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문서: {{아침해의 원유관}} {{틀:한국 내각총리대신}} {{아침해의 원유관 벽지}} </div> <div style="display:inline-block; width:100%;margin:0px auto 5px; border-radius: 8px; overflow: hidden;opacity:1;box-shadow:0px 0px 3px rgba(0,0,0,0.6);padding:23px 8px 10px;background:rgba(255,255,255,0.1);"> {| class="wikitable" style="color:#000; float:right; max-width:450px; border:2px solid #1b0e64;" |- ! colspan="2" style="width:450px; color:#eccd7a; background:#1b0e64;" |...) |
편집 요약 없음 |
||
89번째 줄: | 89번째 줄: | ||
엄청난 양의 토지를 소유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그의 땅투기 욕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만주에 드넓은 토지를 소유했었는데 현재도 그 땅에 대한 지분이 후손들에게 남아있다고 평가받을 정도. 물론, 대금민국 당국은 박중양의 후손들이 자국 영토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 엄청난 양의 토지를 소유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그의 땅투기 욕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만주에 드넓은 토지를 소유했었는데 현재도 그 땅에 대한 지분이 후손들에게 남아있다고 평가받을 정도. 물론, 대금민국 당국은 박중양의 후손들이 자국 영토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 ||
중년에 들어서는 개화장(開化杖)이라는 서양풍의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고 한다. 가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경우 지팡이로 구타하기도 했다고 하며, 때문에 | 중년에 들어서는 개화장(開化杖)이라는 서양풍의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고 한다. 가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경우 지팡이로 구타하기도 했다고 하며, 때문에 한 번은 호국회의 집권시기 마음에 안든다고 고위 당원을 구타했다가, 벌금을 거하게 물고 옥살이 신세를 몇칠간 한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대에 붙은 그의 별명이 '박 작대기 대신'이였다. | ||
</div> | </div> |
2024년 4월 3일 (수) 17:15 판

![]() | |
[ 국가 목록 ]
[ 소개 ]
|
대한국 역대 내각총리대신 | ||||||||||||||||||||||||||||||||||||||||||||||||||||||||||||||||||||||||||||||||||||||||||||||||||||||||||||||||||||||||||||||||
[ 펼치기 · 접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