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볼라디쉬 제국
이드볼라디쉬 제국
Império de Idvoladish
1555년 - 현재
국가 이드볼라디쉬 제국가
수도 헬레그라포
최대 도시 이드볼라디쉬-두
황제
1555년 - 1587년 레올로위오스 0세
1587년 ~ 1606년 레올로위오스 1세
1606년 ~ 1620년 레올로위오스 2세
1620년 ~ 현재 레올로위오스 3세
이드볼라디쉬 제국 건국 1555년 월 일
산맥전쟁 1600년 월 일 ~ 1606년 월 일
황금칙령 발표 1663년 10월 14일
이드볼라디쉬 내전 1664년 6월 13일~1668년 10월 11일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165,239,754명
민족 구성 헤르칸인 45%
알레그로인 25%
오플란인 15%
펠체인 10%
기타 10%
출생률 3.53명
출생 인구 약 92만명
사망률 5.5명
사망 인구 약 28만명
기대 수명 79
성비 0.8
공용어 헤르칸어
국민어 알레그로어, 금화어, 한무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종교 사명교 40%
영지교 27%
기타13%
군대 이드볼라디쉬 제국군
세부 군대 육군 이드볼라디쉬 육군
해군 이드볼라디쉬 해군
공군 이드볼라디쉬 공군
기타군 흑위대
국방대
행정구역
행정
구역
개의 주
정치
정치 체제 의원내각제, 입헌군주국, 연방제, 다당제
입법부 제국의회, 지역의회(지방의회)
국가
원수
황제 레올로위오스 3세
제 1 황녀 엘리자벨라 3세
정부
요인
제국 수상
여당 균율당
경제
경제 체제 혼합 경제
화폐 공식 화폐 헤칸 (h)
폴리거마르크 (ℳ)
(1h = 1.433ℳ)
통계
자료
경제성장률 %
고용률 %
실업률 %
코드와 단위
단위 법정연호 현제력
시간대 YYYY-MM-DD
운전석
(통행방향)
좌측
(우측)


개요

이드볼라디쉬는 신대륙 중부에 위치한 제정 국가다. 북부와 남부에 위치한 산맥 사이에 취해있으며, 오랫동안 봉건제가 뿌리깊게 자리잡아 구대륙 및 신대륙의 타국에 비해 중근세적 사고/가치관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신세대는 혁신주의라는 신사상에 경도되는 비중이 높아 기존 문화를 중시하는 구세대/보수층과 혁신주의를 추종하는 신세대/진보층간 갈등이 대두되고 있다.


역사

이드볼라디쉬 제국/역사 참조.

이드볼라디쉬 제국은 이드볼라디쉬라는 국명이 창시된 이래, 선/고/중/무/근/현 이드볼라디쉬로 나뉘었다. 그러나 고대 이드볼라디쉬는 중 이드볼라디쉬의 붕괴 후 1,000년 가까이 지속된 무 이드볼라디쉬로 인해 군주의 혈통이 끊겼다. 현 이드볼라디쉬 제국의 레올로위오스 왕조는 마그니우스의 개입으로 왕위에 오른 근 이드볼라디쉬에서 비롯되었으며, 마그니우스/베른하이어 축출 후 영제에 의해 현 이드볼라디쉬와 근 이드볼라디쉬로 나뉘었다.



정치

이드볼라디쉬 제국의 정치체제는 연방제와 입헌 군주제에 기반한다. 이는 이드볼라디쉬가 역사적으로 여러 영주들의 봉신국으로 나뉘었던 적이 많아 중앙정부가 각 지역의 유력자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에서 비롯된다. 이드볼라디쉬의 주 대부분은 전근대 시기 영지들을 토대로 형성되었으며, 영주 출신들이 많은 전통적인 지주 귀족이 제국 정계의 주 기득권층으로 자리잡았다. 입헌 군주제 역시 근대화에 발맞춰 구시대적 전제 군주제를 청산해야 한다는 명분과 함께 지주 귀족들이 산업 자본가들과 함께 형성된 의회의 주축이 되면서 의회가 정치적 실권을 갖춘 입헌 군주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15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해 빈부격차를 비롯한 각종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드볼라디쉬의 정치체제는 실질적으로 귀족 과두정이나 다름없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좌우를 가리지 않고 권위주의적 중앙집권에 대한 열망/환상이 높다.

입법

이드볼라디쉬의 의회는 양원제를 채택했다. 이드볼라디쉬에서 의회의 역할은 각 주를 대표하고, 타 정부기관의 감시/견제를 담당하는 상원과 모든 국민을 대표하고 직접적인 입법활동을 담당하는 하원으로 나뉜다. 하원은 총 50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선거구 별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선거구는 인구를 중심으로 주요 도시와 지역 단위로 나뉜다. 각 선거구는 인구 비례에 따라 1명에서 시작해 여러 명의 의석이 배분된다. 상원은 총 15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주에서 직접 선거로 선출된 선거인단의 간접 선거를 통해 최종 당선된 6인들이 상원의원의 자격을 얻는다.

상원과 하원의원은 각각 6년과 4년 임기며, 임기 동안에는 현행범으로의 체포 등을 제외하고는 면책 특권을 부여받는다.

이드볼라디쉬의 입법 과정은 하원에서 법안을 제정한 뒤, 하원 내부의 검토의를 거쳐 과반수 이상이 찬성할 시 상원으로 통과되고 그 미만이 찬성하면 기각되어 법률안으로 남는다. 만약 법률안이 상원으로 제출되면, 상원에서 최종 검수를 거쳐 3분의 2 이상이 법률안의 법제화에 동의할 시 정식 법률로 자리잡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하원으로 법률안이 반환된다.

이드볼라디쉬의 원내 정당으로는 1664년 기준 중도 성향의 균율당이 152석, 극우파인 국가혁명당이 120석,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민주사회당이 80석, 복고 봉건 성향의 황녹당이 145석을 갖췄다. 이 외에도 구대륙의 공화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극좌 성향의 공산당 역시 3석을 차지했으며, 국가혁명당과 황녹당은 공산당의 불법화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행정

이드볼라디쉬의 행정은 연방제를 채택했다. 수도권과 핵심 도시권, 그리고 지역 주들이 합쳐 총 25개의 광역행정구역으로 나뉜다. 각 광역행정구역은 중앙정부와 별개로 내정에 대한 자치 의결권을 가진 지역 의회가 있으며, 모든 지역 의회는 집행 업무를 담당하는 지역 행정국이 존재한다. 지역 의회는 단원제와 직접 선거를 채택하며, 지역 의원은 2년의 임기를 가짐과 동시에 지역 정책 의결과 지역 행정국의 지도부인 지역 내각을 구성에 참여할 수 있다.

국가규모의 중앙 행정은 제국 행정부가 담당한다. 제국 행정부는 사실상 의회의 집행기구로, 상원에서 임명한 인물들로 구성된 내각이 행정부의 최고 지휘를 담당한다. 내각의 구성원은 수장 겸 대표자로 제국 수상이 있고, 각 행정부서 장관들과 장관급 직위의 공직자들이 참여한다.

제국 수상은 의원내각제의 특성상 하원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총 4년의 임기를 가진다. 수상은 실질적인 정부 수반으로서의 역할을 맡고, 내각을 조직할 수 있다. 수상이 특정 인물을 내각 구성원으로 임명하면 상하원의 청문회를 통해 해당 인물의 과거사와 행적, 능력을 검증받은 뒤 하원과 상원의 심사투표를 거쳐 과반수 이상이 임명에 찬성할 시 내각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 제국 수상은 연임이 가능하지만, 의회가 내각 불신임을 선언하면 언제든지 수상 직위에서 해임되고 다시 수상 선거가 개최된다.

사법

이드볼라디쉬의 사법체계는 행정처럼 지역 법원과 중앙 법원으로 나뉘었다. 지역 법원은 크게 현지 법원과 중등법원으로 나뉘며, 중앙법원은 고등법원과 대법원으로 나뉜다. 따라서 이드볼라디쉬는 실질적으로 4심제라 할 수 있다.

경제

주요 산업

이드볼라디쉬는 전통적으로 농업국가였으며, 덕분에 농업을 비롯한 1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산업 규모의 50% 이상이었다. 그러나 16세기 후반부터 황실주도하의 산업화를 통해 광업을 시작으로 공업화를 진행했다. 그 결과, 1660년대 이드볼라디쉬 제국의 양대 산업으로 농업과 공업이 자리잡았다.

농업

이드볼라디쉬에서 농업은 전통적인 기간산업으로, 도시와 광산 지대를 제외한 개간지 대부분이 농지로 사용되고 있다. 이드볼라디쉬에서 재배되는 작물은 옥수수, 카사바, 얌, 고구마, 감자 같은 종류다. 이는 열대 기후가 대부분인 이드볼라디쉬 환경상 남부 건조지대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주식 작물을 재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외의 곡물로는 베른하이어의 영향을 받은 남부에서 재배되는 밀, 오플란계 이민자들을 통해 유입된 쌀, 열대 콩 등이 있다. 특히 쌀의 경우 덥고 습한 이드볼라디쉬 환경상 이모작은 물론 삼모작까지 가능하다.

전통적으로 이드볼라디쉬 농업은 식량생산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산업화를 통해 국내외적인 기호품 수요가 생기면서 커피, 바나나, 카카오, 콜라 나무, 열대과일, 담배와 같은 기호작물 재배로 농업의 트렌드가 변하고있다. 이러한 기호 작물들은 기업화된 지주나 해외자본의 투자를 통한 플랜테이션 농업 중심으로 재배되고 있다.

이 외에도 고무 역시 이드볼라디쉬 농업의 한 축을 차지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고무 수요가 늘어남에따라, 국내 수요를 충당하고 해외 수출을 위해 고무의 원료인 고무 수액을 채취할 고무나무 재배가 정부 주도하에 이뤄지고 있다. 고무나무 재배는 국가가 지정한 전략물자이기에 지속적인 정부의 관리&통제를 받는다. 그러나 귀족의 소작이나 플랜테이션 농업에 비해 자영농 비중이 높기에 농민들 사이에서 고무나무 재배가 선호받는다.

이드볼라디쉬의 농업은 영지를 보유한 귀족이 자신의 영지를 영지민들에게 대여하는 소작 형태가 많다.

공업

이드볼라디쉬의 공업의 주축은 광업과 제조업이다. 황실 주도하의 공업화 과정에서, 지주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적극적인 해외 자본 수용을 시작으로 반세기에 걸쳐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북부와 남부 산맥에서 광물 자원이, 밀림 지대에서 석유가 발견됨에따라 해당 지역에서 산출되는 원자재들을 공업지대에 운송하고, 해외로 수출하기 위해 철도 수요가 늘어났다. 원자재 가공과 철도 수요 공급을 위해 철강산업, 조선업, 기계공업이 발전했고, 원자재 채굴 및 가공-운송-완제품 제작-수출 및 유통에 이르는 과정을 독점한 대기업들이 사업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력은 임금 노동자로 충당되었으며, 이들은 지주 귀족의 전횡을 피해 도시로 이주한 농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드볼라디쉬의 북부와 남부 산맥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광물이 채광된다. 구리, 은, 철광석, 석탄, 알루미늄 같은 광물이 매장되었으며, 광맥을 따라 갱도와 광산이 형성되었다. 광산 지대는 철도망을 통해 해안 공업지대와 연결되었다. 산출되는 광물은 종류에 따라

이드볼라디쉬의 제조업은 해안 공업지대에 밀집되었다. 해안 공업지대는 인구가 밀집된 도시권과 가까워 노동력 확보가 쉬우며, 내륙의 원자재 산출지와 해외 수요층과는 철도망과 항만으로 연결되었다. 이드볼라디쉬 해안 공업지대의 특징은 철도와 항만을 비롯한 교통시설과 제철소, 정제소 같은 원자재 가공시설, 원자재를 소모해 완성품을 제조하는 공장이 결합된 복합단지 형태를 띄고 있다. 이는 단기간에 급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제작 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을 줄이고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해안 공업지대의 주요 업종은 중화학 공업으로, 석유화학, 제철, 조선, 차량, 항공기, 기계류가 주 생산품이다. 이드볼라디쉬의 주요 재배지와 자원 매장지가 산맥, 정글 같은 험지이기에 해당 지역과의 연결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과 개발 과정에서 중장비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이드볼라디쉬는 정글의 다양한 식물종과 석유, 고무 같은 원자재가 많아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이합집산으로 건설된 공업시설은 해외투자로 인한 국가간 규격 차이 등으로 표준화 되지 않았으며, 시설 운영 주체가 해외자본인 탓에 해외자본이 철수하거나 투자를 줄일 시 시설 경영에 난항이 생긴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외에도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으로 비대해진 공룡 기업에 의한 설비 독과점 문제가 심화되었다. 이 공룡 기업들은 친 키르수스, 친 게파르토 성향을 띄며 상호간 담합을 형성해 단일화된 산업 카르텔로서 활동한다. 이를통해 노동자들의 내부 소요와 외부로부터의 간섭을 막아내고 있다.

사회

양극화와 극단주의

이드볼라디쉬의 사회는 소수의 상류층과 다수의 빈곤층으로 나뉜 양극화 사회다. 지주 귀족과 기업가, 해외 자본의 수혜자들로 구성된 상류층은 자신들에게 형성된 재산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자녀 교육을 통해 정치와 군부로도 진출했으며, 상속을 통한 세습으로 자산을 물려받아 대를 이어 부와 권력을 갖춘 가문을 형성했다. 그리고 가문들 간 결혼과 인맥을 구축함으로써 정경유착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개혁정책을 대해 반대한다. 반면 농민과 노동자 대부분은 소작농과 피고용인으로 구성되었다. 평균 10시간 내외의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하루 식비조차 충동하기 어려운 적은 급여와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지속적인 건강문제와 높은 사망률에 직면했다. 또한 지주귀족과 기업가들 대부분이 사내 복지와 근로자들과의 협상에 부정적이며, 가끔 협상을 시도하더라도 이는 대부분 농민/노동자들을 회유시키기 위한 미끼인 탓에 공장 점거와 기계파괴 같은 과격한 파업과 고용주와 그 가족들을 노린 테러, 사보타주가 빈번하다.

양극화로 인해 사회가 상류층과 하류층으로 양분된 이드볼라디쉬 사회는 모든 계층에서 극단주의 사상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다. 지주귀족과 기업가들 중 압도적인 재력/권력을 갖춘 대지주와 공룡기업의 경영 가문들은 그란치프-키르수스 전쟁에서 승리한 키르수스에 협조적이었고, 농민/노동자들의 반발을 비롯한 양극화의 문제를 키르수스식 전체주의/국가주의로 해결하길 원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레올로위오스 3세의 개혁에 가장 반대하는 기득권층인 그들이 게파르토의 신년정변을 보고 게파르토식 공화정을 도입하려는 시도도 있다.

반대로 소작농과 임금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하류층은 공화국 연맹과 위플로첸타로부터 전파된 사회주의 이념에 경도되고 있다. 회유 아니면 탄압뿐인 노동자/농민에 대한 고용주들의 대응으로 인해 노동자/농민 사이에서 폭력혁명으로 체제를 뒤엎어야 한다는 주장이 큰 힘을 얻었고, 공화국 연맹과 위플로첸타 역시 이드볼라디쉬에서의 혁명을 유도하고자 노동조합과 농민공동체의 조직화, 사회주의 이념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일부 노동조합/농민 공동체들은 유사시 노동자/농민들이 직접 무장해 공장과 농장을 점거한 뒤, 고용주와 지역 공권력을 제거한 다음 사회주의 체제에 의해 운영되는 '코뮌'을 세운다는 계획이 공화국 연맹/위플로첸타로부터의 인적/물적 지원을 등에업고 준비중이다.

황제와 중도파, 그리고 황금율

현 황제인 레올로위오스 3세는 양극화와 국가분열으 막기 위해 여러 개혁정책을 마련했고, 사상/이념적으로도 극단주의에 대응할 온건/중도파들을 모았다. 레올로위오스 3세의 즉위 초반만 하더라도 기득권층의 반발을 사지 않고, 노동자/농민들도 만족할 수 있도록 점진적이고 온건한 정책을 주로 펼쳐왔으나,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을 계기로 키르수스편에 선 지주/자본가들의 영향력이 확대됨에따라 양극화도 악화되면서 확실히 기득권층을 제압할 필요를 느끼고 전면적인 개혁안인 '황금율'을 1663년에 발표했다.

황금율은 제국이 이제부터 나아갈 방향에 대한 비전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막론하고 극단주의를 용납하지 않고, 생산 수단에 대한 노동자/농민의 권리를 인정하는 자영농/자영공 정책을 통해 농민에겐 직접 경작하는 면적을 기준으로 토지를 분배하고, 공장을 비롯한 산업 시설에는 노동조합에 경영권이나 경영에 대한 영향력을 부여함으로써 노동자/농민의 처우 개선과 지주/자본가를 위시한 기득권층을 견제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이 외에도 국가에 의한 시장 개입을 통해 그동안 자유방임상태였던 금융시장을 개혁함으로서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력을 키운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이드볼라디수의 중도파는 중도 우파에서 중립을 아우르는 균율당과 균율당으로부터 독립한 중도 좌파와 온건 사회주의자들이 창당한 민주사회당의 연립 내각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도 연립 내각은 1664년 총선에서 1663년 황금율 발표에 힘입어 중도 연립 세력의 집권이야말로 황제의 황금율을 구현하는 '충신'임을 어필하는 홍보를 통해 열악한 처우 개선과 근왕의식으로 농민/노동자들의 압도적인 표를 얻어 당선 후 설립되었다.

문화

군사

이드볼라디쉬 제국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