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Junni, 2021.12.03~2022.12.03 (1Y) | CC-BY-SA 3.0
한쟁의 세부 분류
한쟁의 배경
(920現.8.9~1052現.9.12)
강한쟁기
(1052現.9.12~4013現.4.19)
마쟁기
(4013現.4.19~)
강한쟁기
Strong Frozen War | 江寒爭機
[ 펼치기 · 접기 ]

개요

강한쟁기(强寒爭機)는, 한쟁기 중에서 대체로 타츠-에스트랄 전쟁이 종전한 920現년 8월 9일부터 4013現년 4월 17일의 마법사 연합-위크니스 전쟁까지 지속됐던 총성 없는 시기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격 용어다. 강한쟁기의 평화가 종식된 이후 마법 주도의 마쟁기가 본격화되면서 종종 강한쟁기를 '구한쟁'(Old Frozen War)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이 기간 동안 기술의 발전이 극에 달했으며, 민주공화제가 완전히 자리잡으면서 공화제의 시대가 도래했다. 국제 사회 전체가 연합한 국제기구 UO가 설립되면서 긴 평화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3900現년대 말기부터 타츠 문명에서의 타츠 문명 민주체제 도입 사태THE 시티에서의 리무브 사태를 시발점으로 강한쟁기의 평화는 종식되기 시작했다. 제 13구역-THE 시티 전쟁, 제 13구역 국가 분류 관련 논란을 시작점으로 하여 마법사 연합-위크니스 전쟁으로 쐐기를 박으면서 강한쟁기는 완전히 종식되고 마쟁기가 본격화되었다.

강한쟁기의 시작 지점과 끝 지점에 대해서는 다소 견해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타츠-에스트랄 전쟁의 종전과 남동브레이크해 전쟁의 발발을 시작과 끝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짧은 평화가 끝난 1053現년, 3국 해체 전쟁이 종전된 1052現년을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역사

한쟁의 배경 (~1052現)

한쟁은 이미 苦년기 말기부터 예견되어있었다. 설산국, 목림국, 마학국각각의 임시정부를 통해 강대국들로부터 독립하면서 민주공화제의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는 고대 에스트랄 문명이 쇠퇴하기 시작한 시발점이었으며, 결과적으로 타에전쟁에서 에스트랄이 패배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한쟁의 시작은 타츠-에스트랄 전쟁의 종전이라고 보는 견해가 다반사다. 타에전쟁에서 타츠 문명고대 에스트랄 문명을 굴복시키고 1차 대개헌으로 3000년 역사의 전제군주제를 폐지하고 하프입헌군주제를 도입한다.[1]

1차 대개헌 이후 타츠 문명에는 타츠 문명 1차 경제 위기가 찾아오면서 기존의 초강대국의 입지를 잃어버린다. 타에전쟁 승전으로 가져온 서동대륙 영토를 THE 시티의 독립과 설산국, 목림국의 영토 확장으로 뺏겨버리고, 유일한 비공화제 국가였던 타츠 문명은 민주공화제의 시대에 당연히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타츠 문명이 외교적 고립으로부터 빠져나온 건 3국 해체 전쟁이었다. 한쟁의 배경국 3국끼리의 전쟁으로 3국 모두 연방 해체라는 수모를 겪으면서 타츠 문명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면서 다시 초강대국의 입지를 되찾는다. 해체된 한쟁의 배경국은 새로운 이름인 매직 빌리지, 눈 치우는 마을, 레인 포레스트로 역사를 계승한다.

주요 사건

강한쟁기의 평화 (1052現~4011現)

3국 해체 전쟁의 3국이 모두 이전의 입지를 회복한 후 강한쟁기의 평화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타츠 문명과 민주공화국들 간의 관계는 호전되었으며 대부분의 국가들이 시네마틱의 근현대화를 통한 경제 호황을 거두면서 크게 성장하게 된다. 특히 마학국을 전신으로 하는 매직 빌리지는 2100년대~2200년대 역대급 경제 호황인 프로그레스로 초강대국 반열과 세계 최고의 공업중심국으로 군림하게 된다.

다른 방면에서 매직 빌리지, 눈 치우는 마을, 레인 포레스트는 3국 해체 전쟁 이후 MSR 회의에서 공통된 정치체제인 MSR 체제를 발표하면서 민주공화제는 세계에 완전한 모습으로 자리잡게 된다.

완전한 평화가 시작한 것은 2000現년대부터였다. 이전까진 아직 국가들 간에 조금 어색한 기류가 남아있었고, 대규모 전쟁인 마탄 섬 통일 전쟁이 일어나면서 평화가 잠시 동안 깨지기도 했기 때문이다.[2] 2000現년대부터는 조금씩 있었던 어색한 기류도 거의 사라지고 그 어떤 전쟁도 발발하지 않으며 완전한 평화의 시기가 도래한다.

이런 완전한 평화는 2000년을 채 지나지 못하고 깨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대사건이 터지기 시작한다. 오죽하면 3000년 동안 안 터진 사건들이 몰아서 터졌다는 유머도 있을 정도..

주요 사건

강한쟁기의 종식 (4011現~4013現)

3900現년대 후반 THE 시티에선 THE 킹토드 워커가 국회의원, 개표원들 포함 1000명이 넘는 사람에게 뇌물을 지급해 매수하면서 부정선거를 행하고, 헌법의 조항을 악용하여 주동자 THE 킹에게 실권을 부여하는 리무브 사태가 발생한다. THE 킹은 잘 나가던 THE 시티를 독재국가로 변모시키면서 강한쟁기의 종식에 일조했다. 사실상 강한쟁기의 종식의 시발점이라고 여겨진다.

리무브 사태는 MSR 연합으로부터 상당한 저항과 비판을 받았다. 3980現년 10월 11일 MSR 연합은 정상이 모두 모여 공동 단교를 선언하고 대규모 경제제재를 행하며 THE 시티 경제 위기를 일으킨다. 매직 빌리지, 눈 치우는 마을, 레인 포레스트는 THE 시티의 수출, 수입액 1~3위를 다투던 국가들이었기에 THE 시티의 피해는 극심했으며 아직까지도 이 경제 침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원인으로 2천만 명 규모의 대규모 시위 THE 킹 탄핵 시위가 시작되었지만 별다른 결과 없이 동력을 잃으면서 종결되었다.

그러나 THE 시티가 이렇게 폭망하는 가장 큰 원인이었던 THE 킹은 심각한 판단력으로 워닝 섬을 수복하려 제 13구역-THE 시티 전쟁을 일으키다가 제 13구역에게 완전히 대패하며 국제 사회로부터 빅엿을 날렸다. 제 13구역-THE 시티 전쟁은 연쇄적으로 제 13구역 국가 분류 관련 논란, 클레어 레이놀즈군 폭파 사건이라는 또 다른 대사건을 야기한다.

타츠 문명에선 개별 왕권의 국정농단과 왕후선택제의 폐해를 원인으로 하여 대규모 시위인 타츠 문명 민주체제 도입 사태가 발생한다. 1차 시위와 2차 시위는 정부가 묵살했으나 3차 시위에서 70,000,000명의 시위대가 참여하면서 결국 타츠 문명은 트렌지션으로 3000년 역사의 하프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하기 시작한다.[3] 이후 제1대 타츠 문명 국가수반 선거제레미 이안이 선출되면서 타츠 문명도 공화국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눈 치우는 마을에선 제491대 대선에서 극우 성향으로 비판받던 정당 더불어보수당에서 배출한 아델 베르세르크 후보가 당선되면서 정치적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레인 포레스트에서도 제491대 대선에서 자유진보당의 라이너스 러셀 후보가 52.5%라는 박빙의 득표율로 당선되며 안 그래도 심각했던 진보-보수 갈등이 극대화되었다. 메가 시티에서도 보수 성향 노동당이 60년의 장기집권을 깨고 진보당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면서 정치적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술한 사건들을 보면 매직 빌리지를 제외한 모든 국가들에게서 하루아침에 대사건들이 발생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대사건이 발생하자 UO에서도 UO 회의라는 대책을 도입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했고, 강한쟁기는 빠른 변화 속에 종식되기 시작했다.

트렌지션 이후 다시 평화를 되찾는 듯 했으나 마법사 연합-위크니스 전쟁이 발생하면서 쐐기를 박는다.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마법이 세상에 공개되며 국제 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국제 사회는 마법이라는 존재에 강력하게 대항하면서 에스토니아와 그 어떤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 그렇게, 강한쟁기는 종식되고 마쟁기가 시작되었다.

주요 사건

일반적인 강한쟁기의 종식은 4011現년부터의 시기로 여겨지나 종식의 시작이 되었던 사건이지만 강한쟁기의 평화 시기에 발생했던 타츠 문명 민주체제 도입 사태, 리무브 사태도 이쪽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마쟁기 (4013現~)

각주

  1. 1차 대개헌은 공화제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다. 한쟁의 배경국 3국은 거의 미치지 못하는 초강대국 타츠 문명도 전제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에 가까운 하프입헌군주제를 도입했으니..
  2.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마탄 섬 통일 전쟁은 평화를 깨뜨렸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전쟁 이후 메가 시티가 건국되기 전까지는 마탄 섬은 국제 정세적으로 그 어떤 영향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3. 공교롭게도 상술했던 전제군주제도 3000년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