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당의 2세대에 해당하는 인물들 중 대중에게도 오늘날 널리 알려진 거물로, 의회제의 확립과 한러일전쟁, 만주 통감부로 대표되어 오늘날까지 그 영향이 남아있는 대한제국의 외교적 패권 확립 등에 크게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총리에 취임하여 임기를 수행중이던 당시 50세였으며, 이후 그의 생일이 오기 전 병상에 누워있는 그 대신 총리대신이 새로 지명되면서 50세의 당선이 사실상 그의 2번째이자 마지막 임기가 되었다.
대금민국에서는 만주한치시기의 원흉이자, 증룽에게 저격당한 인물로서 남여노소를 막론하고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무래도 청국통감부를 설치하여 대청제국을 침략했던 인물이고, 사르후 전투 당시 명을 지원하여 만주를 공격한 광해군은 먼저 만주가 선제공격을 한것도 있고, 워낙 옛날 사람인지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 반면에 이완용의 인지도는김창암과 더불어 꽤 높은편.
현재 대련도에는 그의 동상이 대련 도청 앞 광장에 세워져 있다.
생애
1907년, 청국 순방을 위해 하르빈을 방문했다가 만주족 애국자인 증롱에게 저격당했고, 병원으로 이송됬으나 이후 혼수상태에 빠졌다. 결국, 이를 회복하지 못하고 그해 죽음을 맞음으로서 최초로 암살로 임기 중 사망한 한국 총리가 되었다.
평가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
기타
주변인들과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였다고 한다. 증언에 따르면 평소 업무에만 매진하거나 자신만의 시간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박영효의 저서를 보면 상당히 교활한 면모가 있었다는 모양.
일을 할 일이 생기면 직접 근무지에 가서 일하는 성향이었다고 한다. 예시로, 청국통감부 통감을 맡던 당시에는 심양에 있는 서양식 통감청 건물에서 몇년씩이고 생활한적도 있다.
어록
귀국은 독립에 필요한 국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실로 허명뿐인 자주독립에 불과합니다. 귀하께선 최근 10년간 국체의 보존을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1905년 대청제국 상공대신이 그의 고압적인 태도에 다소 불만을 드러내자 남긴 말.
설령 평화가 불순하다 할지라도, 피를 보는 것보다는 그 불순한 평화가 더 나을 것입니다. 장담하건데, 저는 이번 건이 대청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평화의 선물로서 거듭날 수 있다고 해두겠습니다.청국 통감부 출범 당시 한 서사
세상에서 감화하고, 설득하고, 구슬리기 쉬운 인물이 세가지가 있다.
쇠약한 나라의 군주와 파산한 회사의 청산인, 우매하고 꽉 막힌 이들이 그것이다.한국 언론 인터뷰에서
작금의 시대에 멈추지 않고 분골쇄신하여 개혁을 하면 나라가 영국과 같이 세계에 부강한 나라가 될 터이요, 만일 대한 신민이 나중에 서로 합심을 못 하여, 서로 싸우고 해 하려고 할 지경이면, 모든 영화를 잃어버리고 구라파에 있는 펄낸이란 나라 모양으로 모두 찢겨 남의 종이 될 터이라. 세계 사기에 두 본보기가 있으니, 대한사람은 둘 중에 하나를 뽑아 영국 같이 개혁이 성황리에 되어 세계에 제일로 부강한 나라가 되든지, 펄낸 같이 개혁을 하지 못해 처참한 꼴로 망국하든지, 좌우 간에 사람 하기에 있는지라, 나는 대한 사람들은 저 영길리 같이 되기를 바라본다.1885년 한성일보에 투고한 글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대금민국의 연극 <영웅>에서는 만주를 노리는 악역으로 등장. 한국계 만주인 배우인 조일우[1]가 분한지라, 한국어나 한국인 특유의 눈치주의적 분위기를 통해 이완용을 잘 묘사했다고 평가받았다.
개화기를 다룬 대금민국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등장. 에센에게 만주족 고궁을 뇌물로 받은 뒤, 만주를 자신의 손 안에 가져올것을 명령했다. 이후 광서제와 대면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