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케 몽골 울루스 (아침해의 원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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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해의 원유관
아침해의 원유관은 임진왜란 축소로 인해 뒤바뀐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세계관입니다.
청화대에 이화문이 꽂혀있는 이 세계의 국가, 사회, 정치 및 문화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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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골국
大蒙古國 |ᠶᠡᠬᠡ ᠮᠣᠩᠭᠣᠯ ᠤᠯᠤᠰ|Yeke Mongɣol Ulus
대한제국의 번국(藩國)
국기 국장
동양평화

東洋平和
(1934~1937)
광명천지
光明天地
(1937~1945)

1934년 3월 29일~1945년 6월 16일
몽골 출병 이전 멸망 이후
수원군벌 몽골인민공화국
몽골인민공화국
국가 정보
국가
옛 시대를 기원하며 (1934~1937)
애국가 (1937~1945)
국화
수복꽃,오얏꽃
면적
742,139km2
수도
장자커우(1934년 ~ 1936년)
쑤니터 우기(1936년 ~ 1940년)
만달고비 (1940년 ~ 1945년)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군사독재, 전체주의, 번국
국가원수
대몽골국 칸
대칸
고종 성황제 이영[1]
정부수반
몽고왕
역대 몽고왕
데므치그돈로브 (1934~1944)
연호
성덕 (1934~1944)
통치기관
대몽골국 쿠릴타이[2]
위치
몽골 동부 및 내몽골 지방
주변국
대한제국령 만주, 중화민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언어
몽골어, 중국어, 한국어, 만주어, 러시아어, 해동어(한국어)[3]
공용 문자
몽골 문자, 한자, 한글
민족
몽골인, 만주인, 한족, 한국인
국교
국교 없음 (명목상)
국체유학(사실상)
종교 분포
불교, 유교, 국체유학, 몽골 토속신앙
군대
몽고군
통화
몽골은행 투크릭, 대한제국 원[4]

개요

예케 몽골 울루스(ᠶᠡᠬᠡ ᠮᠣᠩᠭᠣᠯ ᠤᠯᠤᠰ,Yeke Mongɣol Ulus), 혹은 대몽골국(大蒙古國)은 1934년에서 1945년까지 존속한 대한제국의 번국(藩國,Province state)이였다[5]. 몽골 동부 및 내몽골 지방에 걸쳐서 존재했다.

명목상으로 대몽골국은 군주국을 자칭했기에 몽골 역사상 마지막 군주국으로도 볼 수 있지만, 완벽한 주권국도 아니였고 체제조차도 다른 나라의 속국을 지향하는 성격을 띄었다. 당장 대몽골국을 몽골출병을 통해 수립한 주체부터가 대한제국군 산하 군대인 몽고군이였으며, 초반에는 그저 대칸이 대황제의 신하를 겸하는 식이였지만 1937년 경 초대 대몽골국 대칸 데므치그 돈로브가 칸 작위를 대황제에게 바치고 입조를 선택, 몽고왕으로 책봉되며 사실상 형식적으로도 대한의 완벽한 속국이 되었다. 현지에서의 관직은 관공서에서 내무를 담당하는 대한인들과, 토지를 관리하는 2등 신민인 만주인들에 의해 독점되었다. 당연하게도 중국인과 몽골인의 관직 진출은 허용되지 않았는데, 여기서 당시 대한제국이 이유로 든 이유는 "엄연히 너희의 군주의 본국인 상국의 업무에 번국의 국민이 끼어들 수는 없는 일이다"였다.

몽골의 치안은 철저하게 몽고군과 만주인 출신 하급 경관들이 담당했으며[6], 몽골인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지만, 중국인들의 경우 철저히 피지배층으로서 억압받았다. 이러한 관계로 몽골에서는 해당 역사 자체가 몽골사의 일부로 취급되지도 않으며, 한자로는 주로 동부가 한국인들의 지배에 들어갔다는 의미에서 '동윤한점(东沦韓佔時期)시기' 라고 부르기도 한다.

역사

이익될 일을 보고는 그것이 대의에 합당한가 생각하고, 조국과 군부의 위급을 보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안중근 대한제국군 참장

멸망

기타


  1. 대몽골국이 말만 독립국이였지, 실상은 대한제국의 괴뢰국이였던 관계로 성덕제가 태상황으로 오르고 죽은 후에도 칸호가 추존되지 않았다. 몽골식 이름 또한 대한제국 황제가 번국의 주인으로서 대몽골국의 대칸을 맡는 형식이였기에 주어지지 않았고, 칭기즈 칸의 후손들인 황금씨족과 동군연합을 맺지도 않았다.
  2. 일종의 추밀원 같은 기관으로, 대몽골국 내에서 대칸의 자문 및 명령 출납을 담당했다. 다르게 말하면, 대몽골국에는 제대로된 정부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3. 당시 대한제국군 몽고군의 사령관이였던 안중근 참장의 주도로 한국어와 몽골어, 만주어 및 중국어를 섞어서 만든 피진어다. 그러나 그가 군에서 해고당한 이후 한국어의 사용빈도가 급상하면서 사라졌다.
  4. 자체화폐가 있었지만 대한제국 원이 주로 쓰였고, 아예 정부 은행에서 대한제국 원을 발행하기도 했다.
  5. 국가원수인 대몽골국 칸은 대한제국 대황제가 겸직하는 자리였으며, 기존의 황금씨족 인사들을 선발해 뽑던 몽고왕은 사실상 업무를 조달하는 역할이였다. 즉, 쉽게 말해 번국이라는 종류로 분류되는 괴뢰국이였다.
  6. 대한 제국주의에 부역하며 당시 중국인, 몽골인들에게 쌓인 악감정을 풀던 만주인들에 대한 악명도 당시에는 심상치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 중국에서 대금인을 비하하는 멸칭 중 하나인 가오리데빵즈(고려의 몽둥이)가 이 시기 확산되었다는 설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