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목록 ] 
 [ 소개 ]  
아침해의 원유관
아침해의 원유관은 임진왜란 축소로 인해 뒤바뀐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세계관입니다.
청화대에 이화문이 꽂혀있는 이 세계의 국가, 사회, 정치 및 문화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대한국

일본국

대금민국

러시아 차르국

중화민국

티베트 왕국

중화인민공화국

소련

마다가스카르 왕국

몽골

타이완민주주의인민공화제국

대한제국

대한 공화국

예케 몽골 울루스

대청제국

만주 사회주의 공화국
대한국 황태자
이청
李清|Lee Chung
출생 1987년 3월 21일
대한국 한성부 궁내병원
국적 대한국
재위 대한제국 황태자
2010년 5월 26일 ~
계승서열 1위
[ 펼치기 · 접기 ]
본관 전주 이씨
부모 부황 명화제 이순모친 황후 윤서빈
형제자매 2남 1녀 중 장남
배우자 없음
자녀 없음
종교 유교(성리학)
학력 수학원 소학원수료
수학원 초등과졸업
수학원 중등과졸업
수학원 고등과졸업
수학원대학 문학부인문학과/석사
수학원대학 대학원법률학과/석사
신장 183cm
이청(李清)
열고
작호 정친왕(鄭親王)

개요

대한국의 황태자. 한국의 시초가 되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고황제의 후손 중 현재 차기 장자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며, 동시에 명화제윤서빈 황후의 장남이기도 하다.

현재 대한국 황위계승 1순위이며, 명화제가 생전에 양위하거나 붕어하게 될 시 차대 대한국 대황제로서 즉위하게 될 예정이다. 현재는 통상적으로 황태자 전하, 황태자 등으로 불린다.

현재 전세계에서 황태자(Crown prince)라고 불리는 단 두명의 인물 중 하나이다.

생애

1987년 3월 21일 오후 17시 45분, 당시 황태자였던 이순과 황태자비였던 윤서빈 사이의 장남으로서 한성부 궁내병원에서 태어났다.

본래는 출산이 창덕궁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당시 황실에서의 고된 시집살이로 지쳤던 며느리의 건강을 우려한 태시제가 병원에서 출산을 권유하면서 궁내병원에서 출산하기로 결정이 났고, 그렇게 3월 21일 출생했다.

작명은 할아버지였던 태시제가 황족회의를 열어 진행했고, 이름은 청(清)으로 결정됐다.

이후 둘째인 정친왕 이진도 병원에서 출생했고, 막내인 공주도 궁내병원에서 출산하면서 명화제의 자식들은 전부 병원에서 출생한 격이 됐다. 이때부터 다른 방계 황족들의 병원이용이 본격화됐다고.

유년기

출생 이후에는 부모와 함께 경운궁에서 지냈으며, 당시 건설이 다 된 경무전도 제안됐으나 새집이라 아기한테 위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기각됐다. 사실 경운궁이 채택된 이유는 원로 황족들이 많은 궁의 특성을 통해 조기 육아환경부터 황제가 될 장자로서 자랄 기반을 확실하게 마련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 당시 한국에서는 그의 출생에 국민들의 이목이 주목됐고, 아직 황제의 권위가 절대적이던 제국시절의 습관이 남아있던 시골이나 나이 지긋한 노년층의 경우 '황태자 전하의 탄신일을 황도에서 기념한다'며 한성으로 상경해서 단체로 광화문 같은 공공장소에서 절을 올리거나 행사를 벌이는 등의 일이 있었다.

첫 돌 당시에 책을 집어들었다고 하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황실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아무래도 황위를 이를 자식이다보니 교육이 꽤 엄격한 편이었지만, 당시 즉위중이던 태시제의 성향 탓에 자유로운 사상을 접할 기회도 종종 있었다고.

2년후에 그의 동생인 정친왕 이진이 출생한 이후에도 주변의 관심이 계속됐으며, 그와 정친왕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성장한 이청은 수학원 초등과, 중등과를 거쳐 대한 황실에서 많이 지원하던 대학과의 문과에 입시했고, 2010년 3월 21일에 의복을 차려입고 경복궁에서 성인식을 올렸다.

청년기

성인식을 올리고 몇달 뒤, 2010년 5월 26일에 할아버지 태시제가 붕어하면서 졸질에 상을 치르게 됐다. 이 때 아버지인 이순이 명화제로 즉위하면서 상에 이어서 황태자 책봉식까지 전부 거쳤고, 황태자(皇太子)로 책봉됐다. 잘 버텨냈지만 후유증인지 당시 궁내부에 내관의 기록에 따르면 이후에 한동안 기력이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에는 황실과 관련된 공무를 처리하거나 대외활동을 하면서 얼굴을 주로 드러냈고, 현재까지 대중들의 인식도 주기적으로 늘려왔다. 그러나 그에게는 결정적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아직까지 혼사를 치를 신부감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

늦게 태어난 황족이기도 하고 2000년대까지는 아직 20대다보니 조금 더 지켜보자는 의견이 2010년대까지는 컸지만, 2020년대인 지금까지 들어서 황태자비감이 정해지지 않으며 이 문제가 황실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다만,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현재로선 정설이다. 기록에 따르면 2013년에 삼촌인 예친왕이 연 고위층 무도회에서 만난 수학원 동기이자, 당시 정부에서 공직자로 일하던 정다혜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다만 정확상 그 무도회에서 청혼을 여러번 했음에도 실패했다는 듯. 우편기록을 보면 편지도 주고받았다는 듯 하나 확실하진 않다.

그러나 숙지할 점은 문제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점점 확산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청의 아우인 정친왕 이진이 먼저 혼사를 올린 뒤부터 또다시 황실의 장자계승이 끊기는 것에 노이로제를 느끼는 궁내부의 인원들이 이진에 대한 견제와 이청에 대한 옹호를 강화하면서 점점 황실 간 인원들의 사이까지 나빠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것.

그런데 올해 1월에 들어, 이청과 정다혜가 같이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꽤 자주 보이게 되면서 황실암투에 또 다른 국면이 찾아오게 됐다. 문제는 지금 정친왕 내외에서 임신소식이 나왔다는 것이며, 동시에 정친왕과 이청의 사이도 SNS에 더이상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빠진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 당시 황태자가 직접 청혼을 했고, 승낙이 들어왔다는 발표가 궁내부 측에서 나왔다. 이로서 기나긴 시간동안 황실의 골칫거리였던 이청의 후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발은 내딛은 셈이지만, 앞으로는 궁내부와 자식이 생길 예정인 이진의 대립이 예정된 게 기정사실로 보이는 형국이라 황실 상황이 밝지만은 않은 상황

인간관계

정친왕과의 관계는 원래는 소셜 미디어에 사진이 올라오고 단체사진고 잘 보이는 등, 나쁘지 않고 오히려 좋은 편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친왕이 2017년에 혼사를 올린 이후인 2018년부터 궁내부 건물 앞에서 정친왕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표정이 조금 어두운듯한 모습을 보였고, 현재는 더 이상 소셜미디어 계정에 정친왕과의 사진이 올라오지 않으며 둘의 사이가 악회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종종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정친왕비 민영애와의 관계는 나쁘진 않은지 최근 황실만찬에서 대화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인 명화제와의 사이가 좋은 편으로 보이며, 관리인들에 따르면 둘이 같이 종묘로 가는 횟수가 꽤나 많다고 한다.

평가

현재로선 그래도 국민들의 황태자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다. 사실 이건 정친왕의 행실 문제가 어느정도 있는데, 한 번은 소셜 미디어에 서민들이 민감할만한 글을 올렸다가 비판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나 황태자는 지금까지 그런 실수가 없었기 때문. 이 외에도 종종 있는 외출 당시 서민음식을 자연스럽게 먹는 사진도 올리면서 공감도 소소하게 얻고 있다.

황태자의 수많은 업무와 자유연애에서 비롯된 갈등에 대한 동정심도 꽤 사회에 존재하는 편이며, 현재 젊은층의 경우 청혼 신청이 받아들여진 만큼 앞으로 황태자에게 순탄한 길이 펼쳐지길 바라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으며, 황제의 대리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점 또한 그에 대한 고평가 요소다.

가계

가족관계

대외관계

기타

비슷하게 나이에 비해 젊어보이는 명화제에게 물려받은 체질인지는 몰라도 외모가 꽤 동안인 편이다. 때문에 얼굴이 더 늙어보이는 동생 정친왕이 사실 불륜으로 나온 서자가 아니냐는 소문이 가끔 돌기도 하며, 그래서 정친왕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경우 대게 저 레퍼토리를 꺼내들며 비난하는 케이스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