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딘 파우수트시스키

이름100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5월 11일 (일) 03:08 판
슬로딘 파우수트시스키
Slodyn Pałsudsyski
이름 슬로딘 파우수트시스키
Slodyn Pałsudsyski
국적 코르보날 연합국
출생일 1605년 5월 12일
출생지 오사넨 자치령 빌나 주
부친 클레멘스 유제프 파우수트시스키
배우자 반다 슈체르빈스카전처
야그비다 파우수트시스키
자녀 알렉산드라 파우수트시스키
학력 토르투 대학교 의대(퇴학)
종교 코르보날 황제교[1]
정치
정당 코르보날 인민사회당(구)
연합결의당
현직 코르보날 최고의장
코르보날 국무회의 의장
연합결의당 당수
코르보날 군사총감
군사 경력
복무 복무 코르보날군 육군
최종계급 원수
참전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


슬로딘 파우수트시스키(코르보날어:Slodyn Pałsudsyski [ˈslɔ.dɨn paˈw.sut.sɨs.ki], 1605~)은 코르보날 연합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 연합결의당의 당수 겸 코르보날 최고 의장으로, 코르보날군 원수와 군사총감을 겸임한다. 파우수트시스키는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 이후, 군 내 입지를 사실상 독식하여 강한 정치력을 갖췄으며 합법적인 사조직, 연합회를 이끌었다. 연합회는 현재의 연합결의당으로 이어지며 연합회의 정계 진출은 슬로딘이 헤스페로스 벨트 서부의 주요 정치인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슬로딘은 오사넨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민족적 의식은 코르보날에 가까워 오사넨에 대해서는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2]

파우수트시스키의 연합회 창설 이전 정치 생활은 현재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파우수트시스키는 하급 장교 시절, 코르보날 인민사회당으로 정계에 입문해 당시 국소 정당이었던 인민사회당 당수로 역임, 현재의 규모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결의정변 이후에는 인민사회당을 탄압, 적대하여 인민사회당을 중심으로 인민정부가 세워지게 되었다. 한편, 코르보날 연합군의 중앙군 소속으로 복잡했던 당시 군 직제상, 상당한 자율성이 각 부대에 있었는데 파우수트시스키는 내부 혼란에 대한 방어를 위해 적극적으로 군을 투입하며 내부 결속을 다졌다.[3]

1654년,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의 종전으로 파우수트시스키는 군사적 영웅이자, 몇 남지 않은 장교가 되었다. 브와디스와프 에르체프스키 내각에서 실행했던 무리한 군사작전의 여파로 적지 않은 그의 선배가 군복을 벗었으며, 그러한 작전의 수습을 어느 정도는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정치적으로 공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당시 코르보날 군부 출신 인물 중, 충분한 지지를 받고 있던 인물은 파우수트시스키와 야누시 티오르멘으로 파우수트시스키는 정계에 발을 딛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1658년, 야누시 티오르멘 암살 이후, 코르보날 결의정변을 바탕으로 정권을 장악, 결의당 당내 쿠데타에 힘입어 연합결의당을 새로 창당하고, 현재까지 정권을 잡고 있다. 결의당의 주요 인원은 연합회 시절 파우수트시스키의 측근과 그의 지지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생애

유년 시절

대타협 직후, 1605년 5월 12일, 오사넨 자치령, 빌나 주의 빌나 시(市) 근교의 한적한 마을에서 오사넨계 귀족 가문인 파우수트시스키 가문 출신, 클레멘스 유제프 파우수트시스키의 아들로 태어났다. 클레멘스 유제프 파우수트시스키는 오사넨 자치령군에 배속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는데, 현재는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 명확히 찾기 힘들다.[4]

슬로딘은 코르보날 중등학교에 수학하였는데,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5] 빌나의 일반적인 오사넨계 귀족 가문과 달리, 파우수트시스키 가문은 코르보날에 충성하는 귀족 가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정에서는 빌나어와 오사넨어를 학습하였고, 중등학교에서 코르보날어를 배웠다.

가정의 종교는 코르보날 황제교였기 때문에 오사넨 문화의 성장 환경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에서 주입되는 코르보날 민족주의에 대해 큰 적대를 갖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청년 장교

임관의 이유는 상세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당시까지만 해도, 지방에 사립 사관학교 등이 상당히 많이 퍼져 있었으나, 슬로딘이 사관학교를 졸업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토르투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해 수학하던 슬로딘은 사회 운동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며, 그 결과로 인해 교칙에 따라 퇴학되었다.[6] 퇴학 이후, 운동권 네트워크를 통해 구직을 시도했고, 귀족 가문 출신에 아버지가 자치령군 장교인 점을 통해, 중앙군의 장교로 입대할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7]

상세한 활약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슬로딘은 에스닉 민족주의자 반군 진압 등에 여러 번 투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앙군 부대에 복무하며 겪은 사건들을 통해 코르보날 민족주의에 대한 의지가 증가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일부는 비슈네츠 민족주의자 반군 진압에도 투입되었을 것으로 본다.[8]

인민사회당의 지도자

대학생 시절, 퇴학의 원인이 되었던 사회 운동은 파우수트시스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음은 확실하다. 군 내 지위가 안정되며 충분한 실적으로 여유를 얻은 후, 파우수트시스키는 빠른 시일 내에 인민사회당에 입당했다.[9]

아들은 코르보날에 충성했다. 그는 인민사회당을 항상 코르보날 인민사회당이라고 불렀다.

클레멘스 유제프 파우수트시스키, 1662년, '오늘의 비로' 신문사의 칼럼

좌파 정당들 가운데서는 작지 않은 규모를 갖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중앙 정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던 코르보날 인민사회당은 슬로딘 파우수트시스키가 당수로 재임하던 시절에 크게 성장했다. 민족주의를 일부 수용한 운터란트형 사회주의의 등장으로, 이전 코르보날 사회주의와는 별개의 새로운 현실사회주의의 시발점으로 보기도 한다.[10]

슬로딘이 인민사회당을 탈당하게 된 계기는 진급으로 알려졌다. 하급 장교의 정치적 성향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인민사회당의 성장과 슬로딘의 진급으로 인해 정치적 압박이 눈에 띄게 증가, 결국 스스로 사임하고 탈당하게 되었다.

나이든 군인

이후의 행적은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 때까지 크게 주목할 만한 점이 없다. 군 내에서는 충분히 진급할 만한 실적을 쌓아오며, 탄탄대로를 밟았으나, 민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 당시, 파우수트시스키는 전방 부대에 배치되지 않았는데, 코르보날 인민사회당 활동이 문제가 되어 전쟁 당시에 전방에 배치할 수 없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행운이 되어, 붕괴한 전방 부대를 메꾸기 위해 투입된 슬로딘의 부대가 많은 전공을 세우며, 국가적 영웅으로 발돋음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전방 부대는 무리한 공세 작전의 여파로 완전히 붕괴하여, 전선이 키르수스군에 의해 돌파될 위기에 처했다. 파우수트시스키의 부대는 그 빈공간을 메우기 위해 세고르사그 전선으로 재배치되어, 작전을 수행했다. 오사넨 연방 출신 장교가 상당수를 이루어, 부대는 코르보날의 부족한 행정력에 의한 자율성을 바탕으로 상당한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여 상당한 전공을 거두었다. 이는 키르수스군에 피해를 주기에는 모자랐으나, 전선을 교착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11]

결의정변

코르보날의 최고의장

사상

민족의 자유가 개인의 자유를 형성합니다. 혈통적이나, 또 어떠한 특별한 민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코르보날인의 자유가 이루어질 때, 마침내 우리 모두가 자유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민족의 최전선에 지금 서 있습니다.

슬로딘 파우수트시스키, 1657년, 토르투 대학교 졸업생 대상 연설

슬로딘의 사상이 민족주의, 국가주의적 색체를 띠고 있음을 의심하는 학자는 없다. 코르보날 인민사회당 지도자 시절에도 슬로딘은 코르보날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해서 노동자들의 결집, 사회적 적폐 청산을 통한 개혁을 외쳐왔다. 현재 코르보날 인민정부를 구성하는 최 핵심 정당으로 부상한 인민사회당은, 슬로딘 파우수트시스키가 정립한 지배 구조를 유지하고, 여전히 당시의 당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현재의 권위주의 체제를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슬로딘의 사상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처럼, 개인의 자유가 민족의 자유로부터 온다고 언급한 것이다. 사회주의 사상에서는 일반적으로 민족주의에 반대하는데, 슬로딘은 그러한 민족의 대상을 다르게 언급했다.

하나. 모든 코르보날 인민은 그 직업, 출생, 성별과 무관하게 고귀한 노동을 행사한다.

인민사회당 강령

슬로딘이 당수로 재직하던 시절 만들어진 인민사회당 강령은 코르보날 인민의 출생과 무관하게 노동권을 존중받아야 한다고 언급하지만, 동시에 코르보날 인민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반적인 경우에는 슬로딘을 국수주의적 시민 내셔널리스트로 보는 경우가 많다.

연합회는 국가 안정화와 발전을 최우선 목적으로 하며, 이는 코르보날 인민의 자유 증진에 무엇보다도 큰 비중을 둘 것입니다. 군부가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연합회는 국가의 통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다양한 정당이 여전히 우리 국가의 지도층에 있을 것입니다. 바뀌는 것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그들의 실체를 항시로 보여주고 감사를 실행할 것입니다. 좀 더 명료하게 진행되는 정치적 상황과 확고한 기조로 현재 우리 국가가 가진 문제를 이른 시일 내에 안정화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슬로딘 파우수트시스키, 결의정변 당시 새벽 성명문

해당 발표 이후, 슬로딘 파우수트시스키의 정계 진출과 맞물려, 슬로딘이 말하는 자유가 마구니우스 등, 자유주의 국가들의 자유와 다른, 운터란트적 자유에 가까운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 확실시되었다. 국가의 안정화와 정치사회, 경제적인 발전을 명료한 기조를 바탕으로 공개적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것이 슬로딘의 현재 목적이자, 연합 결의당의 비공식 당령이다.

이는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나 정치사상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현재 활용되고 있다.

같이보기

틀:코르보날 최고의장 틀:코르보날 연합군 총감 틀:코르보날 연합군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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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파르토 ㅔㄱㅣㅋㅔㅈㅔㅅ·ㅍㅜㅅㅡㅋㅏ 49M

게파르토 Moosmeier 32M pistol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26식 수포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엘빙거 권총



게파르토 ㅍㅜㅅㅡㅋㅏ1651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41형 표준 영도진 보병소총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이리야-야조프 45식 보병용 소총

그란치프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르브 소총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무흐타레프 장비

키르수스 Maschinen Gewehr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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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수스 Panzerabwehrkanonen 1656

게파르토 49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1M 6.3qb Bergbombarde

게파르토 52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0/54M 33qb Bergbombarde

키르수스 1656년식 야전차량 경형

키르수스 1654년식 전선장갑차량

게파르토 53M 3톤 중형트럭 어비거일



잠수함 함선 전투기 폭격기
키르수스 퇴브리크크루비엔 Ddkf.V

그란치프게파르토 가르당 17

게파르토 53M 반도르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3 키드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5 돌핀

키르수스 그니베겐 GFz.III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하디 베넷 타입P

아인종
카노쿠겔
Kanoku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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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당한 반종교 활동으로 논란있음.
  2. 오히려 오사넨 정체성 탄압에 앞장선 행보를 보인 만큼, 실제로도 출신이 일종의 콤플렉스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일부 정치학자들은 보고 있다.
  3. 영토가 넓고 민족이 다양하며 행정력이 모자란 코르보날의 특성상, 내부 혼란이 흔하게 발생하여, 이는 일부 장교들에게 충분한 실적이 되어주었다.
  4. 이르미안 코멘스키, "최고의장의 콤플렉스", 오덴그라츠의 목소리.
  5. 1657년, 토르투 대학교 졸업생 대상 연설에서 스스로 밝힘.
  6. 자치령 법규와 대학 내규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행정력 부족으로 인해 상세한 기록이 남지 않았다.
  7. 이르미안 코멘스키, "최고의장의 콤플렉스", 오덴그라츠의 목소리. 해당 기사에서는 자치령군의 해산 원인 중에, 지역주의자의 도움으로 중앙에 진출할 수 있었다는 점 역시 일종의 콤플렉스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보았다.
  8. 일부 기사에서는 스쿠바 지역에서 전투가 있었다는 인터뷰를 실었다.
  9. 코르보날은 여전히 문민통제의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국가로 꼽힌다. 파우수트시스키 역시, 군인 신분과 함께 정치인 신분을 가졌다.
  10. 그를 이유로, 코르보날 인민정부는 파우수트시스키주의자 정부라는 멸칭을 갖고 있다.
  11. 오히려 키르수스군에 큰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코르보날 전선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