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색의 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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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헤스페로스벨트  ·  바네버베센  ·  투디아  ·  낸팬  ·  신디아  ·  헤르니소스  ·  바필리아  ·  펜데아시아  ·  디흐트에이븐
국가
키르수스 제국 게파르토 제국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베른하이어 베른하이어 공국  ·  에르미니아 에르미니아 합중국  ·  마그니우스 마그니우스 제국  ·  프리슬란드 프리슬란드 자유국  ·  그란치프 그란치프 국민국  ·  코르보날 코르보날 연합국  ·  크래스터프 크레스터프 왕국
사련 구성국과
혁명수도
헤스페로스벨트  ·  바네버베센
투디아  ·  낸팬  ·  신디아
헤르니소스  ·  바필리아  ·  펜데아시아  ·  디흐트에이븐
연표


-546
1423
고전고대
고대 후기
중세 초기
중세 성기
중세 말기


1423
1664
근대
현대


보편전기
연표
-546
1483
1664
고전 고대
고대 후기
중세 초기
중세 성기
중세 말기
근대
현대














보편전기
무기
권총  ·  기관단총 소총  ·  기관총 차량

게파르토 ㅔㄱㅣㅋㅔㅈㅔㅅ·ㅍㅜㅅㅡㅋㅏ 49M

게파르토 Moosmeier 32M pistol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26식 수포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엘빙거 권총



게파르토 ㅍㅜㅅㅡㅋㅏ1651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41형 표준 영도진 보병소총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이리야-야조프 45식 보병용 소총

그란치프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르브 소총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무흐타레프 장비

키르수스 Maschinen Gewehr 57

게파르토 ㅗㅌㅗㅁㅏㅌㅏ·ㅍㅜㅅㅠㅋㅏ

키르수스 Panzerabwehrkanonen 1656

게파르토 49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1M 6.3qb Bergbombarde

게파르토 52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0/54M 33qb Bergbombarde

키르수스 1656년식 야전차량 경형

키르수스 1654년식 전선장갑차량

게파르토 53M 3톤 중형트럭 어비거일



잠수함 함선 전투기 폭격기
키르수스 퇴브리크크루비엔 Ddkf.V

그란치프게파르토 가르당 17

게파르토 53M 반도르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3 키드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5 돌핀

키르수스 그니베겐 GFz.III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하디 베넷 타입P

아인종
카노쿠겔
Kanokugel
드베르그
Dweorg
리겔
Ligel
테살리데스
Teßalides
죄뢰이
Jöröi
라퓰러이
Lafülöi
오르바나 학회  ·  케네우스 의사회  ·  마법
무기
권총  ·  기관단총 소총  ·  기관총

게파르토 ㅔㄱㅣㅋㅔㅈㅔㅅ·ㅍㅜㅅㅡㅋㅏ 49M

게파르토 Moosmeier 32M pistol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26식 수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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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파르토 ㅍㅜㅅㅡㅋㅏ1651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41형 표준 영도진 보병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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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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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파르토 49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1M 6.3qb Bergbombarde

게파르토 52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0/54M 33qb Bergbombarde

키르수스 1656년식 야전차량 경형

키르수스 1654년식 전선장갑차량

게파르토 53M 3톤 중형트럭 어비거일



잠수함 함선
전투기 폭격기
키르수스 퇴브리크크루비엔 Ddkf.V

그란치프게파르토 가르당 17

게파르토 53M 반도르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3 키드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5 돌핀

키르수스 그니베겐 GFz.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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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종
카노쿠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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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베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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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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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사건
55-Zwischenfall
날짜 1655년 1월 18일 - 20일
장소 키르수스 키르수스 카스텔부르크
결과 제국의회의사당 폭파
사회주의자 사냥
사회주의법 제정
교전국
지휘관
병력
약 10,000명 약 20,000명
피해
사망자 : 의원 및 내각 인사 13명, 32명의 군인 사망자: 약 14,000명
사형: 약 1,000명
종신형: 5,000명

55년 사건(키르수스어: 55-Zwischenfall 퓐프운트퓐프치히 츠비셴팔) 혹은 혈색의 기 사건(키르수스어: Blutsflaggen-Zwischenfall 블루츠플라겐 츠비셴팔)은 1655년 1월 18일부터 20일까지 슈베른란트 혈색 동맹 등의 사회주의 무장 단체들에 의한 테러이다. 헤르베르트 3세가 건국식 중 키르수스 제국의회의사당 앞에서의 연설이 끝남과 동시에 의사당 건물이 테러로 붕괴되면서 발발하였다. 옥체는 무사하였으나 13명의 의원이 폭발 및 파편에 사망하였다. 20일에는 사회주의 무장 단체들이 결집하여 카스텔부르크궁 바로 앞의 미틀가르텐까지 진군하였다. 헤르베르트 3세황립군 내의 강경파인 페르디난트 폰 리펜슈탈을 계엄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리펜슈탈은 그 뜻에 따라 반란을 잔혹하게 진압하였다. 이로 인해 키르수스는 한동안 정치적 혼란에 빠졌으며, 헤르베르트 3세를 필두로 강경한 반공주의가 제국에 뿌리박혔다.

배경

1654년 7월 7일, 4년 간의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키르수스의 승전으로 종결된다. 그 시작은 비의도적이었으나 최종적으로 대영방전쟁의 패배 이후 슈베른-게이만 민족의 민족 국가가 숨죽이며 염원한 복수가 완성되었다. 수 백 년에 걸쳐 쌓인 요구가 터져 나왔으며, 승전제 지크프리트 2세는 그 막대한 짐을 짊어져야 했을 터였다. 그러나 나이에 의한 인간의 육체적 한계와 지난 4년 간의 과로, 그리고 개인적 이상에 따라 종전 이후 대대적인 팽창 정책은 수립되지 못했다. 지크프리트 2세의 행보는 제국인민으로 하여금 불만을 가져왔으며, 이는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 기간 동안 새싹을 피운 애국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이며 팽창주의적인 신생 극단주의 정당이 지지를 얻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던 1655년 1월 14일. 지크프리트 2세가 심장마비로 붕어했다. 그의 뒤를 이어 헤르베르트 3세가 새로히 키르수스의 황제로 즉위했고, 그의 익히 알려진 팽창주의적인 성격은 지크프리트 2세의 우유부단한 팽창 정책에 불만을 품던 이들로 하여금 지지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키르수스 사회주의

사회주의는 키스수스 이전 아슈트카이트 영방국가연합의 철학자로부터 기원했음이 정론이다. 신념교의 가치관에서 기원한 중세 사회주의는 '모두가 평등히 신과 황제의 은혜를 입을 방도'를 목적으로 해 최초로 '공동재산' 개념을 기록에 남겼다. 굴욕과 부흥 전쟁40년 전쟁을 거치며 기존 통치·사회 질서의 붕괴가 이루어졌고, 이는 복구 과정에서 본격적인 자본주의화를 겪게 했다. 점진적으로 농노 해방이 이루어지자 1520년부터 태동한 산업혁명은 베른하이어에 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된 키르수스로 수입되는데 바탕을 완성했다. 산업혁명에 의해 자본가 계층과 노동자 계층으로의 빈부격차를 동반한 양분이 일어났고, 이는 '공동재산' 개념이 다시금 주목받게 만든다. 산업혁명의 최전선이던 베른하이어에서는 평등한 재산 분배를 통해 '공동재산'을 이룩하고자 하는, 일명 에피크루주의라 불린 노동자 계층과 지식인들의 사회적 관념이 형성되어 있었다. 키르수스의 자유주의자인 노이엘벤 미흐트(Neuhelben Micht)가 이러한 에피크루주의를 수입해 최초로 소개한 것을 시작으로 키르수스 내에서도 이, 사회주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다. 이러한 연구에 앞서 언급한 노이엘벤 미흐트와 그의 학파가 중심을 차지했고, 그가 키르수스의 의회제 운동의 일원이었던 만큼 그의 이념인 미흐트주의(키르수스어: Michtismus)는 의회로 하여금 사회를 대표시키며, 에피크루주의와 달리 국가를 긍정했다. 당연히 이러한 수정주의적인 시각은 키르수스 에피크루주의자인 하인리히 벨제, 의회로 사회를 대표시키되 국가의 해체를 주장하는 아르멘 카를젠의 카를렌주의자들로 하여금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노이엘벤 미흐트 본인 또한 자신의 이념을 사회적 의회국가주의라 칭한 만큼 전통적인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미흐트주의사회주의의 분파로 보기는 어려우나, 그가 에피크루주의키르수스에 소개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키르수스 사회주의사에 중요한 인물인 것은 확실하다. 키르수스의 사회주의는 앞서 설명한 하인리히 벨제 등의 에피크루주의아르멘 카를젠(Armen Karlsen)의 카를젠주의(키르수스어: Karlsenismus), 국가와 계급을 철폐하되 신념교를 중심으로 사회를 대표하고자 한 카를 폰 오스트크렌(Karl von Ostkren)의 오스트크렌주의(키르수스어: Ostkrenismus) 등 활발한 연구가 진행됐다. 1590년 대에는 코르보날에서 미하우-도만타스주의가 발흥하며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미흐트주의자인 에른스트 라덴슈타인미흐트주의미하우-도만타스주의의 복지국가 이론을 차용해 미흐트-라덴슈타인주의로 발전시켰으며, 하인츠 라일레, 만프레트 페레지엔 등의 미하우-도만타스주의 연구자 또한 등장했다.

이론적이던 키르수스 사회주의는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실천적으로 변화했다. 반백년의 기간 동안 급격히 산업화를 이루어낸 자본주의의 폐해는 자명해졌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새로운 계급인 노동자 계급에게 가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태동기에 그 모순을 예언하다시피한 미하우-라덴슈타인주의자 만프레트 페레지엔의 이론을 바탕으로 사회를 노동자 공동체로 대표하고자 한 라벤 테르아겐(Laben Terhagen)의 테르아겐주의(키르수스어: Terhagenismus)가 등장했다. 테르아겐주의미하우-라덴슈타인주의의 영향을 받아 국가를 긍정하고 의회를 바탕으로 정치활동을 주장했으나, 최종적으로 노동자 중심의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야 함을 주장했다. 이에 에피크루주의의 영향을 받은 아헨도프 레볼트(Achendof Rewolt)는 기존 질서 아래에서 노동자 공동체는 실현될 수 없으며, 정치 권력을 획득함에 있어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레볼트주의(키르수스어: Rewoltismus)라 불리는 그의 이념은― 노동자들이 자본가로부터 생산 수단을 뺏어 공동체―협동조합이 기업을 운영해야한다 주장했다.

레볼트주의는 당대 키르수스 사회주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여러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 세를 넓혔다. 의회 정치를 중요시 여긴 테르아겐주의자들이 키르수스 사회민주당을 주도하며 정치 활동에 뛰어든 것과 달리 의회제 자체를 부르주아의 정치적 정당성을 보장하는 체제로 여기며 타도해야할 국가 질서 중 하나임을 주장했기에 의회 정치를 부정하고 의회 정치에 뛰어든 테르아겐주의자들을 크게 비난했다. 의회 정치를 배척한 레볼트주의자들에게 정치 권력을 획득하는 방법은 불법적인 혁명이었고, 1640년 대에 들어서며 키르수스 전역에 여러 비밀 무장 단체가 조직되어 기회를 노렸다.

경과

결과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