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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황태자 이청 李棖|Lee Chu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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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92년 3월 21일 | ||||||||||||||||||||||||
대한국 한성부 궁내병원 | |||||||||||||||||||||||||
국적 | |||||||||||||||||||||||||
재위 | 대한국 황태자 | ||||||||||||||||||||||||
2010년 5월 26일 ~ | |||||||||||||||||||||||||
계승서열 | 1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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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의 황태자. 한국의 시초가 되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고황제의 후손 중 현재 차기 장자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며, 동시에 명화제와 윤서빈 황후의 장남이기도 하다.
현재 대한국 황위계승 1순위이며, 명화제가 생전에 양위하거나 붕어하게 될 시 차대 대한국 대황제로서 즉위하게 될 예정이다. 현재는 통상적으로 황태자 전하, 황태자 등으로 불린다.
현재 전세계에서 황태자(Crown prince)라고 불리는 단 두명의 인물 중 하나이다.
1992년 3월 21일 오후 17시 45분, 당시 황태자였던 이순과 황태자비였던 윤서빈 사이의 장남으로서 한성부 궁내병원에서 태어났다.
본래는 출산이 창덕궁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당시 황실에서의 고된 시집살이로 지쳤던 며느리의 건강을 우려한 태시제가 병원에서 출산을 권유하면서 궁내병원에서 출산하기로 결정이 났고, 그렇게 3월 21일 출생했다.
작명은 할아버지였던 태시제가 황족회의를 열어 진행했고, 이름은 청(清)으로 결정됐다.
이후 둘째인 정친왕 이진도 병원에서 출생했고, 막내인 공주도 궁내병원에서 출산하면서 명화제의 자식들은 전부 병원에서 출생한 격이 됐다. 이때부터 다른 방계 황족들의 병원이용이 본격화됐다고.
출생 이후에는 창덕궁에서 지냈으며, 경복궁도 제안되었으나 조금 자란 뒤에 옮기자는 것으로 의견이 귀결되어 유년 시절의 절반은 창덕궁에서, 자란 이후인 13세부터는 경복궁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만 종종 창덕궁에서도 머무는 등, 애정을 보였다고.
이때 당시 한국에서는 그의 출생에 국민들의 이목이 주목됐고, 아직 황제의 권위가 절대적이던 제국시절의 습관이 남아있던 시골이나 나이 지긋한 노년층의 경우 '황태자 전하의 탄신일을 황도에서 기념한다'며 한성으로 상경해서 단체로 광화문 같은 공공장소에서 절을 올리거나 행사를 벌이는 등의 일이 있었다.
첫 돌 당시에 서책을 집어들었다고 하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황실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아무래도 황위를 이를 자식이다보니 교육이 꽤 엄격한 편이었지만, 당시 즉위중이던 강조의 성향 탓에 자유로운 사상을 접할 기회도 종종 있었다고.
2년후에 그의 동생인 정친왕 이진이 출생한 이후에도 주변의 관심이 계속됐으며, 그와 정친왕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고 전해진다. 1991년에 증조할아버지인 선종이 붕어하자 장례식에 참석, 의젓한 모습을 보여 주위 황실 어른들을 감탄시키기도 했다고. 그렇게 성장한 이청은 수학원 초등과, 중등과를 거쳐 대한 황실에서 많이 지원하던 대학과의 문과에 입시한 뒤 2011년 경 성인식을 치렀다.
성인식을 올리고 몇달 뒤, 2010년 5월 26일에 할아버지 강조가 붕어하면서 졸질에 상을 치르게 됐다. 이 때 아버지인 이순이 명화제로 즉위하면서 상에 이어서 황태자 책봉식까지 전부 거쳤고, 황태자(皇太子)로 책봉됐다. 잘 버텨냈지만 후유증인지 당시 궁내부에 내관의 기록에 따르면 이후에 한동안 기력이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에는 황실과 관련된 공무를 처리하거나 대외활동을 하면서 얼굴을 주로 드러냈고, 현재까지 대중들의 인식도 주기적으로 늘려왔다.
비슷하게 나이에 비해 젊어보이는 명화제에게 물려받은 체질인지는 몰라도 외모가 꽤 동안인 편이다. 동생인 정친왕보다 어려보일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