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르 신성주

티타닉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5월 6일 (화) 01:2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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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스페로스벨트  ·  바네버베센  ·  투디아  ·  낸팬  ·  신디아  ·  헤르니소스  ·  바필리아  ·  펜데아시아  ·  디흐트에이븐
국가
키르수스 제국 게파르토 제국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베른하이어 베른하이어 공국  ·  에르미니아 에르미니아 합중국  ·  마그니우스 마그니우스 제국  ·  프리슬란드 프리슬란드 자유국  ·  그란치프 그란치프 국민국  ·  코르보날 코르보날 연합국  ·  크래스터프 크레스터프 왕국
사련 구성국과
혁명수도
헤스페로스벨트  ·  바네버베센
투디아  ·  낸팬  ·  신디아
헤르니소스  ·  바필리아  ·  펜데아시아  ·  디흐트에이븐
연표


-546
1423
고전고대
고대 후기
중세 초기
중세 성기
중세 말기


1423
1664
근대
현대


보편전기
연표
-546
1483
1664
고전 고대
고대 후기
중세 초기
중세 성기
중세 말기
근대
현대














보편전기
무기
권총  ·  기관단총 소총  ·  기관총 차량

게파르토 ㅔㄱㅣㅋㅔㅈㅔㅅ·ㅍㅜㅅㅡㅋㅏ 49M

게파르토 Moosmeier 32M pistol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26식 수포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엘빙거 권총



게파르토 ㅍㅜㅅㅡㅋㅏ1651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41형 표준 영도진 보병소총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이리야-야조프 45식 보병용 소총

그란치프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르브 소총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무흐타레프 장비

키르수스 Maschinen Gewehr 57

게파르토 ㅗㅌㅗㅁㅏㅌㅏ·ㅍㅜㅅㅠㅋㅏ

키르수스 Panzerabwehrkanonen 1656

게파르토 49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1M 6.3qb Bergbombarde

게파르토 52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0/54M 33qb Bergbombarde

키르수스 1656년식 야전차량 경형

키르수스 1654년식 전선장갑차량

게파르토 53M 3톤 중형트럭 어비거일



잠수함 함선 전투기 폭격기
키르수스 퇴브리크크루비엔 Ddkf.V

그란치프게파르토 가르당 17

게파르토 53M 반도르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3 키드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5 돌핀

키르수스 그니베겐 GFz.III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하디 베넷 타입P

아인종
카노쿠겔
Kanokugel
드베르그
Dweorg
리겔
Ligel
테살리데스
Teßalides
죄뢰이
Jöröi
라퓰러이
Lafülöi
오르바나 학회  ·  케네우스 의사회  ·  마법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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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파르토 ㅔㄱㅣㅋㅔㅈㅔㅅ·ㅍㅜㅅㅡㅋㅏ 49M

게파르토 Moosmeier 32M pistol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26식 수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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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파르토 ㅍㅜㅅㅡㅋㅏ1651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41형 표준 영도진 보병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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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치프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르브 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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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수스 Maschinen Gewehr 57

게파르토 ㅗㅌㅗㅁㅏㅌㅏ·ㅍㅜㅅㅠㅋㅏ

차량
키르수스 Panzerabwehrkanonen 1656

게파르토 49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1M 6.3qb Bergbombarde

게파르토 52M 6.3qb bombarde

게파르토 50/54M 33qb Bergbombarde

키르수스 1656년식 야전차량 경형

키르수스 1654년식 전선장갑차량

게파르토 53M 3톤 중형트럭 어비거일



잠수함 함선
전투기 폭격기
키르수스 퇴브리크크루비엔 Ddkf.V

그란치프게파르토 가르당 17

게파르토 53M 반도르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3 키드

마그니우스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 피어스마린 F.5 돌핀

키르수스 그니베겐 GFz.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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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르
Esser
에세르 신성주
Esser Szent Állam

1653년 - 현재
국가 게파르토 광찬가
100%
수도 드위젝
최대 도시 마르가트
면적 343,450 km²
주지사
1653년 - 1659년 라덱 드르예보즈라크
1659년 - 현재 도브로밀 카메니크
에세르 배역 1652년
에세르 신성주 설립 1653년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42,124,494명
민족 구성 에세르인 90.6%, 기타 9.4%
공용어 에세르어
국민어 에세르어 그란치프어
지역어 게파르토어 키르수스어
공용 문자 슈베른 문자
종교 세멘교
행정구역
행정
구역
5개의 현
21개의 군
경제
경제 체제 국가통제경제
화폐 공식 화폐 슈바이허 (Sͪ)
폴리거마르크 (ℳ))
(1Sͪ = 1.33ℳ
코드와 단위
단위 법정연호 건국력
날짜형식 MM-DD-YYYY
운전석
(통행방향)
좌측
(우측)

에세르 신성주(게파르토어: Esser Szent Állam 알레니아어:Holy Province of Esser)는 게파르토 제국 북부에 위치한 최대규모의 신성주이다. 서쪽과 북쪽으로 그란치프 제국, 동쪽으로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소속 레란스토비 서부총독부, 남쪽으로 노르트란트 신성주,모페스크 신성주,비르셰 신성주와 접한다. 주도는 드위젝, 최대 도시는 마르가트이며, 이외에 브라자도도무, 몌스나드, 쿼드노쇼보등이 있다.

에세르는 1652년 에세르 배역 이후, 게파르토 제국이 1653년부터 자국에 설립하였다.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지역 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파르토의 문화가 완전하게 미치지 못하여 완전히 다른 사회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독립된 지역의 특성은 에세르를 본국과 연계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였고, 1663년 현재까지 게파르토 본국에 에세르 신성주가 연계되지 않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1658년부터 시작된 경제적 침체는 에세르 또한 타격하였으며, 때문에 높은 실업률과 정치적 혼란이 뒤따르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해결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에세르 내부의 사회적 혼란 또한 뒤따르며, 독립의 목소리도 고조되고 있다.

에세르는 명목상 게파르토의 하위구역인 신성주에 속하지만, 개별적인 행정, 입법, 사법 체계를 가진다. 군사외교를 제외한 전방위적인 분야에서 큰 자유도를 가지는 에세르 정치는 게파르토와는 다른 노선을 걷고 있으며, 게파르토 본국의 무력이 동반된 정치적 혼란과는 달리, 군사적인 개입 여지가 충분한 에세르 신성주의 정치는 보다 건전한 성격을 띄고 있다.

명칭

에세르의 명칭은 공식적으로 "에세르 신성주"(게파르토어:Esser Szent Állam)이다. 신성주의 이름 자체는 이전 지배국가가 사용하던 그란치프 제국의 '에세르 속주(그란치프어:Province d'Esser)'에서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에세르라는 명칭 자체의 기원은 보편적으로 지역을 부르던 에세르라는 명칭에서 받아들여진 것인데, 아슈트카이트와 그란치프 등 여러 국가들과 교역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사람들이 주로 식량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았기에 '음식이 많은'이라는 의미의 에젠리헤(중세 키르수스어:Ëzzenrīche)라는 수식어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여러 사료에서 등장한다. 나중에 이것이 축약,변형되어 8세기 중반부터 지역을 에세르(Esser)를 의미하게 된 것이 에세르라는 지역명의 주류 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역사

10여년의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에세르 신성주는 많은 역사적 변혁을 겪었다. 여기서는 편집의 편의를 위하여, 에세르 신성주와 게파르토 점거 아래 에세르를 포함하여 하나로 서술한다.

그란치프 점거 하 에세르 속주

에세르 신성주의 지역은 본래 그란치프 제국 아래 에세르 속주라는 행정구역으로 소속되어 있었으나,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 당시인 1652년 4월, 키르수스 제국에게 일시적으로 점령당하였다. 이에 7월 동원령을 마치고 포우드니고르 산맥을 돌파하여 취약한 남부 국경을 돌파한 게파르토 제국의 군세에 의하여, 키르수스는 굴욕적으로 협상을 통해 키르수스가 점령한 에세르 영토를 게파르토에게 내어주는 것을 조건으로 게파르토 제국과 평화협상을 맺는다. 이 과정에서 키르수스는 그란치프의 주요 귀족들을 처형하였으며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게파르토는 그란치프의 영토인 에세르 영토를 보호관리의 명분으로 자국에서 관리하였다. 키르수스가 에세르를 완전히 점령하고 게파르토에게 넘기는 1653년 1월까지 이러한 관리,계약 체제는 유지된다.

이 과정에서 게파르토는 대대적인 탄압을 자행하였으며, 1652년에서 1653년 사이 많은 에세르 본연의 문화유산이 유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마르가트에서 그 행태가 심하였는데, 게파르토 군 입성부터 벌어진 마르가트 왕궁의 부분적인 파괴와 1652년 드레브논 성당의 개축은 에세르 문화에 대한 게파르토의 철저한 문화적 탄압을 보여준다.

광란의 2년

1653년경 세계적인 혼란은 더욱 가중된 양상을 보였다. 에르미니아 내전의 발발과 에르미니아 왕국,베른하이어 공국의 항복은 키르수스와 그란치프 모두에게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에 게파르토는 이 혼란기를 노려 에세르를 완벽히 점령할 계획을 세우고, 1653년 4월 완전히 에세르를 자국으로 편입한다. 이러한 행보에 그란치프는 매우 격분하였으나, 반발할 힘이 없었기에 그저 수긍하였다. 초대 주지사로는 에세르 속주의 재정부 차관이었던 라덱 드르예보즈라크가 임명되었다.

이후 전쟁이 끝난 1654년 7월까지, 게파르토는 에세르의 잉여자원을 키르수스와 그란치프 양국에 모두 판매하였다. 이는 게파르토에게 매우 많은 부를 안겨다주었고, 게파르토인들은 이 시기를 '광란의 2년'이라 불렀다.

게파르토 블록 개발

에세르의 현대 경제 체제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654년 전쟁이 종료되면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은 기존 무역대상국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안겨주었고, 설상가상으로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의 성장으로 완충지였던 레란스토비 공화국이 흡수되자, 게파르토는 두 키르수스와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의 두 주권국 사이 완충지가 되었다. 더불어 키르수스그란치프양국이 게파르토의 이중적 행보에 대한 앙금으로 금수조치를 취하였고, 게파르토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하여 포위된 형국에 처하게 되었다. 게파르토는 양측의 패권국 모두의 편에 서지 않고 자국의 독자적인 경제, 군사적 능력을 확보하여 완충지 이상의 지위를 노리고자 하였고, 이러한 목표 아래 게파르토 정부는 외부와의 무역이 거의 중단된 상황을 기회로 삼아 에세르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한편 초대 에세르 신성주 주지사가 된 라덱 드르예보즈라크또한 경제적 개발이 에세르 지역의 경쟁력을 높일 기회로 보아 개발을 추진하였다.

1653년부터 추진된 에세르 남북선로의 개궤가 이것의 가장 큰 예시로, 드라히 드비젝사와 포우드니고르 현지사 도브로밀 카메니크의 협력으로 기존의 그란치프 복궤도를 게파르토 복복 협궤로 변경하여 건설하였다. 게파르토와 하나의 경제적 구역으로 통합된 에세르는 중부의 드비젝 시를 중심으로 많은 공업지대가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기반의 설립과 공업의 활성화는 중부의 경제적 부흥을 이끌어왔으며 게파르토의 전쟁 종전 직후 생활수준의 개선을 불러왔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에세르 서부의 작물을 소비할 수 있는 그란치프의 무역 중단으로 농촌이 몰락하고 밀수가 성행하는 등의 문제도 불거졌다.

게파르토 경제 침체

에세르에 대한 투자와 쏟아지던 자원은 1658년을 정점으로 급격하게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1658년경부터 마가드로 확장 개설된 에세르 철도는 이미 개궤로 수송량이 심각할 수준으로 감소한 남북선로의 화물량에 과한 부담을 불러왔다. 특히 에세르 서부에서 상품작물 재배가 큰 성과를 거두며, 이미 포화 상태였던 에세르의 수송품목에 에세르의 상품작물 또한 더해지자, 에세르 중부의 공산품이 게파르토로 내려가지 못하며 수요가 급감, 경제침체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에세르 서부, 에세르 중부, 에세르 남부-게파르토 북부 와 게파르토 중남부로 나뉘어진 게파르토의 경제는 각자의 경제적인 연대가 붕괴되었다. 게파르토의 독립적인 경제 체제 형성의 시도는 침체가 발생하며 좌절, 1663년 현 시점까지 회복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분리된 지역 격차는 정치적 분리와 혼돈, 다양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1659년, 공업분야의 부진으로 인한 드비젝 총파업, 다양한 이해집단의 충돌과 사회주의 보편주권연합의 군사적 개입으로 발생한 1661년의 코드노소보-우타자슈피게 전투, 1662년 식량문제로 인해 불거진 2차 몌스나드 밀수 검거과 같이 여러 집단의 물리적인 충돌을 통해 표면적으로 드러났다.

경제적인 침체와 별개로, 게파르토 행정부는 전후 게파르토 산업 경제의 원동력인 에세르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와 경제적 걸림돌을 해결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였다. 게파르토의 민족을 다수 이주시키며 문화적인 연대를 형성하고자 하였고, 보편 교육을 통한 노동자 지식수준 향상을 꾀하였으며, 개궤 구간의 완료와 에세르 남북선로의 확장 프로젝트를 1666년까지 완료하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에세르 내부 정치적인 반발로 인해 몌스나드-라이브렌타트 철도의 건설이 좌절되어 이익집단간의 갈등이 격화되며, 분열과 정치적인 혼돈은 현재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도브로밀 카메니크의 집권

1659년 발생한 드비젝 총파업에 대한 책임으로 초대 주지사 라덱 드르예보즈라크가 자진 사임하고, 2대 주지사로 도브로밀 카메니크가 집권하였다. 도브로밀 카메니크는 에세르의 교통 향상과 교육 향상, 지역 자치권 증대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였다. 그러나 지속적인 개발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에세르 남부에 대한 특혜 논란, 코드노소보-우타자슈피게 전투로 인하여 책임론이 불거지다 1661년 7월 드비젝 개입으로 인하여 내부적인 지지도를 상실하였고, 드비젝 개입 사건 이후 에세르의 정치는 보다 언론과 공권력의 첨예한 대립의 형상으로 이어진다.

자연 환경

지리

에세르 신성주는 헤스페로스벨트의 다른 지리와 다르게, 바르도두지에 해라는 분지 내해가 존재하며, 해수면 아래의 지역이 존재하는 등 여러모로 다른 지역과 차별적인 지리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저고도의 지형은 기후상으로 에세르를 상대적으로 따뜻하게 만들어주었으며, 이 때문에 에세르의 농작물 생산은 헤스페로스벨트 중부의 지리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기후

에세르 신성주의 기후는 대체적으로 냉대 습윤기후(Dfa/Dfb)로 구성되어 있으며,예외적으로 팔로렌스 산맥 인근에서 아극 기후(Dfc)를 보여준다. 대체적으로 겨울에 춥고 여름에 온난한 기후는 다양한 작물 재배에 유리한 원인으로 손꼽힌다.

자원

“저 모든 반짝임이 금이 맞다네!”

길베르 듀퐁 Gilbert Dupont, 1456년 금맥을 발견한 이후.

팔로렌스의 금광, 검은 금의 분지. 헤스페로스벨트, 나아가 세계 전체에서 우래가 없을 규모의 자원이 가득 매장되어 있다. 석유, 석탄, 크로뮴, 백동, 철, 구리, 아연, 금, 은, 납, 알루미늄, 황동 등(자원의 매장량 순서로 기재) 에세르의 자원 매장 밀도는 비교를 불가할 정도로 높다..

특히 석유의 경우, 에세르 본국 내부에만 헤스페로스 전체의 60%, 레란스토비까지 뻗어있는 석유 매장지까지 포함하면 약 75%의 매장량을 가진다. 에세르의 지형상 분지의 높이가 낮기 때문에, 실제로 이를 감안하면 레란스토비의 석유 매장량 또한 자연히 에세르의 소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원부족에 시달리는 세계 각국이 에세르를 주시하고 있다.

이렇듯 풍부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에세르의 산업기반은 약한 편인데, 이 이유에 대해서는 경제 문단 참고.

정치

“에세르는 신성한 지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게 팔다리를 모두 잘려버린 나라이다."

비트 바츨라베크, 1653년

에세르 신성주의 정치는 게파르토에 종속되어 있으나, 법률이나행정 면에서는 게파르토 본국과 거의 대등한 위치에 놓여있다. 역사적인 특이성과 방대한 크기로 인하여 형성된 특이한 정치적 지형은 에세르 신성주의 자치권을 일반적인 신성주 이상으로 만들었다. 에세르 신성주는 외교, 군부의 권한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에세르는 거의 반 독립적인 자치령 내지 괴뢰국으로써 게파르토와는 상호협력적이고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에세르 주지사


Hejtman Posvátného hnutí Esseru
에세르 신성주의 주지사
Hejt/Hejká
1대
라덱 드르예보즈라크
Radek Dřevozrak
2대
도브로밀 카메니크
Dobromil Kameník
재임
1653년 ~ 1659년
재임
1659년 ~ 현재
정당
-
정당
-
A Szent Császárért

에세르 주지사는 게파르토 황제에 의해 임명된다. 본래는 투표를 통한 추천의 과정을 거치지만 초대의 경우나 임의로 지정될 경우 이러한 과정이 생략되기도 한다. 임기는 제한이 없으나 1대 주지사인 라덱이 1659년 드비젝 총파업에서의 실책을 이유로 물러난 것처럼 자발적인 퇴임이나 실책에 의한 탄핵 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

에세르 주지사는 게파르토 황제를 대리하여 에세르 전반에 대한 행정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자치의회를 통과한 법률에 대한 승인 및 거부, 내각 구성 권한, 법률에 준하는 행정 명령 선포, 입법 권고권, 사면권 등이 포함된다. 에세르 주지사의 권한 자체가 타 신성주의 귀족들과 버금갈 정도로 매우 강하기 때문에 에세르 자치의회와 에세르 주법원의 견제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주지사의 탄핵 권한도 자치의회가 가진다.

에세르 주정부

에세르 주정부는 에세르 신성주 일대를 관리하는 민주정부이다.

에세르 자치의회

에세르 자치의회는 에세르 신성주의 입법부이다. 게파르토는 전제군주정이므로 황제의 권한이 절대적이지만, 에세르 신성주는 여타 신성주와는 다른 민주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별개의 입법기관이 존재한다. 에세르 자치의회의 구상안은 프리슬란드 자유국 또는 마그니우스 연합왕국의 것을 따른 양원제의 형태였으나, 현실적인 문제로 상원(Velká rada)만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상원의 직역어인 대의원회(Grand Council)이라는 단어에서 엿볼 수 있듯, 하원의 형성을 염두해두고 있으며, 실제로 에세르 신성주 헌법에서 확인할 수 있듯 상원과 하원의 존재를 염두해두고 있다.

에세르 주법원

행정 구역

에세르 신성주는 게파르토 제국 내 여타 신성주와 달리 그 행정구역이 그란치프속주 시절 행정구역을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에세르의 행정구역은 5개의 현, 21개의 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행정 구역 개요
행정 구역 기호 중심지
수드 팔로렌스
Sud Fallaurance
쿼드노쇼보
쟈파드니 팔로렌스
Západní Fallaurance
ㄱ-1 스테쇼 수엘레즈
비호드니 팔로렌스
Východní Fallaurance
ㄱ-2 코드노소보
헴리나스
Chiemnilas
ㄱ-3 쳄리나스
푸위낙스우트
Puwinachswut
마르가트
마가드
Margart
ㄴ-1 마르가트
세스타나자
Cestanazá
ㄴ-2 세스타나자
짐니젝
Zimnyzeg
ㄴ-3 짐니젝
짐네짐니아
Zimnezimnía
ㄴ-4 짐네짐니아
셰니즈리스
Pshenieśliz
ㄴ-5 셰니즈리스
바르도두지아
Bardoduzia
드위젝
드비젝
Dvizek
ㄷ-1 드위젝
바르도두지에
Bardoduzie
ㄷ-2 바르도두지에
작시비오나
Zarksyviona
ㄷ-3 작시비오나
몌스나드
Mesznád
ㄷ-4 몌스나드
세스테이흐
Cestějih
ㄷ-5 세스테이흐
구르스카예
Gurskaje
ㄷ-6 구르스카예
두자웡카
Duzawonka
ㄷ-7 두자웡카
두가제키아
Dugazekia
크리파제키
비스타야메
Ustyamae
ㄹ-1 비스타야메
스오네츠폴
Swoneczpolle
ㄹ-2 먀스토키르만
미즈트라바미
Mięztrawami
ㄹ-3 미즈트라바미
포우드니고르
Poudnigor
자오바니에
브라자도도무
Vrazadodomu
ㅁ-1 비스타야메
비호드니크리즈
Východníkříž
ㅁ-2 스오네츠폴
자오바니에
Zaovanie
ㅁ-3 자오바니에

경제

에세르 신성주는 42.07%의 노동인구가 농업/목축/산림 등 1차산업에 종사하는 농경 위주의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다. 1663년 기준, 공식적으로 약 1233억 폴리거마르크(ℳ)를 생산하였다. 1인당 명목 GDP는 292.7ℳ로, 수치로 비교하면 마그니우스의 뉴알레니아 자치령과 비슷한 수준이다.

에세르의 경제는 크게 서부, 중부, 남부의 지리적인 구역으로 분리되어 각자 별개의 분업화된 산업 지리를 보인다. 이러한 분리된 전문성은 1658년 이후부터 점차 강화되고 있다.

서부는 대략 종사자 중 54.4%의 인구가 농업에 종사한다. 에세르 서부의 산업은 곡물식량과 상품작물 모두를 주 상품으로 취급한다. 주로 에세르의 최대 도시인 마가드를 중심으로 주변 도시로 활발히 이송된 작물은 차량 또는 철도를 이용하여 게파르토 본토 내지 다양한 지역으로 이동된다. 세계적인 매출을 보유한 파르마스키 스바스(Farmářský svaz)사가 서부의 마가드에 본사를 두고 있다.

중부의 경우 급격한 공업화를 거쳐 대규모 공업단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때문에 지역 주민의 50.3%가 경공업/중공업 분야에서 근무하거 있다. 국경 인근으로 지방으로 갈수록 그런 사람들은 적어지고 목축업이 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일부는 관광이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기도 한다. 금광 산업의 중심지 코드노소보와, 산업과 철도의 허브를 맡고 있는 드위젝을 잇는 축선을 중심으로 공업경제가 활성화되어 있고, 특히 드비젝에는 드라히 드비젝(Dráhy Dvizek), 스테시바스 모토리(Šťastvář motory)와 같은 굵직한 사업체들의 공장이 자리잡고 있기에, 드비젝을 중심으로 주변 위성도시들의 경제까지 통합된 거대한 경제체제가 형성되었다. 중부에는 에세르 유일의 석유 시추 기업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석유가 부족한 만큼 석유시추, 정제는 에세르의 미래 경제 동력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남부는 일찍이 서부, 중부와 별개의 경제체제를 형성하였다. 자오바니에브라자도도무를 중심으로 형성된 경제체제는 에세르와 게파르토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모습 때문에 게파르토의 경제적 침체에도 불구하고 생활수준에 타격을 가장 덜 받은 지역이다. 에세르의 가장 큰 기업인 젤레냐 모티카(Zelená motyka)의 소재지이기도 한데, 규모 2위인 파르마스키 스바스에 대비하여 그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점에서 에세르 남부의 폐쇄성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에세르 신성주는 급격히 증가하는 실업률로 고통을 안고 있다. 1663년 기준 9.98%의 노동가능인구가 실직상태이며, 이는 범죄율 상승과 과도한 도박 활성화 등 경제적인 어려움에 기여하고 있다.

교통

“수천만 폴리거마르크를 들여 얻은게 뭐냐고? 눈물겹게 비효율적인 철로일세!"

후베르트 소호르, 1658년

에세르는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을 전후하여 그 기반시설이 퇴화한 전무후무한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에세르의 교통은 에세르 동서선로에세르 남북선로라는 십자형의 철도망을 기본으로, 다양한 작은 선로들이 이어져 있고, 이외의 지역들을 도로들이 이어주는 형식을 띄고 있다. 위 두 주요 선로가 교차하는 드비젝 역은 에세르의 모든 물자를 만날 수 있다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화물을 실어나르고 있다. 이 두 선로를 중심으로 주요 간선철도가 배치되어 있다.

게파르토 제국이 에세르를 점령한 이후, 가장 먼저 진행한 사업은 에세르의 기존 선로였던 그란치프 광궤게파르토 협궤로 변경하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궤도상의 비효율로 인해 에세르 남북선로의 효율이 17%까지 경감하였다. 이러한 원인으로 인하여 에세르의 경제적인 분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었으며, 현재 몌스나드-라이브렌타트 철도와 같은 우회 철도 계획이나 확장 계획이 논의되고 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상황이다. 한편 남북 축선의 문제와 대비하여, 동서 교통은 여전히 원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개궤 사업이 완료되지 않은 구간이 많은데, 이 또한 문제에 불을 지피고 있다. 체르네스카 선로의 경우 이러한 문제의 극적인 예시를 보여주고 있는데, 게파르토 협궤와 그란치프 광궤 교체 과정에서 파업으로 인하여 교체가 멈추어버린 바람에 노선이 존재함에도 철도가 지날 수 없는 환경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국가 단위로 이어지자 드비젝 역에서는 서부에서 온 화물을 차량에 하역하여 철도로 옮기는 웃지 못할 상황도 일어나고 있다.

사회

에세르의 사회는 복잡한 양상을 띈다. 인구 구성과 지역적, 세대적, 경제적 갈등이 복합되어 연결된 에세르의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운 구성을 띈다.

인구

행정 구역 별 인구
행정 구역 면적 인구 소재지
수드 팔로렌스
Sud Fallaurance
- 5,103,653명 코드노소보
푸위낙스우트
Puwinachswut
- 12,086,918명 마르가트
바르도두지아
Bardoduzia
- 15,175,416명 드위젝
두가제키아
Dugazekia
- 4,936,409명 크리파제키
포우드니고르
Poudnigor
- 4,809,011명 셀메주

전통적으로 에세르의 인구는 농업이 발달한 서부에 자연스럽게 집중되어 있으나, 최근 중부의 인구 성장은 그 격차를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있다. 특히 드비젝의 발달과 광범위한 도시화가 에세르의 인구를 빠르게 증가시키고 있다. 현재 서부 에세르에 거주하는 인구는 절반 정도이며, 중부와 남부가 그 뒤를 이어 약 1/3과 1/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지역 갈등

에세르 신성주는 에세르 배역 이후 약 11년간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겪었으며, 모두 에세르인이라는 동일한 문화적 동질감을 가지지만 다양한 사회적인 이해집단이 지역적/경제적/문화적 사유로 분리되어 존재한다. 특히 중심적인 분열은 바르도두지에해와 포우드니고르 산맥으로 분리된 서부, 중부, 남부의 지역적인 분열이며, 이외에도 종교사상적, 경제수준적인 분열이 이러한 인문적 경계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세대차에 의한 갈등, 독립 방식에 대한 이념차가 발생하는 등 신성주 내 분열이 매우 심각하다.

서부 에세르

서부 에세르는 에세르의 근대 문화를 담습하며 에세르 본연의 문화를 강조하는 지역이다. 이들은 가족과 사회의 풍요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며, 개인적인 일보다 가족/공동체/민족의 일에 앞서는 경향이 있다.

중부 에세르

중부 에세르는 에세르의 현대를 대표하는 지역이다. 그란치프와 게파르토의 지원을 받아 형성되었고 공업이 발달한 만큼, 전체 공동체를 위협하지 않는다면 보다 개인적인 일을 우선한다.

남부 에세르

“ '게파르토로!' 얼마나 대단한 울림이 아닌가!"

도브로밀 카메니크, 1663년

남부 에세르, 또는 포우드니고르(Poudnigor)라 불리는 지역은 오랜 지리적 역사로 인해 에세르 본국이나 그란치프와의 교류가 적다. 남부 에세르에는 중세 당시 지어진 고적이 많이 남아있어 에세르 문화의 기원에 대한 좋은 연구 사료가 되고 있다. 남부 에세르는 현재 게파르토에 대한 유사성으로 인하여 게파르토의 편입을 희망하고 있다. 에세르 남부의 사회상 또한 타 지역에 대비하여 게파르토와 유사하다. 에세르 남부 주민들 중에서는 황제교의 신봉자를 자주 볼 수 있고, 게파르토의 소수민족인 아인종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중이다.

세대 차이

에세르 내부에는 세대별 차이도 큰 사회적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1635년생부터 1655년대생까지를 일컫는 게파르토 세대(Gepartiánská generace)가 게파르토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취하고 있는데 반해, 1635년 이전에 태어난 그란치프 세대(Generace Granchipu)의 경우, 이러한 가치에 크게 따르지 않고 있다. 게파르토와 그란치프의 문화차이, 경제적 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차이와 더불어 역사적인 반감이 섞여, 게파르토 세대와 그란치프 세대 사이 충돌 빈도는 점차 증가 중이다.

문화

문화적으로 에세르는 역사적으로 다른 지역과는 구분되는 독특한 문화 양식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란치프 남부 양식으로도 알려진 에세르 문화는 그 특유의 전체적으로 밋밋하지만 자세하게 보면 세세한 화려함이 드러나는 것이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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