.
본 선거의 투표율은 46.1%인데, 선거 당일에 전국적인 우천이 그 원인이다. 허나 20대의 투표율이 28.1%, 세부적으로는 20대 후반의 투표율이 24.1%인 것을 감안하면 정치 구도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해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제4당이 된 친박연대는 이후 공천 헌금을 받아 비례대표 순번을 팔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었다. 때문에 양정례, 김노식, 서청원의 의원직이 상실되었고 지역구 당선자인 김일윤, 홍장표 또한 선거법 위반으로 제명된다.
이 선거 이후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과 여기에 촉발된 촛불집회로 지지율 하락을 겪었다. 만약 이 논란이 앞당겨지면 정부는 물론이고 여당에 큰 타격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으니 그야말로 운 좋게 승리하게 된 셈.
제17대 대통령 선거 이후 급격한 좌경화가 이루어진 변화당은 이 선거에서 기사회생에는 성공했지만 당선자는 광진구 갑에 출마한 ■■■ 밖에 없었다. 정작 13, 14대 총선에서 연속 승리를 거둔 중구에서는 대부분 야권 표로 넘겨져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의 당선을 막을 수 없었다.
여러분은 지금 변화의 시대 시즌 1을 보고 계십니다. 본 세계관은 '변화의 시대'의 공식 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