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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width="50%" style="width:50%;background-color:#d98927;color:brown;| '''국장''' | ! colspan="1" width="50%" style="width:50%;background-color:#d98927;color:brown;| '''국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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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width="100%" style="color:brown;| '''다섯 민족의 약속된 땅'''<br>''' | ! colspan="4" width="100%" style="color:brown;| '''다섯 민족의 약속된 땅'''<br>'''ᠲᠠᠪᠤᠨ ᠤᠯᠤᠰ ᠤᠨ ᠵᠥᠪᠰᠢᠶᠡᠷᠡᠯ ᠦᠨ ᠭᠠᠵᠠᠷ'''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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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3" width="50%" style="background:#d19e1d; color: #fff" | 민주화 이전 | ! colspan="3" width="50%" style="background:#d19e1d; color: #fff" | 민주화 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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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8년 후금 건국</br>1896년 대청제국 선포</br>[[한만합방 (아침해의 원유관)| | | 1618년 후금 건국</br>1896년 대청제국 선포</br>[[한만합방 (아침해의 원유관)|1909년 청조멸망]]</br>1945년 [[한성내전|한국의 내전]]으로 통제력 약화</br>1948년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 건국 및 만주 인민위원회 수립</br>1954년 [[8.25 전쟁|만주 인민위원회의 전쟁 발발]]</br>1975년 개혁개방 정책 실시</br>1985년 [[만주 민주화 운동|만주 민주화 운동]]을 통한 다당제 및 선거 확립</br>2000년 신징 올림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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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width="40%"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d19e1d;" | <center>민족</center> | ! colspan="1" width="40%"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d19e1d;" | <center>민족</center> | ||
| colspan="3" style="font-size: 10pt | 만주인 40%</br>러시아인 | | colspan="3" style="font-size: 10pt | 만주인 40%</br>러시아인 21%, 중국인 10%,몽골인 9%, 한국인 9%,그 외 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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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width="40%"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d19e1d;" | <center>국교</center> | ! colspan="1" width="40%"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d19e1d;" | <center>국교</cent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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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width="40%"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d19e1d;" | <center>민주주의 지수</center> | ! colspan="1" width="40%"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d19e1d;" | <center>민주주의 지수</center> | ||
| colspan="4" style=" | 167개국중 | | colspan="4" style=" | 167개국중 54위<br>(결함있는 민주주의)<ref>7.00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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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width="40%"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d19e1d;" | <center>여당</center> | ! colspan="1" width="40%"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d19e1d;" | <center>여당</cent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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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rowspan="2" width="15%" style="color: #fff; background: #d19e1d;" | 명목 GDP | ! colspan="1" rowspan="2" width="15%" style="color: #fff; background: #d19e1d;" | 명목 GDP | ||
! colspan="1" width="15%" style="color: #fff; background: #d19e1d;" | 전체 GDP | ! colspan="1" width="15%" style="color: #fff; background: #d19e1d;" | 전체 GDP | ||
| colspan="4" style=" | | | colspan="4" style=" | 8150억 35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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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style="color: #fff; background: #d19e1d;" | 1인당 GDP | ! colspan="1" style="color: #fff; background: #d19e1d;" | 1인당 GDP | ||
| colspan="4" style=" | | | colspan="4" style=" | 10,8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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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rowspan="2" style=" color: #fff; background: #d19e1d;" | <center>GDP(PPP)</center> | ! colspan="1" rowspan="2" style=" color: #fff; background: #d19e1d;" | <center>GDP(PPP)</center> | ||
! colspan="1" style=" color: #fff; background: #d19e1d;" | 전체 GDP | ! colspan="1" style=" color: #fff; background: #d19e1d;" | 전체 GDP | ||
| colspan="4" style=" | | | colspan="4" style=" | 2조 3430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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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style="color: #fff; background: #d19e1d;" | 1인당 GDP | ! colspan="1" style="color: #fff; background: #d19e1d;" | 1인당 GDP | ||
| colspan="4" style=" | | | colspan="4" style=" | 34,54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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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width="40%"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d19e1d;" | <center>통화</center> | ! colspan="1" width="40%"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d19e1d;" | <center>통화</cent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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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한국은 만주 영토의 관리를 위해 무단통치 등을 시행하였고 자국 내 빈민과 농촌 인구들을 만주로 보내는 정책을 실행하여 만주인들의 토지 대다수를 강탈하였다. 여기에 적백내전 이후 러시아인들도 들이닥치면서 국제사회의 눈치를 본 한국 정부의 정책으로 만주인의 사회적인 신분이 더 내려가자, 3월 1일에 만주의 중심부인 신징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이에 대한 대처로 한국은 만주인에 대한 정책을 바꾸어 '교화통치'라는 이름의 동화작업을 실행하였으나 효과는 미미했었고, 오히려 당시 한국에 번지던 정치적 자유에 대한 인식이 만주에도 전파되던 중 스탈린에게 반대한 소련 인사 일부들이 몰래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졸지에 공산주의 세력들의 온상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김창암이 집권하면서 만주는 전쟁을 위한 발판으로 서서히 탈바꿈 되기 시작하였고, 동시베리아 전쟁 도중에는 작황이 최하치를 기록하거나 러시아인들에 대한 우대가 철폐되는 등 상태가 좋지 못했다. 결국 한성내전을 시작으로 북만주 지역에 대한 통제가 약화되자 곧바로 만주 내 무장 공산주의 세력과 만주 독립운동 세력은 신징시를 접수하였고, 이후 소련군이 남하한 뒤 다급해진 한국이 해동성맹 해체와 더불어 해외 식민지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면서 독립을 맞게 되었다. | 이후 한국은 만주 영토의 관리를 위해 무단통치 등을 시행하였고 자국 내 빈민과 농촌 인구들을 만주로 보내는 정책을 실행하여 만주인들의 토지 대다수를 강탈하였다. 여기에 적백내전 이후 러시아인들도 들이닥치면서 국제사회의 눈치를 본 한국 정부의 정책으로 만주인의 사회적인 신분이 더 내려가자, 3월 1일에 만주의 중심부인 신징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이에 대한 대처로 한국은 만주인에 대한 정책을 바꾸어 '교화통치'라는 이름의 동화작업을 실행하였으나 효과는 미미했었고, 오히려 당시 한국에 번지던 정치적 자유에 대한 인식이 만주에도 전파되던 중 스탈린에게 반대한 소련 인사 일부들이 몰래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졸지에 공산주의 세력들의 온상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김창암이 집권하면서 만주는 전쟁을 위한 발판으로 서서히 탈바꿈 되기 시작하였고, 동시베리아 전쟁 도중에는 작황이 최하치를 기록하거나 러시아인들에 대한 우대가 철폐되는 등 상태가 좋지 못했다. 결국 한성내전을 시작으로 북만주 지역에 대한 통제가 약화되자 곧바로 만주 내 무장 공산주의 세력과 만주 독립운동 세력은 신징시를 접수하였고, 이후 소련군이 남하한 뒤 다급해진 한국이 해동성맹 해체와 더불어 해외 식민지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면서 독립을 맞게 되었다. | ||
그러나 소련이 점령한 만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은 이념적으로 거리가 있는 이들이었고, 끝내 이 불편한 관계는 전쟁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전쟁 결과는 치열한 저항과 , 결국 1956년 | 그러나 소련이 점령한 만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은 이념적으로 거리가 있는 이들이었고, 끝내 이 불편한 관계는 전쟁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전쟁 결과는 치열한 저항과 , 결국 1956년 소련과 그 지원을 받던 북만주 정부가 모든 만주 영토에서 퇴각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끝맺었다. 전쟁이 끝난 후 황폐화된 국가를 복원해야하는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민족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만주 공산당에게 강요되었고, 그렇게 1963년 공식적으로 만주가 다문화국가라는 사실을 공표했다. | ||
오늘날의 대금민국은 수상제 및 의회제도의 성향을 띄고 있어 기존의 공산당 시기와 비슷하게 내각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국민들의 대표자를 원활히 선출하기 위한 민주주의가 결합된 형태를 가지고 있다. | 1975년은 대금민국에게 있어서 발전의 시작이 본격화된 해라고 할 수 있었다. 유전에서 발견된 석유는 자원의 부라는 축복을 대금민국에게 앉겨줬고, 소련의 영향력을 차차 줄여나가기 위한 개혁개방 정책등을 시행하여, 당시 사회주의 국가들, 그것도 전반적으로 낙후된 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들 중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 ||
하지만 개혁개방 정책의 영향으로 민족주의가 유입된 만주 국민들은 소련을 통해 유입된 러시아 문물 등에 아예 만주인의 정체성까지 기존 한치시기처럼 약해지지 않을지 경계심을 보였고, 결국 내부에서 아시아계 민족이 러시아계를 탄압하는 등의 사태 또한 벌어졌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소련의 영향을 짙게 받은 공산당의 변화라고 판단한 국민들이 [[만주 민주화 운동|만주 민주화 운동]]이라고 알려진 시위를 정부 청사 앞에서 진행하였다. | |||
수많은 각료들의 논의 끝에, 지금까지 이룩한 사회주의적인 시스템의 무늬를 유지하여 아예 총체적인 공산권의 파괴만은 막아야 한다고 판단한 당시 서기장은 시위 3일 후 사회주의 공화국 체제의 종식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고, 이에 따라 만주 민족의 풍토에 더 걸맞는 국명, 오늘날의 '대금민국'이 정식으로 수립되었다. 하지만 이후 들어선 대금민주당은 일반적인 자유민주주의 민족국가를 표방하면서도 내부에서 여전히 집단지도 체제에 기반한 사회주의적인 진보 정치를 펼치고 있으며, 때문에 민주화 시위에서 촉발된 국명 교체 이후에도 소련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 |||
오늘날, 세계에서 꼽히는 선진국 중 하나로 성장한 대금민국은 수상제 및 의회제도의 성향을 띄고 있어 기존의 공산당 시기와 비슷하게 내각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국민들의 대표자를 원활히 선출하기 위한 민주주의가 결합된 형태를 가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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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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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 =외교= | ||
==금한관계== | ==금한관계== | ||
역사적으로 한국과 만주 지방에 세워진 국가들은 문화적, 군사적으로 한국이 우위를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남만주 일대의 여진들이 태조 이성계에게 충성을 바치기도 하였으나, 중기부터는 후금이 만주에서 부상하고, 이를 조선이 명과 함께 진압한 뒤 요동을 강탈하면서 관계가 전적으로 악화되었다. 그래도 후금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였던 강희제, 옹정제의 대에서는 조선과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졌고, 이후에는 후금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건주여진과 조선이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일은 적어졌다. | |||
그러나 1860년대에 한국이 먼저 프랑스에게 개항당한 뒤 만주로의 확장을 국가정책으로서 정하면서 양국의 관계는 악화될 조짐이 드러났다. | |||
==금일관계== | ==금일관계== | ||
==금중관계== | ==금중관계== |
2024년 5월 9일 (목) 22:59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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