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국가 ] [ 국가 ] [ 국가 ] [ 국가 ] |
[ 역사 ] [ 역사 ] [ 역사 ] [ 역사 ] |
[ 설정 ] [ 설정 ] [ 설정 ] [ 설정 ] |
국가 | ||||
| ||||
헤스페로스벨트 · 바네버베센 · 투디아 · 낸팬 · 신디아 · 헤르니소스 · 바필리아 · 펜데아시아 · 디흐트에이븐 |
국가 | ||
키르수스 제국 | 게파르토 제국 |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
![]() ![]() ![]() ![]() ![]() ![]() ![]() | ||
사련 구성국과 혁명수도 |
||
헤스페로스벨트 · 바네버베센 투디아 · 낸팬 · 신디아 헤르니소스 · 바필리아 · 펜데아시아 · 디흐트에이븐 |
연표 |
보편전기 |
연표 | |
보편전기 |
무기 | |||||||||||
권총 · 기관단총 | 소총 · 기관총 | 포 | 차량 | ||||||||
![]() ![]() ![]() |
![]() ![]() ![]() ![]() ![]() ![]() ![]() |
![]() ![]() ![]() ![]() ![]() |
![]() ![]() ![]() | ||||||||
잠수함 | 함선 | 전투기 | 폭격기 | ||||||||
![]() ![]() ![]() ![]() ![]() |
![]() ![]() | ||||||||||
아인종 | |||||||||||
![]() |
![]() |
![]() |
![]() |
![]() |
![]() | ||||||
카노쿠겔 Kanokugel |
드베르그 Dweorg |
리겔 Ligel |
테살리데스 Teßalides |
죄뢰이 Jöröi |
라퓰러이 Lafülöi | ||||||
오르바나 학회 · 케네우스 의사회 · 마법 |
무기 | |||
권총 · 기관단총 | 소총 · 기관총 | ||
![]() ![]() ![]() |
![]() ![]() ![]() ![]() ![]() ![]() ![]() | ||
포 | 차량 | ||
![]() ![]() ![]() ![]() ![]() |
![]() ![]() ![]() | ||
잠수함 | 함선 | ||
전투기 | 폭격기 | ||
![]() ![]() ![]() ![]() ![]() |
![]() ![]() | ||
아인종 | |||
![]() |
카노쿠겔 Kanokugel |
![]() |
드베르그 Dweorg |
![]() |
리겔 Ligel |
![]() |
테살리데스 Teßalides |
![]() |
죄뢰이 Jöröi |
![]() |
라퓰러이 Lafülöi |
오르바나 학회 · 케네우스 의사회 · 마법 |
제작진 · 도서 · 만화 · 팬아트 |
Copyright 2020. Studio Laume all rights reserved |
|
알레닉호 참사(알레니아어: RMS Alenic Disaster 알엠에스 알레닉 디재스터) 혹은 알레닉호 침몰 사고(알레니아어: Sinking of the RMS Alenic 싱킹 오브 더 알엠에스 알레닉)은 마그니우스 국적의 내셔널 해운 소속 워드닉급 여객선 3번선 RMS 알레닉호가 북성단양에서 1655년 1월 16일 오후 10시 20분부터 1655년 1월 17일 오전 1시 40분까지, 총 3시간 20분에 걸쳐 침몰한 사고이다. 로디언에서 출발 후 항해 4일차에 접어들었던 알레닉호가, 어둠 속에서 공해 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대형 해양 생물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 이후 해당 개체가 알레닉호에 손상을 입히며 침몰 과정이 시작되었다.
최대한 많은 인명을 살리기 위한 선원과 승무원들의 사투에도 불구하고, 알레닉호는 2,000명이 넘는 승객과 승무원이 탑승한 채로 가라앉았다. 승객 전원이 탑승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구명정을 실은 알레닉호였으나, 구명정을 내리는데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고 구명정의 반 이상이 사용되지 못한 채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구명정에 탑승하지 못한 승객 대부분이 차가운 성단양의 수온 속에 저체온증과 쇼크로 사망하였다. 사고 현장에 구조선 RMS 신디아호가 도착한 것은 배가 가라앉은 뒤 약 1시간이 지난 오전 2시 50분 경이었으며, 이후 뒤이어 도착한 베른하이어 국적의 HSS 프린스 반 운터란트호와 함께 1,989명의 생존자 구조를 오전 6시 25분 경 마쳤다.
이 참사는 마그니우스 제국과 마그니우스 상선 해군 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낸 해상 사고이며, 연방 전쟁의 승리 이후 자신감과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던 마그니우스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뒤이은 청문회는 마그니우스 상무원과 상선 해군에 수많은 개혁을 권고했고, 마그니우스 해운 업계가 재편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선박 설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배경
경과
1655년 1월 16일
1655년 1월 17일
영향
![]() |
---|
프론트 포커스 |
Copyright 2022.이화군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