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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은 헌법에 의하여 황제가 통치하는 황제국이나 황제가 '''반드시''' 국민의 민의를 따라야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대한국 헌법 제41조에 따라 황제가 국가원수의 직무를 맡으며, 정부수반인 [[대한국 내각총리대신|내각총리대신]]과 국민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 [[대한국 국회]]가 존재한다. 대한국 총리는 행정부의 책임자로서 각 정부부처의 국무대신과 정부대관을 임면한다. 현재 대한국 황제는 [[이희|효명황제]], 제1집권여당은 [[대한공산당]]이다. | 대한국은 헌법에 의하여 황제가 통치하는 황제국이나 황제가 '''반드시''' 국민의 민의를 따라야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대한국 헌법 제41조에 따라 황제가 국가원수의 직무를 맡으며, 정부수반인 [[대한국 내각총리대신|내각총리대신]]과 국민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 [[대한국 국회]]가 존재한다. 대한국 총리는 행정부의 책임자로서 각 정부부처의 국무대신과 정부대관을 임면한다. 현재 대한국 황제는 [[이희|효명황제]], 제1집권여당은 [[대한공산당]]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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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8일 (토) 15:33 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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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大韓國 | Kore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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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 국장 | ||||||||||||||||||||||||||||||||
광명천지 光明天地 | |||||||||||||||||||||||||||||||||
상징 | |||||||||||||||||||||||||||||||||
국가 | 애국가 | ||||||||||||||||||||||||||||||||
국화 | 오얏꽃 | ||||||||||||||||||||||||||||||||
역사 | |||||||||||||||||||||||||||||||||
• 1392년 8월 13일 조선 개국 • 1861년 1월 1일 칭제건원, 대한국 선포 | |||||||||||||||||||||||||||||||||
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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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행정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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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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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LD | |||||||||||||||||||||||||||||||||
.kr, .한국 | |||||||||||||||||||||||||||||||||
국제 코드 | |||||||||||||||||||||||||||||||||
416, KOR, KR | |||||||||||||||||||||||||||||||||
국제 전화 코드 | |||||||||||||||||||||||||||||||||
+82 |
위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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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국(한자:大韓國, 만주어:ᡩᠠᡳᡥᠠᠨ ᡤᡠᡵᡠᠨ, 영어:Korea)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로, 약칭은 한국(韓國), 대한(大韓)이다.
국토는 아시아 대륙 내부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걸쳐있으며 수도는 황도와 서울이며 최대도시는 성경이다.
상징
국호
대한국이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의 길을 걷기 이전에는 대한은 한민족(조선민족) 대한인의 땅, 문화를 뜻했으나 20세기 초 스스로 중화제국을 칭하고 나서는 ‘한(韓)’은 그저 국호의 의미 이상을 갖지 않게 되었다.
약칭은 한국 또는 대한이며, 현재는 한국으로 쓰는것이 대부분이지만 1970년대까지는 대한이 주로 쓰여서인지 중장년층들 중에서는 아직도 대한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외의 중국과 일본등 한자문화권에서는 ‘한국’이라고 표시한다.
국기
태극기 太極旗 | |
지위 | 공식 국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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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사용 | 1882년 |
채택 | 1883년 3월 6일 |
근거 법령 | <대한국국기법> |
제작자 | 이응준(李應浚, 1832 - 1900) 박영효(朴泳孝, 1861 - 1939) |
국장
대한국 국장 大韓國國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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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 공식 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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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시기 | 1883년 3월 10일 |
근거 법령 | <대한국 국가상징에 관한 칙령> 내각령 제23399호 <대한국 국장 규정> |
역사
자연환경
면적
자연재해
생태
기후
국토 전체가 대부분 냉대동계건조기후를 띄고 몽골고원에는 고산기후가 나타나 국토 대부분이 겨울에 몹시 춥다. 다만 대만(타이완), 해남(하이난), 유구(류큐)등 온난대~열대 기후를 띄는 지역도 존재한다.
자원
인문환경
인구
민족구성
한국은 한족(韓族), 화족, 만주족, 몽골족, 일본계, 러시아계와 다양한 소수민족등 여러 민족이 살아가는 다민족 국가이다. 여타 비국적자 외국인들까지 합치면 셀 수도 없이 많은 민족들이 있으나 여기서는 한국 국적자 위주로 서술한다.
화족(華族)은 한국에서 가장 인구수가 많은 민족으로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그중 만화(滿華)는 19세기말 한국이 만주로 진출할때부터 만주에 살고 있던 중국인들로 한족과 더불어 한국 내 주류 민족이다. 현대 만화족들은 대다수가 한국어를 사용하는 등 문화적으로 동화되어 한족과 구분되지 않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수가 많은 것은 중국 내전 당시 전쟁을 피해 건너온 피난민들인 외화(外華)이며 이들은 대부분 화북 지방, 간쑤성 출신들이었다. 외화족은 1960년대 이후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일부는 한국에 남았다. 만화족은 1990년 이후 인구를 조사하지 않고 있으며 외화족은 2023년 기준 645만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족(韓族)은 만화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인구수가 많은 민족으로 조선족(朝鮮族)이라고도 한다. 조선반도에서 살며 대한국의 거의 유일했던 민족으로 한국이 만주로 진출하는 동시에 그곳으로 대량의 이주가 일어났다. 특히 추운지역인 만주에서의 농업을 흥성시켜 많은 부를 축적했고 현재에도 한족이 한국의 정치와 경제등 많은 분야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평균수명
언어
종교
제국 선포후 1891년 조정에서 ‘신앙자유령’을 내리자 지하 교회에서 숨어지내던 로마 가톨릭등 서구에서 유입된 신종교 교도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1913년 중화민국의 몽골 침공을 대한국이 저지하고 몽골을 사실상 한국의 강역으로 끌어들이면서 몽골과 투바의 티베트 불교도들을 포용하기 위해 황제 스스로가 몽골의 불교도 지도자인 ‘젭춘담바 호툭투(몽골문자: ᠵᠠᠪᠽᠠᠨᠳᠠᠮᠪᠠ ᠺᠦᠲᠠᠭᠲᠦ)’를 국사(國師)로 모시고 불교도들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불교도들도 크게 늘어났다.
현대에는 한반도와 남만주 일대의 대승불교와 몽골, 투바의 티베트 불교가 혼합되어있고 가톨릭, 개신교 교도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으나 주로 한민족이 주로 믿는 편이다.
하지만 40%에 육박하는 무종교인과 황실과 정부의 강력한 정교분리 정책으로 국가 전체 분위기는 상당히 세속적이다.
교통
국토가 넓고 인구 대국인 나라들 중에서는 교통이 가장 균형잡혀있다고 평가받는다. 황도, 심양, 서울같은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들은 철저히 대중교통 위주로 교통체계가 짜여져 있으며 인구가 적고 넓은 지방에서는 주로 자가용을 이용한다. 도시간 물류수송등은 철도와 도로를 주로 이용한다.
도로교통
부산에서 출발하여 초대형 대도시인 서울, 심양, 황도는 물론 할빈과 북강성의 남평까지를 잇는 국토종단 고속도로와 평흥에서 시작해 할빈, 치치가르, 후룬부이르를 지나 몽골성의 성도 칸허트를 거쳐 투바성의 성도인 크즐이 종점인 국토횡단고속도로가 있다.
이 두개의 고속도로를 핵심 축으로 황도와 심양에서 고속도로가 각지로 뻗어나가는 형태를 하고 있다.
철도망도 상당히 촘촘하게 구성되어있지만 이는 북녕, 발해, 대한성과 면적이 작은 대만성등 한정으로 북강성이나 몽골성등 면적은 넓지만 인구가 적은편에 속하고 여러 제반사정으로 인해 철도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곳은 도로교통이 우세하다. 물류수송등도 대부분 도로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국토횡단고속도로가 2024년 북평시까지 연장되어 할빈-북평간의 물류수송의 철도 부담을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철도교통
철도교통이 발달해 있으나 여객수송보다는 주로 물류운송에 치중해있는 편이다. 1900년대~1930년대 그야말로 전국토에 철도가 깔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길이의 철도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이는 기술, 군사력의 발전과 맞물리면서 동아시아 전쟁 당시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여객용 고속철도인 KTX와 빛나래가 있다. 일반 철도 노선 총연장의 40% 가량이 KTX 노선과 나란히 깔려있으며. 다른 노선 중에서도 할빈-황도-심양-평양-서울-부산 대도시를 잇는 종단고속선은 수요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하지만 할빈에서 서울이나 부산까지 KTX를 이용해 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으며 이정도 거리면 대부분 항공교통에 밀린다. 그럼에도 국토종단노선은 구간별 수요가 너무 많아 주말이되면 번번히 매진되는 것이 일상이다. 결국 한국철도공사에서는 2007년 황도-심양-서울을 잇는 노선인 '중앙고속선'을 2030년 목표로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자기부상열차라 이것이 완공되면 황도와 서울 양대 수도는 2시간 안팎이면 이어져 항공교통과 비교해도 시간으로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다.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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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행정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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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행정구역 대개편
2020년 6월 20일, 한중간의 국경이 명확해지며 중앙정부는 연내로 행정구역 개편을 예고했다. 실제로 행정구역 개편은 2012년경부터 추진되어왔던 방안으로 기존의 성-도-시군 형태의 행정구역은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있어왔고 도급 행정구역이 도, 도급시, 도급구등 용어부터 시민들에게 혼동을 줄 수 있어 충분한 명분 또한 있었다.
8월 27일, 중앙정부는 약 2달간의 시범기간 후인 11월 1일부터 새로운 행정구역 제도를 실시하기로 발표했다.
주요 골자는 도급 행정구역 폐지, 성할 행정단위를 신설하여 성내에서 특수한 사유나 중추적 역할을 맡는 핵심 구역을 아이막, 광역시로 따로 지정하였다. 아울러 이전까지 존재했던 모든 도에 성정부 지청을 두어 성장이 성의회의 동의를 얻어 지청장을 임명하기로했다.
성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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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성급 행정구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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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은 성부제(省府制)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 성급 행정구역은 총 14개이다.
부급 행정구역은 내각총리대신이 필요하다고 인정될때 국회의 동의를 받아 신설할 수 있는 특별한 최상위 행정구역이다. 보통 군사적 목적, 소수민족을 보호할 필요가 있거나 성급으로 두기에는 인구나 면적등이 법정 기준보다 작을 때 설치된다.
성부급 아래에는 차례대로 도(道)급, 시군(市郡)급 행정구역이 있다.
도급행정구역은 다음과 같다.
- 도
- 도급시
- 아이막 : 몽골성, 내몽골성에서만 쓰이는 도급 행정구역 명칭
- 도급구 : 특별시 산하의 행정구역
해외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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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해외영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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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영토(海外領土, Korean Overseas Territory)는 한국 본토에는 속하지 않지만 한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을 뜻한다. 일부 해외영토를 제외하면 본국과 여권도 다르고 올림픽이나 월드컵에도 따로 출전하는등 국제적으로 속령 취급을 받는다.
자치령(自治領, Dominion)은 성부급과 더불어 최상위 행정구역이지만 성부보다 훨씬 높은 자치권을 갖고 있는 행정구역이며 국제법상 속령으로 취급됐다. 대한국 헌법도 이곳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별도의 자치의회와 자치정부 수반이 있다. 총독은 실권이 없이 형식상으로만 존재한다. 2020년 총독령 분류가 폐지되며 직할령을 제외한 모든 해외영토가 자치령이 되었다. 직할령(直轄領, Direct control)은 중앙정부에서 임명한 '행정관'이 해당 지역을 직접 통치하는 지역을 의미한다. 보통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된다. 한국의 법률상 한국의 영토로 분류되기는 하나 별도의 의회나 자체 법원등이 존재하기도 하는등 완전한 영토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몇 있다.
2020년까지는 총독령(總督領, Governorate)이라는 분류도 존재했으나 폐지되었고 모두 자치령으로 통폐합되었다. 중앙정부에서 임명한 총독이 행정권을 행사하는 지역이었으며 역내 자치의회가 행정수반을 선출하면 그 사람을 중앙정부에서 총독으로 임명한다는 형식적인 절차를 거쳤다. 자치령과 총독령의 구분은 총독과 해당 지역의 행정관이 분리되는지 여부, 즉 총독에게 행정권이 귀속되는지 여부에 따랐다.
정치
대한국은 헌법에 의하여 황제가 통치하는 황제국이나 황제가 반드시 국민의 민의를 따라야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대한국 헌법 제41조에 따라 황제가 국가원수의 직무를 맡으며, 정부수반인 내각총리대신과 국민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 대한국 국회가 존재한다. 대한국 총리는 행정부의 책임자로서 각 정부부처의 국무대신과 정부대관을 임면한다. 현재 대한국 황제는 효명황제, 제1집권여당은 대한공산당이다.
입법
대한국 국회 원내 구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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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행정
사법
외교
한미관계
한미관계의 시작은 1863년, 세인트 메리스호 사건으로 용강포를 개항한 것을 계기로 1865년,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며 수교했다. 이후 2차세계대전이 발발했을때 연합군 편에서 유럽전선에 병력을 파병하고, 아시아 태평양 전쟁 때는 미국과 연합해서 일본을 격퇴시키기도 했다. 전후 냉전이 도래하고 공산주의 열풍이 불자 미국은 대한국이 아시아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을 든든한 동지라고 생각하며, 베트남전쟁 당시 파병을 요청했으나, 한국측에서는 중립, 비동맹노선 외교를 천명하며, 파병을 거부했다. 이후에도 미국과는 어느정도 거리를 두었고 소련 붕괴후 현재까지도 이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이런 미국과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관계’라고 할수 있겠다.
한러관계
역사적으로 한러전쟁, 아시아 태평양 전쟁 초기 소련의 기습공격등으로 인해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고 198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소련과 국교를 수립하고 공식적 적대관계는 청산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한국 국민의 러시아에 대한 감정은 그닥 좋지 못하다. 다만 러시아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한국 문화가 퍼지면서 점차 좋아지고 있다. 또 최근에는 대한국의 인스턴트 라면들이 러시아로 퍼지면서 러시아 국민들, 특히 젋은 세대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고있다.
현재는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러시아가 사실상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도를 낮추고 동유럽 패권 유지에 더 관심을 두고 있어 현재는 서로 겹치는 이권이 별로 없어 직접적 충돌은 거의 없다.
2024년 10월 즈음부터 대한국과 러시아 사이 만주 국경지대에서 러시아 출신의 공산주의 무장단체 200여명이 인근 마을에 들어가 주거칩입, 절도, 살인, 강간등의 범죄행위를 수십차례 저질러 문제가 되고있다.
한일관계
1945년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일본제국의 패전으로 마무리되고 일본 본토는 황폐화됐다. 이때 대한국은 일본 내의 여론을 의식해 1947년부터 원조를 해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일본은 현재의 강대국 반열에 올라서는 디딤돌을 놓을 수 있었다. 이로인해 현재는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이 있는 일부 노년층을 제외하면 일본은 대체로 한국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대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일본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5] 물론 현재는 서로에 관한 증오가 많이 희석된 편이며, 문화적 교류도 자주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
일본은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하면서 강제로 군대를 무장해체 당했다. 이후 공산세력 저지를 명목으로 미국이 일본에 최소한의 방어병력을 남길것을 요구하며, 한국에게 일본군의 작전권을 넘기는 대신 일본이 스스로 자국을 방어하기 위한 군대를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일본은 자국의 영토를 방어하는 자위대를 조직했으며, 한국산 무기를 다수 사들이며, 자국을 방어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있다.
경제규모도 큰편인데, 이는 일본이 동아시아 전쟁에서 패전한 이후 군대 해체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대한국에 원조를 요구하면서 1947년부터 계속 원조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도 막강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실상 자급자족이 가능한 지역강국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이후 한국은 원조를 중단했으며, 현재도 동아시아에서 대한국과 중국 다음으로 큰 경제규모를 지니며 동아시아 시장경제에 강력한 파급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중관계
우방국에 속하고 집단안보조약 가입국이지만 한국과의 관계는 미묘하다. 중국 국민에게는 청나라 시절부터 야금야금 자신들의 영토를 빼앗아온 침략자라는 인식과 일제와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동양의 가치를 지켜낸 구원자라는 인식이 공존하고 있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영토분쟁으로 인해 군사적 동맹국이지만 서로 적대시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현 한중간의 영토분쟁은 1920년 1월 체결된 빈하이조약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이 조약에는 한국이 황하 이남으로 진출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지만 섬서성과 하북성 북부와 구 청나라의 내몽골 지방의 서부에 대한 명확한 경계가 설정되지 않았다. 현재 내몽골 서부지방은 한국이 실효 지배를 하고 있으며 군부대도 여럿 주둔시키고 있으나 내몽골성에는 편입해놓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이곳 주민들도 속령 주민에 준하는 대우를 할뿐 한국 본토의 시민권은 부여하지 않는 애매한 통치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2020년 4월 7일 한중정상회담에서 이낙연 총리와 원자바오 총통이 국경분쟁의 종지부를 찍기위한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6월 20일, 1세기만에 국경조약의 타결이 이루어졌다. 한국이 영하성 북부 석취산시와 섬서성 북부의 유림시, 산서성의 여양시 일부, 산서성 북부 일부를 중국에게 할양하고 하북성 북부의 연산산맥 모두와 구 청나라의 내몽골 지역을 모두 한국이 갖는 것으로 협의했으며 북천보호령은 존치되었다. 한국은 할양한 지역에 살던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한국 국적 취득권을 부여했다. 또한 중국은 7월말 한국의 주재로 중국, 티베트, 동투르키스탄, 인도 2020년 아시아 국경조약을 체결하고 이를 비준하기로 협의했다.
한-동투르키스탄 관계
1930년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이 성립되었을때 중국은 이를 저지하려고 했으나 한국 측에서 동투르키스탄을 침공하려면 한국군부터 격파해야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마중잉과 성스차이가 이끄는 중국 군벌들이 철수하면서 완전히 독립하였다.
따라서 위구르족은 현재까지도 한국을 각별하게 생각하며 국가간 교류도 매우 많은 편이다.
현재 아시아안보조약기구(ASTO) 가입국중 하나로써 한국과 공동 안보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동맹국중 하나이다.
한-티베트 관계
본래 티베트는 머나먼 과거부터 독립국이였으나, 몽골 제국이 아시아의 열강으로 부상하면서 몽골에 합병되게 된다. 이후 몽골제국이 원나라를 세웠으나, 그 위상은 얼마가지 못했다. 원은 점점 쇠퇴했고, 티베트는 이때를 틈타서 창첩 걀첸을 중심으로한 국가를 선포한다. 그러나 이후 린풍파 왕조를 몰아내려는 짱파 가문의 반란으로 티베트는 내전에 불꽃에 휩싸이게된다. 내전은 짱파 가문의 승리로 끝났고, 이들은 정권을 잡고 내전 상태였던 국가를 안정화 시켰다. 하지만 이후 청이 세워지면서 다시 타 국가의 통치를 받게되었다. 그러나 실로 놀랍게도 청은 티베트를 수탈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스승으로 모셨다. 다만 캄 지역을 윈난성의 일부로 재편성하고 이 지역의 조세권을 빼앗긴 했다.
이후 청말이 되면서 청은 점점 몰락의 길을 걷게된다. 그리고 티베트에 주변에도 큰 변화들이 생기는데, 북서쪽에서는 러시아 제국이 남하해 왔고, 남쪽에서는 무굴제국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영국령 인도를 경영하는 인도제국이 자리잡았는데, 러시아와 영국은 척박해서 자원이 없고, 인구가 적어 시장이 작은 티베트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당시 영국과 러시아. 양국은 그레이트 게임에서 이기기 위하여, 유라시아 전역에서 서로 맞서 대치하고 있었고, 이들의 사이에 있는 티베트는 양 국가의 침략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는데, 청나라는 이들을 지켜줄 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이때를 노리고 영국이 반청귀족층과 합세하여 티베트를 청에게서 떼어내려고 하였다. 그렇게 영국은 네팔왕국을 보호령화하고, 티베트를 침공하며, 영국-티베트 전쟁이 발발하게된다. 결과는 당연히 티베트군의 참패였고, 이후 티베트는 외세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잃은것만 있는것은 아니였다. 티베트의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불교, 그리고 권력을 지키기위해서는 근대화를 해야한다고 결심하게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청은 영국과의 전쟁이 끝난 티베트에 다시한번 상전노릇을 하러 돌아왔다. 이미 영국과의 분쟁에서 청 조정에게 버려졌던 티베트는 원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지속해왔던 중화제국의 종속국 노릇을 유지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의구심을 계속 키워왔고, 티베트가 외세에 굴복하고 나서야 티베트 땅으로 군대를 보낸 청나라가 티베트 자치정부와 티베트인들에게 강압적인 태도로 나오면서 티베트인들의 청나라에 대한 감정이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결국 청나라는 티베트의 수도 라싸와 주요 거점들을 공격해서 함락시켰고, 그대로 독립은 물거품이 되는줄 알았으나, 1912년 신해혁명이 진행되며, 청을 몰아내고 중국에서 새로운 국가를 세운 중화민국이 도래하며, 티베트인들은 이때를 틈타 독립을 선포했다. 물론 중화민국도 티베트를 합병하고는 싶었으나, 중국각지에 군벌들이 난립하며, 티베트를 점령할 겨를이 없었고, 이후 국공내전이 터지자 또한번 생명을 연장하게 된다. 국공내전은 국민당의 승리로 끝났고, 이제 야 티베트를 침공할 여건이 마련된 중국은 1952년 2월 7일 티베트를 침공한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국제사회에 중국의 만행이 알려지자 국제사회는 중국을 강하게 비판하며, 경제제재까지 가하기 시작했다.[6] 결국 1952년 7월 29일 중국군이 철수하게되면서 티베트는 오늘날까지 독립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중국에 경제제재를 가했던 국가에 대한국도 포함되었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티베트와 한국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2020년대 들어 티베트에 한류열풍이 불면서 두 국가 사이의 관계는 더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
한국-이란 관계
굉장히 친밀하며 이란도 아시아안보조약기구 일원이다.
1951년 모사데크 총리 집권당시 영국 석유회사를 국유화하는 정책을 펼쳐 이란이 고립되었을때 한국이 친선조약을 통해 군사를 파견하여 영국을 압박했고 석유 시설 인력을 파견하고 이란 기술자들을 교육하는등 여러 지원을 했다.
이후 모사데크 총리를 축출하려는 여러 시도를 꺾는데 한국군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현재까지 이란도 한국을 각별하게 생각한다.
다만 한국은 이란의 세속주의자들과 함께 호메이니등 이슬람주의자들을 탄압하여 일부 이슬람교도들에게 반감을 샀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란 국민들은 세속주의와 서구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이를 지지하였다.
경제
미국의 뒤를 이어 약 20조 7110억 달러 가량의 거대한 경제규모를 갖고 있는 경제대국이다. 농업, 공업과 금융업이 골고루 발달하였고 주위에 러시아를 제외하면 한국과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한 동맹국~준우방국들 뿐이라 경제적 안정성이 높은편이다.
자동차 산업, 정밀기계, 첨단기술등을 갖춰 산업경쟁력이 높은데다 막대한 1차산업 생산량(특히 축산업, 수산업)까지 겹치며 세계 2~3위의 수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다문화 민족 정책으로 미국처럼 적극적으로 이민을 받고있으며 높은 복지 수준, 양질의 사회안전망, 좋은 치안등으로 인해 선호되는 이민 국가중 하나이다. 이민정책으로 인해 중진국의 많은 고급 인력들이 한국으로 넘어오고 있으며 이런 이민 환경은 한국의 또다른 성장동력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세계 제2위의 금보유국이다. 현재 약 5,322t의 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7천t을 넘어가는 미국의 뒤를 잇고 있다. 이 금보유량은 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과 영국, 프랑스에게 무기와 금을 바꾸어주는 무기 판매를 통해 금을 받았고 국내의 채굴량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달성된 것이다.
게다가 일본 전후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귀금속(금, 다이아몬드)등을 넘겨받은적도 있다.
석유 산업이 크게 발달한 나라이기도 한데, 동아시아는 물론 동남아, 남아시아등 여러 산유국들중에서도 고도, 고가의 정제시설을 갖고 있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에 동투르키스탄이나 동남아 산유국들은 한국제 선박이나 한국제 철도를 이용해 한국 정유시설에서 정유를 하여 다시 역수입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친다. 한국은 자국 내에서 생산하는 석유를 제외하고도 이렇게 역수출로 짭짤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석유산업이 경제의 한축을 차지하고 있다.
사회
신분제
- 대한국/신분제 문서 참고
신분제에 대한 인식이 많이 희석되었지만 한국은 엄연한 신분제 국가이며 세조 황제가 반포한 병술조례를 그 기반으로 삼고있다. 현대 한국 사회의 신분제는 황족을 정점으로 한 귀족과 평민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현대 한국 신분제의 뿌리는 근본적으로 양천제인데, 조선 중기부터 말기까지 양천제는 반상제로 변화하였고 이 반상제에 서양식 귀족 제도를 도입한 것이 현대 한국 신분제의 효시다.
귀족은 황족과 제후왕가, 세습귀족과 일대귀족으로 나뉜다. 먼저 황족은 황제를 정점으로 하여 친왕, 공주로 구분되며 궁내성 종친부에서 황실 혈통으로 인정하는 친족까지는 공작위가 자동으로 수여된다. 제후왕가는 만주왕, 중산왕, 일본왕등으로 구성되는데 이중 일본왕가는 일본에서 별도로 규정하며 나머지 왕가는 왕의 직계 후손중 왕위계승자가 아닌 자손에게는 공작위가 계승되나 이때 공위는 부계를 통해서만 계승된다. 세습귀족과 일대귀족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2023년 현재 귀족의 인구수는 일대귀족의 경우 143만 924명이며 세습귀족의 수는 574만 6295명으로 한국 전체 인구의 1.98%를 차지한다.
1876년 1월, 문조 황제는 새로운 신분제(을해조례)를 발표한다. 기존의 양반 계급은 귀족이 되었으며 양반이 아닌 계급은 모두 평민 신분이 되었다. 종묘 또는 문묘에 배향된 공신이 속한 가문은 그 수장에게 공작위가 수여되었고 황제로부터 명목상 분봉을 받지 못하고 따로 작위를 수여받지 못한 가문의 일원에게 자작위가 일괄적으로 수여되었다. 또한 양반도 급을 나누어 가문의 수장에게 후작이나 백작위가 수여되고 그 이외의 구성원은 남작으로 분류하거나 양반 가문일지라도 오랫동안 그 구성원이 관직에 진출하지 못한 가문은 가차없이 평민으로 분류되었다. 이것이 서양의 작위제도와 큰 차이인데, 봉건제의 영향이 짙게 배어있던 유럽과는 달리 조선(한국)은 철저하게 중앙 관료를 수행하고 얼마나 큰 공적을 남겼는지에 따른 신분이 결정되었다. 본디 조선의 왕족이나 양반의 작위는 주나라 시절처럼 실제로 땅을 떼주는 분봉 조치가 따라오지 않았다. 그저 형식상 특정 고을의 이름을 따와 오등작과 군호에 붙였던 것이다. 오등작과 군호는 세습되지 못했고 그저 왕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으며 조선에서 관직의 세습이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을해조례에서는 군호가 폐지되고 황제나 황태자가 아닌 황족은 친왕, 공주와 옹주로 구분되었으며 귀족은 공후백자남의 오등작중 하나의 신분이 되었다. 여기서 서양의 귀족제가 부분적으로 현지화되면서 수용되었는데 작위는 부계를 통해 세습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예를들어 공후백작위는 형식적으로나마 분봉 조치가 따라왔기 때문에 단 한명의 아들을 통해 세습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을해조례에 따라 자작이나 남작위를 자동으로 부여받은 계층은 직계남손을 통해 작위가 세습되었다. 정확하게는 세습이 아니라 본인에게 공후백작위가 없는 공후백작가의 일원이면 자동으로 자작 또는 남작을 부여받게 되는 것으로 운영되고 있다.
을해조례 반포 후 70여년간 한러전쟁, 청 왕조의 귀순, 아시아 태평양 전쟁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터지고 만주왕이나 일본왕 같은 제후왕 작위가 생겨난데다가 이 시기에 공을 세운 수많은 평민들이 공후백작위를 수여받으면서 귀족 가문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결국 세조 황제는 1946년 을해조례를 수정하여(병술조례) 황실-제후왕가-귀족-평민의 4계급으로 개편하였다. 그리고 평민이 공후백작위를 수여받은 경우에는 전체 가문에 수여되던 자작과 남작위를 박탈하고 오직 한명의 직계 후손에게만 작위를 세습할 수 있게 바꾸었으며 평민이 자작이나 남작위를 수여받은 경우에는 작위가 세습될 수 없도록 조치하였다. 그리고 모계를 통한 작위 세습은 을해조례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았으나 공후백작가에 아들이 없이 딸만 있거나, 봉지가 없었던 여성이 황제로부터 봉지가 딸려오는 공후백작위를 수여받은 경우에는 작위를 수여받은 그 여성의 직계 후손을 통해 세습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부모가 둘다 공후백작위가 있을 경우 무조건 높은쪽의 작위 하나만이, 남편의 것이 우선하여 세습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을해조례의 최종 수정인 병술조례가 현대 한국의 신분제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는 신분제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 이유중 하나는 아시아 태평양 전쟁 같은 커다란 사건으로 귀족(구 양반)의 물질적 기반이 쓸려나가면서 귀족들의 전반적인 경제력이 하락하였고 시기와 때를 잘타고난 평민 부유층이 대두되면서 귀족만이 담당하던 분야를 조금씩 빼앗아왔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한국의 대다수 귀족들은 작위가 있음에도 일반인들에 섞여 평민이 소유한 직장을 다니며 평민과 다름없는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세습귀족중 1.3%는 저소득층으로 분류된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평민 부유층의 귀족 작위에 대한 갈망은 어마어마해서 어떻게 해서든 공후백작위가 있는 며느리나 세습 귀족 사위를 들여와 귀족 가문의 일원으로 대접받고 싶어한다.
문화
언론
교육
스포츠
공휴일
관광
군사
대한국 국군이 정규군이며 병역제도로는 모병제를 채택한 상태다. 규모는 상비군 3,565,100명이며, 예비군은 9,130,200명 정도이다. 전시체제로 전환할 시에는 최대 가용 인원이 105,980,500명 정도로 상비군의 29배 이상이 늘어난다.[7]
단위
시간대
한국에서는 시간대를 정하는 권한이 성정부에 있으며 1성(부) 1시간이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강제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1성1시간 원칙으로 인해 괴상한 일도 벌어지는데, 용강성에서 경도를 유지하며 북쪽으로 올라가면 UTC+9를 쓰는 북강성이 나타난다. 이에 성정부에서도 지역별로 다른 시간대를 쓰는 것을 고려하고 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도 찬반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사안이라 성정부나 성의회에서도 함부로 의결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UTC+7 : 투바성, 몽골성 서부
UTC+8 : 몽골성 동부, 열하성, 해남성, 대만성, 차하르성
UTC+8:30 : 황도특별시, 서울특별시, 성경특별시, 조선성, 발해성, 길림성, 용강성, 솔빈성, 유구부
UTC+9 : 북강성, 북해성, 사할린성, 외흥안령부
UTC+10: 동강성, 사할린성 천도열도 지역
- ↑ 8등인 인도와의 면적 차이가 2배 이상 난다. 참고로 이정도 면적이면, 미국 본토의 72% 달하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이다. 물론 대부분 체감하진 못할것이다.이유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도시화가 많이 진행되서 외몽골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도시가 많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국관광공사에서 한국국민 300만명을 대상으로 '가장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관광지'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5만표 이상의 표를 얻으며 1등으로 뽑히기도 했다. 실제로 외몽골 자치구는 평원이 많고 개발이 더딘곳이 많아 다양한 천체현상이 관측 가능하며, 한번 본다면 실로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을 감추지 못한다고 한다. 실제로 대한국 천문대 70여개중 90% 이상이 외몽골 자치구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 ↑ 지도상에서 봤을때는 국경을 맞닿고 있는지 아닌지 분간하기 힘들지만 자세히보면 엄연히 국경을 맞닿고 있는 접경국이다.
- ↑ 인도, 중국에 이어 3위이며, 외화족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됐던 있었던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2위를 유지했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인도의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과 동시에 외화족 이민자들이 대거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인도에게 2위 자리를 빼앗겼다. 인도는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인구까지 추월했고, 현재까지 1위를 유지하고 있다.
- ↑ 56위인 남키프로스에 터키의 괴뢰국인 북키프로스 인구와 영토까지 포함시키면 인구 밀도가 71위임으로 순위가 한단계 올라가서 56위가 되긴한다.
- ↑ 사실 아직까지도 한국이 일본에게 느끼는 거부감이 있는것은 맞지만 이것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때 전장에서 적국으로 일본을 마주했던 한국 노년층들이 느끼는것이 대부분이다.
- ↑ 이랗게 국제사회에서의 압력이 강했던 이유는 확전에 대한 공포도 한몫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된 시기였으니 모두가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전쟁은 되도록이면 피하려했기 때문이였다.
- ↑ 전시 최대 가용인원 세계 4위로, 세계 1위인 중국(7억명) 2위 인도(3억), 3위 미국(1억 5천만)에 이어서 4위이다.(2025년 기준) 3위인 미국과는 전시 최대 가용인원이 굉장히 비슷비슷한 편이며, 훈련교리와 장비의 질도 흡사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