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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해의 원유관}} | {{아침해의 원유관}} | ||
{{대한국 황상}} | {{대한국 황상}} | ||
{{대한국 황실 (아침해의 원유관)}} | |||
{{아침해의 원유관 벽지}} | {{아침해의 원유관 벽지}} | ||
</div> | </div> |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
{| class="wikitable" style="float: right; border:2px solid #e3ba62;max-width:450px;" | {| class="wikitable" style="float: right; border:2px solid #e3ba62;max-width:450px;" | ||
! colspan="5" width="450px" style="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19c22, #e3ba62 20%, #e3ba62 80%, #c19c22); color: #b22222; font-size: 12pt; line-height: 1.7em" | 대한국 초대 국왕<br>대한제국 초대 황제<Big><br>고조 | ! colspan="5" width="450px" style="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19c22, #e3ba62 20%, #e3ba62 80%, #c19c22); color: #b22222; font-size: 12pt; line-height: 1.7em" | 대한국 초대 국왕<br>대한제국 초대 황제<Big><br>고조 태황제 이현| 高祖 太皇帝 李鉉</Bi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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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5" | <div style="margin: -5px -9px">[[파일:광무제 | ! colspan="5" | <div style="margin: -5px -9px">[[파일:대한 고조 광무제 어진영.png|450p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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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rowspan="2"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rowspan="2"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출생 | ||
| colspan="4" style="font-size: ; | 1831년 9월 8일 | | colspan="4" style="font-size: ; | 1831년 9월 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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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style="font-size: | 조선 한성부 경운궁 수인당 | | colspan="4" style="font-size: | 조선 한성부 경운궁 수인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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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 rowspan="2"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rowspan="2"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즉위 | ||
| colspan="4" style="font-size: ; | 1864년 5월 1일 (30세) | | colspan="4" style="font-size: ; | 1864년 5월 1일 (30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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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style="font-size: | 조선 한성부 창경궁 명정전 | | colspan="4" style="font-size: | 조선 한성부 창경궁 명정전 | ||
|- | |- | ||
! colspan="1" rowspan="2"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rowspan="2"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사망 | ||
| colspan="4" style="font-size: ; | 1899년 12월 5일 (65세) | | colspan="4" style="font-size: ; | 1899년 12월 5일 (65세) | ||
|- | |- | ||
| colspan="4" style="font-size: | [[대한제국 (아침해의 원유관)|대한제국]] 한성부 창경궁 환경전 | | colspan="4" style="font-size: | [[대한제국 (아침해의 원유관)|대한제국]] 한성부 창경궁 환경전 | ||
|- | |- |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능묘 |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홍릉(洪陵)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홍릉(洪陵) | ||
|- | |- | ||
! colspan="1" rowspan="6"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rowspan="6"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재위 | ||
| colspan="6" style="font-size: ; color: #ffd400; background: #BF1400;"| '''제 26대 조선국 국왕''' | | colspan="6" style="font-size: ; color: #ffd400; background: #BF1400;"| '''제 26대 조선국 국왕''' | ||
|- | |- | ||
| colspan="6" style="font-size: ;" | 1864년 5월 1일 ~ 1877년 9월 17일 | | colspan="6" style="font-size: ;" | 1864년 5월 1일 ~ 1877년 9월 17일 | ||
|- | |- | ||
| colspan="6" style="font-size: ; color: # | | colspan="6" style="font-size: ; color:#E3BA62; background: #1b0e64;"| '''초대 대한국 국왕''' | ||
|- | |- | ||
| colspan="6" style="font-size: ;" | 1877년 3월 2일 ~ 1894년 2월 14일 | | colspan="6" style="font-size: ;" | 1877년 3월 2일 ~ 1894년 2월 14일 | ||
|- | |- | ||
| colspan="6" style="font-size: ; color: # | | colspan="6"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초대 대한제국 대황제''' | ||
|- | |- | ||
| colspan="6" style="font-size: ;" | 1894년 4월 7일 ~ 1899년 12월 19일 | | colspan="6" style="font-size: ;" | 1894년 4월 7일 ~ 1899년 12월 1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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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margin: 4.5px -10px -12px 3px; width: calc(100% - 5px);text-align:left; background: #fff; font-size: 100%" | {|style="margin: 4.5px -10px -12px 3px; width: calc(100% - 5px);text-align:left; background: #fff; font-size: 100%" | ||
|- | |- |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본관 |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전주(全州)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전주(全州) | ||
|- | |- |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성씨 |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이(李)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이(李) | ||
|- | |- |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휘 |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재원(載元)→ 현(炫)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재원(載元)→ 현(炫) | ||
|- | |- |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부모 |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양부:흥녕단효대왕 이창원, 생부:열조 시황제, 양모:흥년단효대왕비, 생모:정경문황후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양부:흥녕단효대왕 이창원, 생부:열조 시황제, 양모:흥년단효대왕비, 생모:정경문황후 | ||
|- | |- |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부인 |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범성태황후 (아침해의 원유관)|범성태황후]]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범성태황후 (아침해의 원유관)|범성태황후]] 김씨 | ||
|- | |- |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자녀 |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이훈 (아침해의 원유관)|순종 융희제 이훈]]외 3남 2녀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이훈 (아침해의 원유관)|순종 융희제 이훈]]외 3남 2녀 | ||
|- | |- | ||
! colspan="1" width="24%" style="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width="24%" style="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묘호 |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고조(高祖)'''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고조(高祖)''' | ||
|- | |- |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width="24%"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시호 |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순명경흥전의숭례이민비광경응명입기지화신열효''' | | colspan="4" align=left style="font-size: ; | 순명경흥전의숭례이민비광경응명입기지화신열효'''태황제'''<br>(純明景興專毅崇禮彛敏比孝廣慶凝明立基地和新劣'''太皇帝''') | ||
|- | |- | ||
! colspan="1"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연호 | ||
| colspan="4" style="font-size: | 광무(光武) | | colspan="4" style="font-size: | 광무(光武) | ||
|- | |- | ||
! colspan="1"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 ! colspan="1"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군호 | ||
| colspan="4" style="font-size: | 완림군(完林君) | | colspan="4" style="font-size: | 완림군(完林君) | ||
|- | |||
! colspan="1" style="font-size: ; color: #b22222; background: #e3ba62;" | 절일 | |||
| colspan="4" style="font-size: | 만수성절(萬壽聖節) | |||
|} | |} | ||
|} | |||
{| class="wikitable" style="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 color:#000000;max-width:470px;border:2px solid #e3ba62;margin-top:15px" | |||
|- | |||
| style="color:#b22222;padding:5px" | 어진영 | |||
|- | |||
| [[파일:광무황제 어진영.png]] | |||
|- | |||
|} | |} | ||
{{목차}} | {{목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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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인양요, 그리고 개항 == | == 병인양요, 그리고 개항 == | ||
베트남에서의 빠른 승리로 단련된 프랑스 해군의 압도적인 무력에 겁에 질린 안동 김씨는, 급히 논의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이미 일본과 월남도 서양 열강에게 넘어갔고, 송과 순을 위시한 중화 2개국 또한 모두 서양 열강들에게 유린당한것을 참고하였는데, 이 중 상태가 가장 양호해보이던 선택지가 일본처럼 문호를 열고 조기에 싸움을 중단하는것이라 판단한 안동 김씨는 우선 국체의 보존을 위해 개항을 할 것을 고조에게 부탁했고, 지지층인 왕도개화파의 추후 기반을 위해 고조는 이를 수락했다. 이후 프랑스에 의해서 조선이 불평등 조약까지 체결하자 신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안동김문이 나라를 팔아먹은 게 틀림없다며 왕의 전면복귀를 통한 양이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서서히 민중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 조선의 홍삼, 인삼 무역 단속에 분노한 나폴레옹 3세는 이 무렵 조선에 군을 보내 개항시킬것을 지시한 상태였다. 베트남에서의 빠른 승리로 단련된 프랑스 해군의 압도적인 무력에 겁에 질린 안동 김씨는, 급히 논의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이미 일본과 월남도 서양 열강에게 넘어갔고, 송과 순을 위시한 중화 2개국 또한 모두 서양 열강들에게 유린당한것을 참고하였는데, 이 중 그나마 상태가 가장 양호해보이던 선택지가 일본처럼 문호를 열고 조기에 싸움을 중단하는것이라 판단한 안동 김씨는 우선 국체의 보존을 위해 개항을 할 것을 고조에게 부탁했고, 지지층인 왕도개화파의 추후 기반을 위해 고조는 이를 수락했다. 이후 프랑스에 의해서 조선이 불평등 조약까지 체결하자 신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안동김문이 나라를 팔아먹은 게 틀림없다며 왕의 전면복귀를 통한 양이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서서히 민중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 ||
이 문제를 안동 김씨 세력은 서양 문물을 도입하여 민생을 달래 보려고 하거나 프랑스 정부에 의존하여 권력을 강화하는 조치도 생각해보는 등 어느정도 대안을 계획하였으나, 프랑스의 목적이 조선의 식민지화라는걸 이들도 안지라 어정쩡하게 협력하는 상황이었다. 한편, 풍양 조씨는 더이상 균형을 맞춰줄 필요가 없어진 안동김씨를 몰아내기 위해 이하응, 고조와 결탁했다. 동시에 이들의 휘하에 있는 붕당들과 파들은 프랑스에 대한 조치를 의논하기도 하였고, 이때쯤 이들의 협력을 눈치 챈 안동김씨 세력은 반격을 준비하던 도중,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이했다. | 이 문제를 안동 김씨 세력은 서양 문물을 도입하여 민생을 달래 보려고 하거나 프랑스 정부에 의존하여 권력을 강화하는 조치도 생각해보는 등 어느정도 대안을 계획하였으나, 프랑스의 목적이 조선의 식민지화라는걸 이들도 안지라 어정쩡하게 협력하는 상황이었다. 한편, 풍양 조씨는 더이상 균형을 맞춰줄 필요가 없어진 안동김씨를 몰아내기 위해 이하응, 고조와 결탁했다. 동시에 이들의 휘하에 있는 붕당들과 파들은 프랑스에 대한 조치를 의논하기도 하였고, 이때쯤 이들의 협력을 눈치 챈 안동김씨 세력은 반격을 준비하던 도중,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이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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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칭제까지 한 고조였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건강은 1890년에 있었던 수학원 제정 논의와 1891,92년의 서원제, 신분제 개편 이후부터, 신료들과 힘을 합쳐 일했음에도 개혁의 막중함으로 인한 과로로 인해 딱히 좋은 상태는 아니였다. 때문에 종종 요양을 1달동안 하곤 했으며, 이 시기동안은 신료들에게 대부분의 일을 맡겼다. | 이렇게 칭제까지 한 고조였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건강은 1890년에 있었던 수학원 제정 논의와 1891,92년의 서원제, 신분제 개편 이후부터, 신료들과 힘을 합쳐 일했음에도 개혁의 막중함으로 인한 과로로 인해 딱히 좋은 상태는 아니였다. 때문에 종종 요양을 1달동안 하곤 했으며, 이 시기동안은 신료들에게 대부분의 일을 맡겼다. | ||
붕어하기 1년 전, 고조는 병든 몸을 이끌고 자신의 오랜 정치적 동료이자, 이제는 아소당 누워서 서서히 죽어가던 흥선군 이하응의 병문안을 왔다. | 붕어하기 1년 전, 고조는 병든 몸을 이끌고 자신의 오랜 정치적 동료이자, 이제는 아소당 누워서 서서히 죽어가던 흥선군 이하응의 병문안을 왔다. | ||
{| class="wikitable" style="border:2px solid #dcdcdc; border-left:6px solid #01337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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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margin:5em;background-color:#f2f2f2;color:#000;padding:12px;padding-left:15px;padding-right:60px;font-size:10pt;" | | |||
흥선군 이하응이 황제에게 말했다. | |||
"신이 이제는 지난날이 지나 노쇠하여 체(體)의 거동이 예전같지 못해, 폐하의 용안 앞에서도 차마 일어나지를 못하는 상황이온데, 죽을 날을 기다리던 중에 폐하를 다시 뵈오니 황망하기 그지 없습니다." | |||
하여 황제가 말했다. | |||
"짐이 어찌 분골쇄신의 각오로 업무에 임하던 지난날 공의 노고를 잊겠는가? 더구나 경이 짐이 왕업을 수행하는 동안 나락과 고락을 같이한것을 만리 밖으로 모르는 이가 없다. 허니 어찌 문안을 하는 것이 큰 되겠는가?" | |||
흥선군 이하응 공이 황제에게 말하길 | |||
"아국이 근 10년간 500년을 걸쳐 쌓아 온 왕업과 종묘사직을 한 순간에 무너트릴 수 있는 국난을 여러 번 만났었는데, 이것이 모두 모면되고 물리쳐졌사옵고 또 백성들을 옳바르게 이끌어 황상으로 오르셨으니 필시 신의 백골이 진토가 된 다음에도 천하가 태평하고 길한 일만이 계속될 것이라 믿사옵니다." | |||
하여, 황제가 말했다. | |||
"아국이 본래 고유의 강토를 되찾고 칭제를 얻기까지의 대계를 짐이 구상하는 데는 상제가 도우신 바도 있었지만, 경과 같은 충직하고 유능한 신하들이 조정에서 짐을 보필하였기에 가능했던것이기도 하다. 하늘도 필시 그 덕을 알아 경의 나이가 금해로 종심에 이르렀으니 어찌 쾌차하여 이 나라의 부국과 강병을 더 볼 수 있지 아니하겠는가? 생각하건대, 경의 죽음이 찾아오기까지는 아직 멀었을 것이다." | |||
<br><small>- 고조실록</small> | |||
|} | |||
당시 고조는 이후 들리지 않는 몇마디를 더 나누다가 퇴궐하였는데, 그날 밤에 올라온 수라상을 거부하고 밤을 새며 용상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정확히 다음날, 완경군 이재원이 아소당에서 나온 뒤 대원군이 사망했고, 고조는 오전까지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다가 그날 저녁 만찬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사관이 기록했다. | 당시 고조는 이후 들리지 않는 몇마디를 더 나누다가 퇴궐하였는데, 그날 밤에 올라온 수라상을 거부하고 밤을 새며 용상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정확히 다음날, 완경군 이재원이 아소당에서 나온 뒤 대원군이 사망했고, 고조는 오전까지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다가 그날 저녁 만찬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사관이 기록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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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
= 여담 = | = 여담 = | ||
생전 | 생전 군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며, 그 탓인지 처음 입은 양장도 군복이었다고 한다. 당시 방한하여 그를 만난 엘러노어 루즈벨트의 기록에 따르면, 마치 프로이센 융커를 연상시키는 인상이었다는 듯. | ||
관료생활로 인한 습관인지는 몰라도 업무 처리에 굉장히 열정적이었다고 하며, 이 탓인지 세종대왕처럼 경복궁에 머무른 몇 안되는 한국의 군주들 중 한명이다. | |||
</div> | </div> |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
=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 | =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 | ||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방영한 KBS 대하드라마 모음집 중, 근대 초기를 다룬 3부에서 등장했다. 처음에 자신에게 정치적인 속임수를 보여준 이하응에게 그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한 정치공세로 대응하거나, 안동김씨에 대한 탄압을 지시한 뒤 혼자 용상에 앉아 씨익 하고 미소짓는 등, 음흉한 정치가로서의 그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는 평. | |||
게임 《유림:최후의 사대부》에서는 지부상소를 하다가 살해당한 이항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 |||
웹툰 《블랙 윈터》에서는 작중 프랑스인인 발렌의 혼잣말을 통해 '제 나라의 신민도 팔아넘기는 극동의 왕'으로 잠시 언급됬는데, 정확상 고조 치세 당시에 한국 정부의 주도하에 기생들을 해외로 진출시켰던 정책을 의식한것으로 보인다. | |||
굽시니스트 세계사 만화의 병인양요 편에서도 등장. '계획대로' 밈을 패러디한 얼굴로 등장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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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아침해의 원유관]] | [[분류:아침해의 원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