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부서진 마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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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마천루의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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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
국기
2265(강남),2267(강북)~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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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65년 강남 연방 결성
  • 2267년 서울국 건국,강남 연방의 서울 연방 선포
  • 2268년 서울국의 종로 정복
  • 2269년 서울 연방의 경기 식민지 건설
  • 2275년 김포 사건
  • 2276년 서울 남북전쟁
  • 2278년 기계교도의 강남 침공,강남 공성전
  • 2280년 김한구의 직위계승,남북전쟁 종결
  • 2285년 서울국 고립주의 선포
  • 2407년 박수현 사건
  • 2411년 명예분봉
  • 2426년 강동 위기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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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중구
최대 도시
주요 도시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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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류 문화
서울
소수 문화
언어
서울어
종교
국교
한국교 서울파(국교)
소수 종교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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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체제
봉건제
지도자 (국가지도자)
김원준

개요

역사

부서진 마천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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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2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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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건 발생
2137 신안 문명
2189 러시아 공산당 출현
2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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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0 백두산 화산 분화. "신의 징벌"
2234 정교회의 정비
2235 아르세니예프 공의회
2235 - 2395 프리모리예 군벌 시대
2298 신안 제국 형성
2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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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4-2327 신안의 인천 정복
2317 신성 복음 연합 건국
2322 - 2324 제1차 신안-복음 전쟁
2327 고려국 선포
2332 제2차 신안-복음 전쟁
2349 - 2365 인천 독립 전쟁
2351 신미년의 역
2365 인천 연합 출범
2371 - 2374 1차 강화도 전쟁
2377 - 2381 2차 강화도 전쟁
2383 서해안 연합 형성
2387 - 2402 인천 제 1 군정
2395 - 2396 대 조국 전쟁
2396 동해 제국 건국
2399 - 2415 동해안 식민 계획
2399 제3차 신안-복음 전쟁
25세기 - 본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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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 - 2413 대반란
2402 기계교 반란
2405 조선인민공화국 건국
2410 경오정난과 대요 건국
2416 - 2418 1차 화북 원정
2419 요양 조선족 폭동
2420 - 2421 2차 화북 원정
2421 - 2422 묵던 원정
2423 얄루 제국 건국
2427 - 2439 인천 제 2 군정
2428 - 2432 주체교도의 난
2432- 신성혁명
2439 - 2442 얄루 전쟁
2440 대진의 분열
2440 인천의 봄
2444- 인천 내전
244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등장
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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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동해 제국의 분열
24?? 얄루 제국의 분할
2666? 스포일러의 등장

최초의 한국교와 강남 연방

서울은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의 시대에서도 한강의 거대한 물줄기가 가로지르는 축복받은 땅이자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다른 지역보다도 압도적인 인구를 자랑하였으며 이는 '사건' 이후의 상황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서울에 밀집된 마천루들과 기반시설의 붕괴는 '사건' 직후 극심한 혼란을 가져온 근원이였으나, 역사의 커다란 광풍이 잦아들자 이는 곧 다른 지역에 비해 굉장히 풍족한 자원들과 환경으로 돌아왔으며 곧 조상의 은혜로써 작용하는 서울땅만의 거대한 은혜로써 받아들여졌다.

문명이 가장 먼저 복구된 곳은 강남이였다. 거대한 한강의 물줄기에 등을 맡기며 강남에 정착한 서울인들은 무너진 건물 잔해를 뒤져가며 옛 선조들의 지혜와 유산들을 이용하며 성장해나갔고, 이는 곧 하나의 종교로써 발전해나가며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며 발전해나가며 이를 차별없이 분배한다는 개념의 최초의 한국교로써 열매를 맺었다.

강남은 주변의 다른 지역구 세력들에게 그들의 자원을 나누며 그것을 담보로 그들을 하나둘씩 강남에 통합해나갔으며 강남,서초,송파,강동의 네 땅이 하나로 모이며 그들은 강남 연방을 결성했다.

강북파의 탄생, 서울국의 태동

그러나 서울은 강남만의 것이 아니였다.

강을 가로지르며 들려온 강남과 한국교의 소식에 큰 영감을 받은 강북의 오명빈은 생각했다. 모든 일은 그리 이상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누군가가 이상을 퍼뜨리고자 하면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그 이상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만 한다. 오명빈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강북에서 커다란 야망을 가지며 한국교를 재정립했다. 자원과 지혜를 보호하고 그럴 자격이 없는 이들을 집행하기 위한 종교로써 한국교 서울파의 탄생하는 순간이였다.

야망을 품은 오명빈은 주변 지역구인 노원과 도봉에서 그 지역의 패자 정진훈,은어검과의 우정을 나누며 자신의 가치관을 설파했고, 둘은 빠르게 오명빈에게 빠져들며 세 세력을 하나로 합쳐 서울국을 건국했다. 든든한 아군 둘에게 등을 맡긴 오명빈은 그들에게 증명받기 위해 자신의 군대를 끌고 성북을 뚫고 이어서 종로를 토벌했으며, 옛 서울의 진정한 중심지를 확보한 강북은 그곳으로 도읍을 옮김으로써 강 윗쪽에서의 패권을 확고히 다져나갔다.

한편 강남 연방은 빠른속도로 세력을 팽창해나갔으며 이들의 영향력은 곧 강 밑쪽에서 절대적인 힘을 부여했다. 연방의 지도자들은 이에 따른 자신감에 강남 연방을 넘어서 스스로를 서울 연방이라 칭했으며 빠른 팽창에 도취해갔다.

과열되는 경쟁

서울을 가로지르며 한강을 국경삼아 커져나간 강북과 강남,국가와 연방의 두 패권세력들은 얼마안가 서로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서울국과 서울연방은 서로 최대한 많은 지역구들을 포섭하기 위한, 서울의 진짜 소유자를 정하기 위한 경쟁을 시작했고, 경쟁은 날이 갈수록 과격해지고 거대해지며 그 심도를 점점더 높여만 갔다.

이 과정에서 연방은 국가에게 밀리지 않기 위한 비장의 무기로써 서울 바깥으로 나가 수원과 성남에 그들의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했으며 "연방과 한국교가 보장하는 이상적인 미래"를 보장하겠다는 명분하에 그들은 점점더 스스로의 통제를 잃어만 갔다.

두 태양은 그들의 뜨거운 경쟁의 종점을 김포에서 맞이했다. 한강을 타고 이어지는 물줄기의 끝자락이자 바다와도 이어지며 서울의 남부와 맞닿아있는 김포는 국가와 연방 양쪽 모두에게 있어서 뜨거운 관심을 산 요충지 중의 요충지였으며,두 세력은 김포의 군주였던 김병만을 포섭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양측은 서로 김포를 포섭하기 위해 재물 선물, 선교사 파견, 교역 확대 등의 온갖 수를 사용하며 경쟁하였으나, 끝끝내 김포군주 김병만은 한국교 서울파의 이념에 동조하며 친국가적 치세를 이어감에 따라 이 싸움은 강북의 승리로 끝날것만같이 보였다. 김포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서울 남북전쟁

2275년 겨울, 서울 연방이 기습적으로 김포군주 김병만을 납치하고 김포의 정국을 장악하였고, 비어버린 김병만의 자리에 직접 엄선한 친연방 인사들을 빼곡히 집어넣으며 김포의 연방 가입을 독촉했다. 사실상 연방에게 통제권을 빼앗긴 김포는 곧 서울국을 향하여 단교 선언과 함께 연방 가입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극적으로 감금에서 탈출한 김병만은 곧장 종로로 달려나갔고, 서울국에 개입을 요청했으며 연방의 오만방자하고 과격한 태도에 격분한 오명빈은 이를 수락함과 동시에 김병만의 복권과 강남의 분쇄를 목표로 김포를 향한 진군을 시작했다. 이리하여 김포 사건은 5년간 이어지는 서울 남북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서울국군의 갑작스러운 공세에 혼란상태엿던 김포는 빠르게 무너져내렸고, 뒤늦게 연방이 식민지민마저 강제징집하며 끌어모은 병력으로 대응하며 두 세력간의 전쟁은 그 불꽃을 점차 키워나갔다. 1년간의 공방전과 소모전 끝에 양측은 점점 지쳐만 갔고, 대치상황 속에서 오명빈의 아들이자 적장자였던 오명수가 스스로 나서 유격대를 지휘하며 전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서울국은 마포대교를 통해 주력부대를 여의도를 향해 보내며 김포방면의 병력과 강남 사이를 단절시켜 보급을 끊는 전략을 선택하였고, 이를 눈치챈 연방이 병력을 끌어모아 여의도에 집결시키며 여의도 전투가 시작되었다. 치열한 전투 가운데,양측의 병사들이 맞서싸우며 벌어진 아수라장 속에서 이를 평정한 것은 다름아닌 한강대교를 통해 먼 길을 우회하여 기병대를 끌고온 오명수의 유격대였다. 유격대의 측면타격에 연방군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패퇴했으며, 얼마안가 잔존병력 마저도 일제히 후퇴를 이어나가며 승기를 잡은 국군은 곧 강남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김포쪽의 병력과 합류해 강남을 포위하며 공성전을 시작했다.

포위가 지속되며 서울국이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순간, 전장에는 이변이 발생했다. 갑작스럽게 강남에 들이닥친 경기도 남부의 광신도 세력의 군대가 강남을 포위하던 국군을 기습하였고, 영문모를 기습공격에 치명적인 국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으며 곧이어 전염병 홍역이 전장에 퍼져나가며 국군은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끝내 광신도들을 격퇴한 국군이였으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서울국의 국가지도자 오명빈은 강남전투 도중 이름모를 이교도에게 살해당했을뿐더러 오명수의 유격대 조차 강남전투 이후 갑작스럽게 실종됨에 따라 지도층이 붕괴한 서울국은 커다란 혼란에 휩싸였다. 이 혼란을 잠재운 것은 오명빈이 지명한 섭정이였던 중구의 구청지도자 김한구였다.

김한구 체제,서울 고립주의

김한구는 강북 오씨 일가의 가주와 그 후계자가 한꺼번에 사라진 비상사태에 따라 미리 오명빈이 선언한 대로 자신을 서울국의 다음 국가지도자로써 추대함과 동시에 점점 늘어지며 지쳐가는 서울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는 강남의 세 지도자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물으면서도, 동시에 그들에게 유화책을 행사하는 평화협정이였던 일산대교의 평화를 선포하며 서울전쟁을 끝마무리지었으며, 전후의 복구와 더불어 자신의 의심받는 정통성과 능력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서울 고립주의,1가1구제,대남유화책이라는 3가지로 대표되는 구호를 내걸었다.

일산대교의 평화는 연방 원로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매우 유화적인 평화조약이였다. 김한구는 전쟁의 책임과는 별개로 그들에게 어떠한 종류의 재산 몰수나 영토 할양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그저 연방의 해체와 서울국 편입만을 넣음으로써 그들이 제발로 이에 승락하기를 유도했다. 그리고 영토 할양 대신에 강남 원로 3대가문에게 10살 이하의 여성에게만 혼인할수있는 제혼령을 강제했다.

이어서 그는 1개 가문의 1개 지역구 이상의 소유를 막는 1가1구의 원칙을 선포하며 중앙의 힘을 증대시키는 동시에 구들의 상호 견제를 통한 힘의 평형 상태를 유도하면서,선포 이전의 소유지역에 한하여 예외를 둔다는 조항을 달아 2개 이상 지역의 소유자였던 강남-서초 지역구지도자이자 서울연방 원로였던 박재성을 포섭하며 강남의 분열을 유도하였다.

마지막으로 김한구는 옛부터 서울을 공격하곤 했던 정체불명의 해적 세력과 강남전투에서 커다란 사상자를 낸 이교도들의 사례를 들어 서울 고립주의를 내세워 서울을 둘러싼 거대한 성벽을 세워 서울과 바깥세계를 분리함으로써 그 설계를 마무리했다.

이 상황을 쭉 유지할수만 있다면 자신의 후손들은 중구,강북,성북,종로 총 4개 지역을 휘하에 두고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인 무력을 확보할 수 있을 뿐더러 유일한 변수인 강남 역시 제혼령을 통해 자연스래 가문이 갈라지거나 멸문될 것이다. 이것이 김한구의 계획이였다.

강남에서의 참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