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부서진 마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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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독일
Südsee Deutschland Herzog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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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쥐트 씨 공국

오래전 남해에는 왕이 있었다. 그는 남해의 '독일마을'이라 불리는 곳에서 일어났으며 자신을 아리안인이라 지칭하였다. 아리안의 군대는 곧 남해 섬 전체를 정복했고 섬을 쥐트씨라 칭했다. 이때 왕의 권세는 여수와 사천까지 뻗쳤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왕의 손자 대에 가서 신안의 약탈자들이 마수를 펼쳐왔다. 그리고 왕은 그들에게 잡혀 사라졌다. 왕은 잡혀가며 한마디 말을 남겼다. '나는 반드시 돌아와 왕국을 재건하고 도둑들을 죽일 것이다!' 왕이 사라진 이후 신안의 약탈자들은 남해를 착취하며 염전을 조성하고 사람들을 노예로 잡아갔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 남해의 아리안들은 하나의 희망을 쥐고 있었다. 그것은 마지막으로 신안에게 용감히 저항했던 왕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왕은 돌아오지 않았고 신안은 남해를 거점으로 사략선을 운영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왕이 아닌 이들이 찾아왔다. 진해에 웅거한 해군은 신안의 전진기지인 남해를 점령하고자 했고 해무가 자욱한 어느날 남해에 상륙했다. 남해의 주민들은 해방자를 환영하며 그들 사이에 있을 남해의 왕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진해의 군인들 중에는 왕이 없었고 진해는 잠시 남해를 직할로 다스렸다. 진해의 직할통치기간중 많은 진해인들이 남해로 건너왔고 남해의 젊은이들은 군사훈련을 통해 훌륭한 바닷사람이 되었다. 꾸준한 신안의 침탈이 이어지던 어느날 진해인들은 사라졌다. 그들은 신안을 방어하는 최전방인 남해에 주둔하는 것이 막대한 피해를 입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진해는 사라지며 대위 신성필을 남해의 왕으로 세우고 떠났다.

그렇게 왕이 돌아왔다. 신성필은 남해의 통치권을 되돌려 받은 이후 스스로가 왕이 아니라고 선포했다. 왜냐하면 왕은 저 바다 너머에서 언젠가 돌아올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성필은 자신을 한 단계 낮춘 대공으로 지칭했다. 이것은 선조들의 역사를 연구한 결과였다. 그리고 오래 전 그들이 스스로를 부르던 이름, 아름답고 찬란한 영광의 시대의 이름을 복원했다. 그렇게 남해는 쥐트씨 공국이 되었고 신성필은 폰 베켄바우어가 되었다. 왕국의 영광을 염원하던 남해인들은 아리안이 되었고 성과 이름을 영광의 시대의 것으로 바꾸었다. 이런 일련의 조치는 과거를 그리워하던 남해사람들에게 큰 지지를 얻었다.

대공은 그들이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있었다. 그것은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왕은 분명히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아리안은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되었다. 왕이 있는 곳까지 쥐트씨의 강역을 넓힌다면, 그것은 왕이 돌아오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장 쥐트씨는 신안을 방어하기 위한 방패가 필요했다.

쥐트씨는 진해와 협상을 벌여 지원을 확약받고 그들의 전투기술을 배웠다. 그 대가로 진해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금지와 해군고문 파견을 받아들였다. 그의 치세 25년간 48번의 침입이 있었으나 5번을 빼고는 모두 격퇴에 성공했다. 폰 베켄바우어는 57세의 나이로 죽었고 장남 폰 헤르만이 대공위를 물려받았다.

대공위를 물려받은 헤르만은 재위 초기 방어에 집중했다. 그러다 재위 9년 여수를 급습하여 만에 정박해 있던 함선 20여척을 불태우고 쫓아오는 추격대 역시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에 여수의 약탈 여력이 뜸해진 틈을 타 그들은 육지로 대대적 확장을 꾀하였다. 그 목표는 사천이었다.

사천 공방전

사천은 남해를 방파제로 둔 해안도시였다. 남해가 뚫린다면 그것은 곧 사천까지도 일사천리로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사천의 시장들과 면장들은 주기적으로 남해에 선물을 보내왔다. 그러나 남해의 오랜 승리로 사천은 그 고마움을 잊게 되었다. 사천의 자체 해군은 이제 그 흔적만 남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상업의 번성으로 방위에 쓰는 돈은 줄게 되었다. 헤르만 대공의 남해 공격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 사천으로 찾아온 그들의 사절은 고압적으로 큰 공물을 요구했다. 자신들 덕분에 사천이 더욱 안전해졌으므로 전쟁에 사용한 물자를 일정 부분 부담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천에서는 남해의 역할에 의구심을 품은 이들이 많았고 저들이 이상한 말로 자신을 규정하려 하여 믿을 수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였다. 젊은 삼천포시장 박천수는 대공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사천시장 강연품은 그들의 요구를 일부만 수용하여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

이를 빌미로 하여 쥐트씨의 사천 침공이 시작되었다. 이미 쥐트씨의 해군은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기에 사절의 배가 저 멀리 나아간 순간 해군이 돌격하였다. 이 작전으로 삼천포가 순식간에 함락되었고 사천에도 상륙하여 시장에게 복속을 요구하였다. 사천시장은 태세를 깨닫고 곧바로 수락하여 사천 전체가 남해의 손에 떨어졌다. 이를 알게 된 진주는 사태를 수습하고자 노력했다. 진주로써는 교역을 위해 외항인 사천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들은 오래전부터 진주의 귀족들과 혼맥으로 연결된 사이였기에 진주가 사천을 위해 거병할 명분은 충분했다. 그러나 그들이 곧바로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진주는 옛 패전의 충격으로 도시를 잘 벗어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천에 상륙하여 진주의 사절단을 접견한 헤르만은 거듭된 승리에 고취되어 진주의 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사절을 겁박하는 일까지 벌어져 사절은 급히 진주로 돌아갔다. 진주 사절단 대표 권영만은 사천에 머무르는 동안 수많은 사천사람들의 탄원과 유지들의 편지를 받았다. 대략적인 내용은 형인 진주가 아우인 사천을 해방하고 이제 한 집에 같이 살자는 것이었다. 사천은 바다를 건너온 이상한 이들보다 교류가 많고 친숙한 진주에 합병되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시장의 밀사까지 그를 방문하자 그 결심은 구체화되었다.

곧 진주에서 귀족회의가 열렸고 만장일치로 사천 병합과 이를 위한 거병을 결의하였다. 진주는 곧 병사를 내어 사천을 공격했다. 진주의 깃발을 본 사천사람들은 남해의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남의 땅을 점령해 본 적 없던 쥐트씨는 당황했고 사천과 삼천포 시가지를 내주게 되었다. 헤르만은 급히 배에 탔다가 만 서안에 다시 상륙하여 사천으로 진군하고자 하였다. 가화강을 마주한 두 세력은 일주일간 대치하였다. 그러나 이 혼란을 전해들은 신안에서 남해를 넘본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남해는 공격을 포기하고 전쟁을 끝낼 것을 제의하였다. 현재 확보한 영토를 무조건 인정하자는 것이 골자였다. 진주로써도 만 서안의 척박한 대지를 얻어봐야 큰 의미도 없었고 도회지를 점령한 것으로 만족하고자 했다. 양측은 이대로 진주와 남해가 계속 다툰다면 신안이 두 세력 모두를 잡아먹을것이라는 것에 동의했고 사천사람의 원성을 뒤로한 채 전쟁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