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슬란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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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A직책            = 수정헌정 대통령
| 인물A직책            = 대통령(수정헌정)
| 인물A1              = 휴버트 론
| 인물A1              = 휴버트 론(책임사회당)
| 인물A날짜1          = 1630년 - 1635년
| 인물A날짜1          = 1630년 - 1635년
| 인물A2              = 사무엘 제퍼리
| 인물A2              = 사무엘 제퍼리(책임사회당)
| 인물A날짜2          = 1635년 - 1638년
| 인물A날짜2          = 1635년 - 1638년
| 인물A3              = 헨리 엔터딕슨
| 인물A3              = 헨리 엔터딕슨(국가공화당)
| 인물A날짜3          = 1638년 - 1642년
| 인물A날짜3          = 1638년 - 1642년
| 인물A4              = 조엘 카르마르손
| 인물A4              = 조엘 카르마르손(국가공화당)
| 인물A날짜4          = 1642년 - 1650년
| 인물A날짜4          = 1642년 - 1650년
| 인물A5              = 파사미어 아덴베어
| 인물A5              = 파사미어 아덴베크(책임사회당)
| 인물A날짜5          = 1650년 - 1654년
| 인물A날짜5          = 1650년 - 1654년
| 인물A6              = 제임스 칼라무어
| 인물A6              = 제임스 칼라무어(국가공화당)
| 인물A날짜6          = 1654년 - 1658년  
| 인물A날짜6          = 1654년 - 1658년  
| 인물A7              = 샨 라일록  
| 인물A7              = 샨 라일록(책임사회당)
| 인물A날짜7          = 1658년 - 1660년
| 인물A날짜7          = 1658년 - 1660년
| 인물A8              = 사르파 이든
| 인물A8              = 사르파 이든(책임사회당)
| 인물A날짜8          = 1660년 - 1664년
| 인물A날짜8          = 1660년 - 16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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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31일 (월) 04:53 판

프리슬란드
Freesland
프리슬란드 자유국
Free state of Freesland
1514년 - 현재
국가 자유찬가
수도 판크라티온
최대 도시 말루스
대통령(수정헌정)
1630년 - 1635년 휴버트 론(책임사회당)
1635년 - 1638년 사무엘 제퍼리(책임사회당)
1638년 - 1642년 헨리 엔터딕슨(국가공화당)
1642년 - 1650년 조엘 카르마르손(국가공화당)
1650년 - 1654년 파사미어 아덴베크(책임사회당)
1654년 - 1658년 제임스 칼라무어(국가공화당)
1658년 - 1660년 샨 라일록(책임사회당)
1660년 - 1664년 사르파 이든(책임사회당)
프리슬란드 자유국 설립 1514년 7월 17일
건국헌정 발표 1514년 8월 4일
대파란 1629년 10월 30일
수정헌정 발표 1630년 6월 3일
휴버트 론 암살 1635년 10월 9일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369,740,000명
민족 구성 프리슬란드인 30%
헤스페로스벨트인 30%
오플란인 25%
기타 15%
출생률 4.03명
출생 인구 약 124만명
사망률 3.2명
사망 인구 약 38만명
기대 수명 75
성비 0.8
공용어 프리슬란드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종교 영성교 40%
청교 27%
기타13%
군대 프리슬란드 자유국군
세부 군대 육군 프리슬란드 육군
해군 프리슬란드 해군
공군 프리슬란드 공군
기타군 프리슬란드 해병대
프리슬란드 해안 경비대
행정구역
행정
구역
자유주 36개
중앙행정구역 1(판크라티온)
정치
정치 체제 대통령중심제, 다당제, 공화정, 연방제, 다당제
입법부 중앙의회(원로원/민회), 대표의회(지방의회)
국가
원수
대통령 사르파 이든
부통령 프란시스 러먼스
정부
요인
원로원장 카일 메네던
민회장 알레간 바토리우스
내무부 장관
법무부 장관
국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재무부 장관
산업부 장관
책무부 장관
생태부 장관
교육부 장관
과학부 장관
여당 책임사회당
경제
경제 체제 자유시장경제
화폐 공식 화폐 크레딧 (c)
폴리거마르크 (ℳ)
(1c = 1.433ℳ)
코드와 단위
단위 법정연호 건국력
현제력
시간대 YYYY-MM-DD
운전석
(통행방향)
좌측
(우측)


개요

프리슬란드는 신대륙 북부에 위치한 강대국이다. 남부로는 나와틀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헤스페로스벨트와 오플란 등 구대륙으로부터 다수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본래 1514년에 건국되었으나, 1629년의 공황인 대파란을 계기로 휴버트 론의 수정 헌정이 설립되었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지만, 포퓰리즘과 종교적 보수주의가 강세를 띈다.

공화주의와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분위기가 강하며, 공산주의, 사회주의, 군주정, 권위주의 체제 등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그 결과 공련 등 여러 국가들과 외교적으로 마찰을 빚고 있다.


역사

프리슬란드/역사 참조.

프리슬란드의 역사는 크게 판크라티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현재의 프리슬란드 지역을 차지한 판크라티온은 과두정에서 귀족정, 그리고 참주정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역사를 가졌다. 판크라티온은 1000년 가까이 신대륙 북부를 통일했으나, 동서로 나뉘면서 그 중 동부는 중앙집권이 약화된 자유도시의 연합체로써 존속하게 된다.

판크라티온 참주정은 서부에만 그 지배력을 행사했으며, 동서로 분할된 채 수백년을 존속하다 헤스페로스벨트 국가들이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동부 자유도시들이 식민지화된다.

식민지화된 동부 자유도시에서는 종주국들에 의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로 인한 반발로 분리독립 여론이 지지를 얻었다. 독립운동은 동부를 탈환하려는 참주정의 지원하에 이뤄졌으며, 자유도시연맹이 결성되어 마그니우스, 베른하이어 등 신대륙 식민지 종주국과의 독립전쟁이 발발한다. 독립전쟁의 발발과 함께 서부의 참주정이 개입하면서 대륙 주도권은 자유도시연맹이 장악하였다.

자유도시연맹과 참주정은 구대륙 국가들의 역습에 대비하고자 세력 단일화를 꾀했고, 옛 판크라티온을 계승하는 신체제인 자유헌정을 발표한다. 그리고 자유 헌정에 의거, 프리슬란드 자유국이 건국된다.

건국헌정에 의거한 프리슬란드는 해외로부터의 이민을 받아들여 광대한 영토를 개간하고, 자유도시들의 영향을 받아 자본주의 개념을 도입한다. 그 결과, 프리슬란드는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산업혁명과 기계화를 통해 자본주의가 극대화되는 시점에서 프리슬란드의 발전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대륙 곳곳을 연결하는 철도망, 전력망, 수도망을 시작으로 다양한 건설과 물자 수요가 늘어나면서, 프리슬란드는 세계 각지로부터 노동력 충당을 위해 이민을 받았다. 그 결과, 프리슬란드에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유입되었고 그들에 의해 프리슬란드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열악한 노동력과 빈부격차, 그로 인한 물질만능주의 같은 문제가 프리슬란드 사회의 이슈로 떠올랐다. 무한경쟁에 기반한 자유시장경제 특성상 소수의 자본가들이 부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탈법과 불법이 오갔다. 정경유착으로 인해 이러한 문제들이 묻히고, 노동자들의 불만이 제기되면 공권력과 사설 탐정에 의한 무력 진압으로만 일관하니 사회적으로 불만이 고조되었다.

특히 1620년대 공련 혁명과 프리슬란드 주가가 대폭락하는 '대파란'이 결정적이었다.

기존 정치권을 불신하게 된 여론은 물론, 일부 자본가들마저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사회주의 혁명을 우려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노동운동가 출신 변호사 휴버트 론은 정계에 입문, 책임사회당을 창당했다.

책임사회당은 '자유에는 책임을'이라는 모토로 부의 재분배와 민주주의 회복, 반공주의 등을 강조했다. 부의 재분배를 통한 빈부격차 해소와 유권자의 뜻이 존중받는 민주주의 회복은 노동자를 비롯한 여론의 지지를 받았고, 반공주의는 공련식 혁명을 경계한 자본가들의 지지로 이어졌다.

휴버트 론은 자신의 책임사회당이야말로 기존 체제의 고수와 공련식 사회주의의 훌륭한 대안임을 어필하며 프리슬란드 사회 각계층으로부터 지지받았다.

대파란 후 최초의 대선인 1630년 대선에서, 휴버트 론은 압도적인 득표수로 당선되었다. 당선과 함께 프리슬란드의 신헌법인 '수정헌법'을 발표하면서, 수정헌정 체제가 자리잡았다.

수정헌정 체제가 자리잡음과 동시에 프리슬란드 정계는 휴버트 론 예하 책임사회당,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의 국가공화당, 기존 건국헌정의 주축인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한 민주자유당의 삼각구도로 자리잡게 된다.


정치

프리슬란드의 정치체제는 대통령중심제와 연방제에 기반한 공화정이다.

입법

프리슬란드의 입법은 의회가 맡는다. 프리슬란드 의회는 크게 중앙정부의 중앙의회와 각 자유주의 대표의회로 나뉜다. 중앙의회는 상원인 원로원과 하원인 민회로 구성되며, 양원제에 기반한다.

하원인 민회는 각 자유주와 자유시에 인구비율로 배당되는 선거구를 통한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 총 9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의원들은 법안을 기획하고 제출할 권한이 있다.

상원인 원로원은 각 자유주와 자유시의 대표의회의 간접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총 3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었으며, 하원으로부터의 법안과 기획안에 대한 의결권과 정책에 대한 감사, 청문회 개최 권한 등이 있다.

행정

사법

경제

프리슬란드의 경제는 자유시장경제다. 그러나 1629년의 대파란을 계기로 정부의 개입이 일정량 반영된 혼합경제의 성격을 띈다. 법적으로 자유시장을 보장하지만, 정부는 분배 기금을 기업과 금융 자본으로부터 책임세를 통해 거둔다. 그리고 이 책임세를 바탕으로 복지와 국책을 수행한다.

사회

총기 소지로 인한 혼란

프리슬란드는 '자유'가 국가의 정체성이다. 따라서 총기 소지 역시 건국 이래 보장되는 국민의 권리로 인정받았으며, 정부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강한 프리슬란드인들의 성향과 넓은 자연환경으로 인한 여건 등으로 인해 프리슬란드 사회에는 총기가 대거 보급되었다.


범죄율

프리슬란드 사회에서는 총기로 인한 범죄가 만연하다. 따라서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총기로 무장하는 사람이 많다.

프리슬란드 사회의 주요 혼란 요인 중 하나는 마피아다. 본래 가난한 이민자들과 노동자 출신으로 구성된 마피아는 노동조합과 깊게 연관되있다. 노동조합이 불법화되어 군경과 사설 무장단체에 의한 탄압이 일상화된 건국헌정 말기,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할 무장세력을 원했고 노동자 출신이 많은 마피아는 그 수요를 충족했다. 마피아는 노동조합을 보호하고, 그들을 대신해 그들의 고용주들에게 무력으로 반격했다. 수정헌정 이후에도 마피아와 노동조합의 결속력은 강해졌다.

한편, 국가공화당의 주 지지층인 보수 인사들은 종교인과 인텔리, 농촌을 기반으로 삼는다. 프리슬란드 사회의 전통적 엘리트임을 자부한 종교인과 인텔리들은 건국헌정 말기를 계기로 자본주의는 '타락'했으며, 사회주의는 야만적이라는 믿음이 고조되었다. 프리슬란드의 농민 역시 공업화로 인해 농촌이 소외되고, 노동자들의 식량을 충당하고자 농산물 가격이 하락함에따라 자본가와 상인 등에 대한 불만이 많아졌다.

보수 인사들은 정치적으로 국가공화당을 중심으로 결집, 프리슬란드 사회를 '타락'시키는 것으로부터 프리슬란드를 정화한다는 명목하에 참전용사와 총잡이들로 구성된 사설무장단체 베테랑 군단을 창설한다.

문화

군사

프리슬란드 자유국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