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장:이름100

이름100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20일 (목) 12:21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 국가 ]
[ 국가 ]
[ 국가 ]
[ 국가 ]
[ 역사 ]
[ 역사 ]
[ 역사 ]
[ 역사 ]
[ 설정 ]
[ 설정 ]
[ 설정 ]
[ 설정 ]
국가


헤스페로스벨트  ·  바네버베센  ·  투디아  ·  낸팬  ·  신디아  ·  헤르니소스  ·  바필리아  ·  펜데아시아  ·  디흐트에이븐
국가
키르수스 제국 게파르토 제국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베른하이어 베른하이어 공국  ·  에르미니아 에르미니아 합중국  ·  마그니우스 마그니우스 제국  ·  프리슬란드 프리슬란드 자유국  ·  그란치프 그란치프 국민국  ·  코르보날 코르보날 연합국  ·  크래스터프 크레스터프 왕국
사련 구성국과
혁명수도
헤스페로스벨트  ·  바네버베센
투디아  ·  낸팬  ·  신디아
헤르니소스  ·  바필리아  ·  펜데아시아  ·  디흐트에이븐
연표


-546
1423
고전고대
고대 후기
중세 초기
중세 성기
중세 말기


1423
1664
근대
현대


보편전기
연표
-546
1483
1664
고전 고대
고대 후기
중세 초기
중세 성기
중세 말기
근대
현대














보편전기
무기
권총  ·  기관단총 소총  ·  기관총 차량

게파르토 ㅔㄱㅣㅋㅔㅈㅔㅅ·ㅍㅜㅅㅡㅋㅏ 49M

게파르토 Moosmeier 32M pistol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26식 수포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엘빙거 권총



게파르토 ㅍㅜㅅㅡㅋㅏ1651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41형 표준 영도진 보병소총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이리야-야조프 45식 보병용 소총

그란치프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르브 소총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무흐타레프 장비

키르수스 Maschinen Gewehr 57

게파르토 ㅗㅌㅗㅁㅏㅌㅏ·ㅍㅜㅅㅠㅋㅏ

키르수스 Panzerabwehrkanonen 1656

게파르토 49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1M 6.3qb Bergbombarde

게파르토 52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0/54M 33qb Bergbombarde

키르수스 1656년식 야전차량 경형

키르수스 1654년식 전선장갑차량

게파르토 53M 3톤 중형트럭 어비거일



잠수함 함선 전투기 폭격기
키르수스 퇴브리크크루비엔 Ddkf.V

그란치프게파르토 가르당 17

게파르토 53M 반도르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3 키드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5 돌핀

키르수스 그니베겐 GFz.III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하디 베넷 타입P

아인종
카노쿠겔
Kanokugel
드베르그
Dweorg
리겔
Ligel
테살리데스
Teßalides
죄뢰이
Jöröi
라퓰러이
Lafülöi
오르바나 학회  ·  케네우스 의사회  ·  마법
무기
권총  ·  기관단총 소총  ·  기관총

게파르토 ㅔㄱㅣㅋㅔㅈㅔㅅ·ㅍㅜㅅㅡㅋㅏ 49M

게파르토 Moosmeier 32M pistol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26식 수포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엘빙거 권총



게파르토 ㅍㅜㅅㅡㅋㅏ1651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41형 표준 영도진 보병소총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이리야-야조프 45식 보병용 소총

그란치프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르브 소총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무흐타레프 장비

키르수스 Maschinen Gewehr 57

게파르토 ㅗㅌㅗㅁㅏㅌㅏ·ㅍㅜㅅㅠㅋㅏ

차량
키르수스 Panzerabwehrkanonen 1656

게파르토 49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1M 6.3qb Bergbombarde

게파르토 52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0/54M 33qb Bergbombarde

키르수스 1656년식 야전차량 경형

키르수스 1654년식 전선장갑차량

게파르토 53M 3톤 중형트럭 어비거일



잠수함 함선
전투기 폭격기
키르수스 퇴브리크크루비엔 Ddkf.V

그란치프게파르토 가르당 17

게파르토 53M 반도르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3 키드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5 돌핀

키르수스 그니베겐 GFz.III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하디 베넷 타입P

아인종
카노쿠겔
Kanokugel
드베르그
Dweorg
리겔
Ligel
테살리데스
Teßalides
죄뢰이
Jöröi
라퓰러이
Lafülöi
오르바나 학회  ·  케네우스 의사회  ·  마법
제작진  ·  도서  ·  만화  ·  팬아트
Copyright 2020. Studio Laume all rights reserved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
Grankischer Krieg
날짜 1658년 7월 4일 ~
장소 코르보날 전역


개요

코르보날에서 발발한 내전에 대해 설명하는 문서.

배경

1500년대 말, 대대적인 개혁으로 크세사바 조약 등을 맺어 코르보날이라는 국가 형성에 크게 이바지한 스타니스와프 지그문트 왕 사후, 얀 아우구스트 왕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등, 여러 면에서 일어난 실책으로 인해 의회에서는 공화혁명을 일으켰다. [1][2] 이러한 공화혁명의 성공으로 코르보날은 정교가 분리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코르보날은 개혁 도중에 공화혁명이 일어나며, 공화혁명 이후 여러 정당의 다툼으로 제대로 된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왕국 시절 코르보날 개혁은 군주제가 지속될 것을 상정하고, 의회에 대한 국왕의 정치력을 투사해 일정한 개혁은 느리더라도 여당과 협력해 진행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공화혁명 이후 야당의 영향력도 강화되고, 중제자의 부재로 인해 서로 간 타협이 잘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브와디스와프 에르체프스키 내각이 출범하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공화파의 연이은 실책으로 인해 차라리 왕국 시절이 나았다는 평가가 증가하면서,[3] 군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우파적 성향과 실력 있는 정치인이 정권을 잡기 수월해졌다. 당당히 높은 지지를 받아 오른 브와디스와프 에르체프스키는, 이전에 연합 공화당에서 실현하려고 하던 정책들을 일부 보수화해 실행하며, 공화당의 반대는 과거 그들이 추진하려고 했던 정책들을 통해 반박하고 자신의 지지를 더욱 끌어올릴 수 있었다.

자신들의 정치 세력를 강화하기 위하여 그러한 정책들에 국가주의, 권위주의, 보수주의적 기반을 강하게 두어서 에르체프스키 내각 이후로, 보수적 정책에 대한 지지가 꽤 높게 증가했다. 그러나 에르체프스키 내각은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에 그란치프 측으로 참전을 결정, 전쟁 경제로 전환하여 국민 생활이 악화되고 전쟁의 참화를 경험하면서 좌파적 기조 또한 강화되었다. 심지어는 에르체프스키 총리가 군무회의에서 군사작전을 의회의 동의 없이 진행하기로 하였기에, 코르보날 민주정의 대대적인 혼란이 발생하였고, 전쟁 참전 결정 및 여러 실패한 작전을 형성한 책임을 물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 결과 국내의 여론은 사련에 가깝게 혁명을 통해 갈아엎어야 한다는 극단적 좌파와 전쟁으로 인해 형성된 강한 민족 갈등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 민족주의적 우파로 갈리게 되었다.[4] 의회는 법에 따라 각 지방정부의 여론을 대표할 수 있는 의원이 있었기 때문에, 내부적인 혼란스러운 여론에서 극단주의를 배제하고자 정치적 중도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전 국방군 최고사령관으로[5] 덕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던 야니스 티오르멘 의원이 급사,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특히나 공산주의 계파에서의 반대가 막강하여 티오르멘 의원이 최고의장이 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급사하였으니, 여러 음모론이 사실인 것처럼 대중에게 퍼졌다.

대의회는 극우나 극좌 세력을 견제하기도 해야 하지만 무시할 수 없었고, 조사를 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나, 양극의 정치인들이 책임 소지를 명확하게 하는 것을 싫어했고, 충분히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조사를 진행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조사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불필요한 자료들을 정리, 파기하였다.

이에 민중의 의지를 포함한 여러 명분을 내세워서 슬로딘 파우수트시스키는 결의정변을 일으켰고, 결의정부가 수립된 이후 그에 반발한 여러 세력의 봉기로 내전이 발발, 중앙의 힘이 약한 상황이었기에 제시간에 제압하지 했고, 결국 현재 시점에서 사회주의 성향을 가진 인민공화국이 가장 큰 국력을 가지고 다른 지역들을 압박해가고 있다.

  1. 공화혁명의 명확한 시작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평화적으로 정치적 수단을 통해 일어난 혁명이었기 때문에, 그 시작점을 명확하게 특정짓기 힘들다.
  2. 전대 국왕이 행하려고 했던 개혁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국왕의 영향력을 줄이고 의회의 입맛에 맛도록 개조하기 위해 일으켰다는 설도 있다. (얀 자호르스키(1661), 코르보날 인물열전, p. 143)
  3. 코르보날 공화혁명을 주도했던 당파는 연합 공화당으로 코르보날 내 공화정 전통을 중시해 왔으며, 스타니스와프 지그문트 국왕 때에 적극 협력해 헌법의 기초를 함께 다졌다. 이후에도 정치적 주도권을 잡고 있었으나, 극심한 정치적 혼란기에 완전히 압도하는 정치적 세력을 갖추기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개혁에 실패 및 그에 따른 경제, 사회적 혼란을 감당하지 못했다.
  4. 전후 코르보날 국내 여론은 완전히 양극화되어 중도적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5. 이전 코르보날 국무회의에서 에르체프스키의 작전에 동의하지 않았으나, 출석을 방해당해 반대표를 던지지 못한 인원이다. 잘못된 작전 수행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