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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통된 역사 ==
== 공통된 역사 ==
해당 문서에서는 모든 국가에 대한 역사를 다루지 않고 중점적인 국가에 대해서 다룬다.
==== 오랜 고대 ====
==== 오랜 고대 ====
*거인 문명권의 발달
*거인 문명권의 발달

2021년 4월 4일 (일) 23:22 판

린크 프로젝트 세계관역사 문서이다.

개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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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역사
문명의 연결고리
벽윗세상의 문명 거인 문명권프레브 문명권, 마나본시가무르, 릴시온 공동체, 다레나 섬, 아사락, 소소니아, 세칸로 │→ 아사마르 문명의 기반
아사마르 문명 아사마르 문명권로기라상테아상테(하산족, 소사족, 오로시족), 로기라 대제국(수헤일, 호숫가, 베르테르), 시게니에라
로기라 문명권 로기라 대제국 → 동,중,서 로기라 왕국, 호수혈맹, 시가나시 왕국, 수헤일 문명권(르에뤼 왕국, 이다 왕국, 루비아 왕국)
고로스 문명권 고로스 문명권투스튜터러스 왕가, 베치 신시(다섯개의 구 가문), 샤프테 노이(일곱개의 신 가문), 자유도시 하운, 피라페 해적집단
독립된 문화들 보르미아(투스-보르말로 산맥 너머의 아르인 중심 문명), 가르란(케노야가 주된 세로숲 지대의 문명), 레존(데르트 중심의 바다숲 일대 문명)
여러 구성
위대한 지식의 성역 타를메오,스콜라 엘레멘타라,레존의 버려진 도서관
로기라 문화권 로기라대제국(서로기라, 중로기라, 동로기라), 수헤일 삼왕국(이다, 루비아, 르에뤼), 시가나시 연합(시가무르, 나시롱, 사이아, 유준), 청인, 고대 호숫가, 호숫가, 빙카-반카, 프레브, 기루재, 아상테, 유준, 카라스
아상테 부족 연합체 소사족, 하산족, 오로시족, 구낭 게르히, 벵가, 모사히론, 베시모, 오모론, 타리사, 아사베, 소로베인, 소로가벤
역대 전쟁사
인종의 분류 아사마르인, 아상테인, 홍인, 케노야, 데르트, 고로스, 릴족, 숲주민, 아사락인, 프레브인, 바네진, 수헤일, 아르인, 빙족, 반족

공통된 역사

해당 문서에서는 모든 국가에 대한 역사를 다루지 않고 중점적인 국가에 대해서 다룬다.

오랜 고대

  • 거인 문명권의 발달
  • 고대말로의 자연화

헤아리기 어려운 오랜 과거, 활발한 지각활동이 일었다. 통상적인 대륙이 그렇듯 여러 변화를 거쳐 오늘날 린크의 형태가 완성됐다. 다양한 생물군계가 나타나고 자연 생태계가 형성됐는데, 이 시기에도 석기시대 수준의 문명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유적과 지층, 화석 등의 사료로 미루어볼 때 고대에도 말로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나, 역경의 시간을 겪은 말로는 마침내 자연과 결합되어 자연과 말로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까지 변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중 흉에게서 노출된 상태에서도 문명을 보존한 존재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이 거인이고 후에 인간 문명의 기저와 토대가 되는 역할을 한다.

벽아랫세계의 초기 문명

  • 거인 문명의 남하와 인간의 문명 계승
  • 인간 중심세계의 형성(벽아랫세계)

오늘날 롯사 구릉소소니아 일대(릴시온 반도로기라 북부지방의 경계가 되는 대산맥지대)에서 활발하게 문명을 일군 거인들은 점차 퍼졌다. 릴시온 반도로 향한 거인들은 그곳에 파르네임을 건설했고, 일부는 북부로, 또는 남하하여 시가나시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원시적인 인류와 접촉(First contact)했고, 인간문명은 거인을 통해서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기술을 습득[1]했다. 거인은 몇 세기 지나지않아 빙하기 등의 환경적인 문제로 도태되었으나[2], 발전된 인류문명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적응하여 살아남는다. 이후 문명의 기반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 인간 중심세계의 근간을 이룩한다. 시가나시의 사람들은 이것을 벽아랫세계라고 불렀다.

문명의 첫걸음

  • 고대 문명의 건설
  • 아사마르[3] 왕국의 형성

당대 자원이 풍부했던 아사마르(닻말:axamar, 시게니에라와 맞닿아 있는 거대한 영역) 지방에서는 거대한 왕국이 건설됐다. 제정일치가 이루어진 아사마르 왕국은 강력한 왕권으로 결합된 권력을 행사했는데, 덕분에 초기에 문명을 입은 시가나시 지방을 정복했으며, 남하하려고 하던 프레브 문명권프레배잔을 물리쳤다. 안정된 사회에서는 다양한 문화가 발달했고 특히 거인 문명을 숭상하며 지어진 거상들은 수십세기 후에도 일부 형태가 잔존할 수 있었다. 아사마르는 지속적으로 확장 정책을 통해 많은 지역을 정복했으며, 다양한 인종들이 문명을 얻을 수 있는 거름으로서 일조했다. 이런 경향은 아사마르가 멸망하기 전까지 이어진다.

한편, 타라 모르티에서 나타난 모종의 거인들은 도바신 반도의 회색 인간들에게 문명을 전파했다. 미개한 인간들은 그 거인들을 신(스트라모시, strămoși)라고 불렀다. 설화에 따르면 그 거인들은 인간보다 서너배컸으나, 인간과 교배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서 자신들의 후손을 낳게했다고 전해진다. 그것은 차츰 인간이 아니라 새로운 종처럼 보이는 후대를 낳게 했는데, 그것이 고로스의 조상[4]이라고 알려져있다. 그들은 들의 말에 따라 을 잡고 마석을 지니는 일을 관례처럼 행했으며, 이것이 고로스 문명권에 지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분화의 과정

  • 아사마르 왕국의 멸망
  • 대초원에서 나타나는 아상테 세계
  • 호숫가에서 형성된 로기라 세계

아사마르 왕국은 진취만의 동부 끝자락부터 게니에라 섬의 일부까지 넓게 자리잡았으나, 실질적으로 군림하지는 못했다. 왕은 대를 지나며 혈연들에게 땅을 나누어주었고, 그마저도 외곽에서는 정복을 당했을 뿐이지 여전히 독립적인 지도자가 존재했다. 그러던 중, 수도 변두리에서 말로가 나타나는 비운의 사건이 일어난다. 아사마르 일대를 풍부하게 하던 거대한 수원들이 순식간에 증발했으며, 아사마르의 근간이던 도시들이 철저히 사막화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 피지배자들은 아사마르의 속박에서 풀려났으며, 유민들은 각각 호숫가대초원로 대이주하면서 더 넓은 세계로서의 파종이 이뤄졌다. 이후 로기라에서는 수많은 왕국이 건국되었으며, 아상테에서는 다양한 부족들이 나타났다. 소수의 유민들은 아사마르의 문화가 남아있는 게니에라 섬로 건너갔다.

  • 투스 도시국가의 건국

고로스인들은 스트라모시(strămoși)가 사라진 후 도바신 반도에서 독특한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었다. 린크에서도 독보적으로 흉이 많은 그곳에서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서로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아예 흉을 차단하기 위해서 수성을 시작했다. 이후 책목은 정교한 벽돌로 지어졌으며, 마침내 투스 1세기[5]에 투스의 첫 도시국가가 세워졌다. 이것을 필두로 도바신 반도 곳곳에 투스 왕국의 도시국가가 세워졌으며 그들은 각자 스스로를 왕처럼 여겼다. 투스 300년 경에는 이미 정교한 외벽을 가진 도시가 열 한개가 되었는데, 그 중 대부분은 훗날 흉을 버티지 못해 무너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튜터러스만큼은 결코 무너지지 않아 그 입지를 분명히했다. 이 시기를 투스에서는 고대정도로 여긴다.

  • 수헤일의 고대문명 발흥

비슷한 시기에 수헤일은 대 루비아 섬에서 처음으로 큰 마을이 세워졌고, 바위에는 원시적인 문자가 쓰였다. 각각의 섬에서는 몇 천명 단위의 청인들이 생활했는데, 이들이 이후에 수헤일 문명권의 핵심 인종이 된다.

로기라상테의 세계

아사마르의 유산

  • 아상테 부족들의 중흥
  • 여러 인종의 소왕국
  • 로기라 왕국의 건설

아사마르 왕국의 멸망은 많은 유준 유민(아사마르 난민 이들을 로기라에서는 유준이라고 표현) 집단을 형성했다. 그들은 대이동 후 원주민과 결합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타인종과 혈전을 벌였다. 특히 대초원으로 이동했던 유준인들은 그곳의 원주민(홍인이라고 불리는 인종)들과 동화되어서 아상테라는 유례없는 인종과 민족[6]으로서 성장했다. 반면 호숫가에 자리잡은 유준인 집단은 아사락에서 남하한 인종 계통(빙족, 반족, 시가나시족 등)르에뤼 지방 계통(청인, 카라스인 계통)으로 섥혀있어 갈등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유준인들은 세력을 확대했고 마침내 호숫가의 반도처럼 튀어나온 지방에서 로기라라는 왕국을 건설한다.

로기라는 인근 세력의 위협[7]으로부터 벗어나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력한 단합을 이뤘다. 불과 이백여년 만에 인근의 작은 마을들을 정복했으며,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시가나시와 동맹함으로서 마침내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오히려 전운을 드리운 것은 공통조상을 가진 아상테였다. 각각 로기라아상테는 서로가 같은 민족이란 추상적인 이해는 가지고 있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북부에 있던 아상테 부족들은 안정된 로기라의 지방을 가능한 만큼 약탈하고 공격했으며, 이런 대외적인 세력의 등장이 자신들이 로기라라는 공통된 의식을 심는데 일조했다. 그런 흐름에 따라 각 지방에서는 독립 이전에 아상테의 습격을 막는데 집중하고, 세력 강화에 힘쓰게 된다.

  • 투스 왕국의 건설과 왕권 강화

투스 5세기 경에 도바신 반도에 준수한 수준의 기반시설(Infrastructure) 체계가 완성되었다. 각 지역간의 도로가 정비되었고, 활발한 도시간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교류가 증진[8]되었다. 각 지역들은 전쟁보다는 서로 간의 합의를 통해서 동맹을 도모했는데, 이때 가장 세력이 강했던 튜터러스 왕가가 제사장의 자리에 오르면서 마침내 투스라는 공동체가 결성된다. 이후 튜터러스는 교역 지원과 무역대의 파견 등을 통해서 입지를 굳건히했으며, 이후 고대에 스트라모시(strămoși)에게 받은 2개의 대마석중 하나를 가진 정통성으로서 투스 연합 왕국의 왕으로서 등극했다. 이후 그것에 동의하지 않은 몇몇의 가문이 불화를 일으켰는데, 이 때문에 마드-바르튼의 참변이 일어난다. 튜터러스 왕가는 이를 잔인하게 진압했으며, 다른 가문이 구태여서 나서지 않으므로서 강력한 왕권이 형성되었다. 이 때문에 힘을 가진 가문들조차도 왕권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내비추었으며 그 대표적인 가문들이 오고, 베치 신시(Vechi Cinci)로 불렸다.

로기라의 발흥

  • 로기라의 대제국화
  • 벽아랫세계의 완성
  • 아상테 문명화
  • 수헤일 문명권의 개발
  • 베르테르 문명의 개발

호숫가 일대를 평정한 로기라는 국경이 안정되었으며, 풍부한 자원량을 통해 인구가 증가했다. 앞서서 아상테로 인한 지속적인 침입이 큰 문제였으나, 후방의 인구증가와 군단의 증설 등으로 더 이상 이민족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로기라는 증강된 군사력으로 후방의 동맹이던 시가나시를 침공하고 정복하는데 성공한다. 반발할만한 일이었으나, 정복 이후 시가나시의 체제를 인정하고 지역의 권력자를 인정하는 등의 유화적인 정책을 펴 반발심을 억제했다. 이후 오래전 유준인과의 숙적이던 청인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르에뤼 지방을 침공하면서 본격적인 정복전쟁에 나섰다. 로기라는 몇 년만에 르에뤼를 비롯한 수헤일 전체를 정복했고, 베르테르에 도달했으며. 북쪽으로는 릴카 반도의 릴시온[9]을, 서쪽으로는 시게니에라 일부까지 점령했다. 최후에는 아상테의 북쪽 영역까지 정복해 약탈을 원천차단하면서 마침내 제국과 황제를 표방하게 된다.

로기라 대제국의 건설은 내부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결과를 만들었다. 보르미아 지방의 미개했던 아르인에게도 문명이 전파되었고, 베르테르에 건설된 퍼밀 항구도시를 통해서 새로운 문화가 싹트게 된다. 로기라의 중앙집권화 과정에서 세력이 약했던 지역의 귀족들은 아예 오늘날의 투스 샤프테 노이의 영역까지 이주했는데, 이것이 오로시족혼혈고로스를 만드는 기원으로 작용한다. 북부의 릴시온에선 릴족이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냈다. 즉 이때문에 벽아랫세계 전체에서 로기라가 가지는 의미와 정체성이 매우 중요하게 자리잡는다. 또한 고대 아사마르의 종교 계통이었던 영혼교가 로기라 제국 시절에 크게 전파되면서 훗날 로기라상테에서 영혼교가 크게 성행한다.

  • 보르미아의 문명화
  • 투스의 샤프테 노이

투스 왕국은 오랜 기간동안 오지 개발에 노력했지만 많은 문제에 봉면했다. 인구는 자연증가했지만 주택 문제와 식량 문제가 반복됐으나, 더 거대한 성벽을 지을수록 많은 노동력과 자원이 소모됐다. 이 때문에 튜터러스 왕가테토르 튜터러스는 굳이 도바신 반도 내부에서 확장하기보단, 흉 등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나은 외부세계로 향했다. 테토르메라닌 반도 일대의 아르인 마을을 정복했으며 서부로는 장대한 평원을 향해 대확장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테토르 왕을 따라 나선 일곱 신하가 바로 칠신, 사프테 노이(Șapte noi)다. 키가 장신으로 유명했던 킨트 자마스로(자마스 가문의 첫번째 선조)를 비롯해서 우트란, 효아란, 페레느, 바트킨, 노스트, 고트라는 각 지역에 투스의 이름으로 정복했으며, 마침 정착을 시도하려던 로기라 무리와의 국지적인 전투도 벌어졌다. 불안정한 국경이지만 투스 이름 하의 광대한 영토가 생겨났고, 이것을 투스에서 대확장이라고 일컫는다.

전쟁사의 첫걸음

  • 로기라 대제국의 분열
  • 아상테의 위대한 부족 소사의 진격

여러 문명과 세계에 걸친 로기라 대제국은 비약적으로 성장했으나, 지나치게 거대하여 중앙집권화가 어려웠다. 쥰[10] 로도론이 죽고 후계자 문제가 발생했고, 약해진 중앙집권으로 로기라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수헤일에서는 무역로에 해적이 들끓으며 베르테르와의 연결이 약화됐고, 아상테에서는 새로이 부족연합이 탄생하면서 로기라 제국의 권역을 벗어났다. 이런 침체에서 벗어나고자 로기라의 황실에서는 세 왕자들이 각각 서로기라 제국, 중로기라 제국, 동로기라 제국으로 분할한다. 자연스럽게도 이러한 분리는 대를 지나 혈통적 유대가 희미해졌고, 서로간의 영향력을 확장하고자 알력다툼을 하며 크고 작은 갈등이 벌어졌다. 그러던 사이 아상테에서는 소사족이 성장했고, 그의 후손은 부족들을 결집시켜 로기라 대원정을 일으키고 만다. 불과 300년 만에 로기라 제국이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아상테소사족은 5만에 가까운 대군(영웅 소사의 손자인 탐단을 주축으로 한 기마군단)으로 중로기라의 남부를 침공한다. 중로기라는 호숫가 남부의 대다수 영역이 파괴되었지만 위대한 명장인 냉철한 하문탐단을 막아내면서 로기라 전체의 멸망을 막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서로기라에는 진작에 반란의 수렁에 흔들렸으며, 결국 가장 첫번째로 멸망하고 그 위로 수헤일 삼왕국루비아, 이다, 르에뤼 왕국이 건설된다. 결국 냉철한 하문의 사후 중로기라 역시 처절하게 멸망했으며, 남하한 아사락의 빙족이 그곳을 철저히 정복하고 새로운 문화를 세운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동로기라 제국이었다.

  • 로기라 대제국의 멸망

동로기라 제국의 쥰(황제)빙족의 침입으로 중로기라의 멸망을 보았고, 마찬가지로 남하해 올 프레베잔을 경계했다. 따라서 경계를 위해 거대한 장벽을 건설했는데,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강제노역은 지친 백성들에게 달가운 행사가 아니었으며, 결국 이 역시 농민반란으로 무너지고 시가나시 연합이 세워지면서 로기라 제국의 모든 후신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 시기 로기라의 판도는 이민족이 정착한 호수혈맹과 고대 시가나시 문화를 계승하는 시가무르 왕국연합, 아상테의 수만 패잔병들이 원주민들과 정착한 사가사등 이전의 형세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모양세를 갖추게 된다.

호수혈맹의 대두

  • 호수혈맹의 형성
  • 시가무르 연합의 형성
  • 하운 자유도시 연합 선포

수많은 유준인, 남하한 빙족, 일부 청인과 사가사(아상테 출신의 혼혈 로기라인), 아주 소수의 아르인 등 호숫가에서는 역사상 이례적으로 혼합된 문화의 세력이 형성되었다. 지배층은 빙족이 중심이었고, 반면 가장 많은 수의 유준인들이 피지배층이 되었다. 호수혈맹은 르에뤼 일부 지방을 포함해서 여러 지역에 걸쳤으나, 로기라 제국 시절마냥 통일된 권력이나 정복전쟁을 피지는 않았다. 또한 동부의 시가무르 연합은 시가나시, 나시롱, 사이아, 유준 왕국 등으로 구성[11]되었으며 의외로 안정적인 시기가 되었다. 아상테 역시도 한 세기 전의 로기라 대원정으로 인해 전쟁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례적인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같은 시대, 혼혈로고스 등이 투스 사회에서의 지속적인 경쟁을 도피하고자 수 세기동안 하운으로 이주했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큰 도시를 이룩한 하운은 주로 투스와 밀거래하거나 아르인과 무역하는 등 세력을 확장했고, 피라페 위주의 해적들을 배제하면서 많은 투스 상인들에게 환대를 받았다. 특히 기술의 발달로 선박 건조와 항해기술의 발달이 무역을 확장시키자 큰 이점이 있던 하운은 크게 발달하게 된다. 결국 하운 인근의 도시들이 자유도시를 결성하면서 정식적으로 나자운을 수도로 하는 연합체가 탄생했다.

  • 베르테르 왕국의 건설과 전쟁

로기라 대제국의 분할 이후 독립한지 3백여년이 지난 베르테르는 수도 퍼밀 항을 중심으로, 베르테르 왕국이 건설됐다. 베르테르 왕국은 이베르 고원의 중턱부터 푸른 평원 대다수를 차지했으나, 반 세기정도 지나 섬 반대편에 말로가 태어나면서 재앙을 겪게됐다. 베르테르의 말로는 스스로를 분화시켜 짐승 형태의 여러 괴물들을 만들어냈는데, 이로 인해서 베르테르는 전쟁의 참상이 벌어진다. 그러던 중 대륙에서 온 어느 학자가 나타나 왕에게 간청했다. 학자의 등장 이후 베르테르는 고도로 발전했으며, 말로와의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었다.

사관은 논한다.

임금이 곁에 두어야할 자는 옳은 말을 하나, 나쁜점을 보지 못하고 기교가 넘쳐나나 외길밖에 걸어보지 못했으며 재주가 뛰어나나 관계가 좁고 신실하나 관대하지 못하며 대범하나 섬세하지 못한 자여야 한다.

임금이 가장 피해야할 자는 옳은 것을 말하고 그른것을 관조하며, 기교가 넘치고 수많은 길을 걸었으며 뛰어난 재주와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신실하며 관대하고 대범하며 섬세한 자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존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멀리해야 한다.

-왕이 즉위한지 반갑자가 흘러, 해지는 쪽에서 현명한자가 나타나니, 그는 스스로를 메르쿠리우스 라고 일컬었다. 왕이 그의 재주를 물으니 "저는 군대를 양성하고 나라의 망치소리를 끊기게 하지 않으며 임금님이 뻗어누울 자리를 만들 수 있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왕이 이에 감복하여 그를 재상으로 삼고 나라의 중대사를 맡겼다.

수헤일 문명의 대두

  • 삼왕국의 발전
  • 수헤일 - 베르테르 - 보르미아의 연결

서로기라 제국의 멸망 이후 세워진 수헤일루비아 왕국, 이다 왕국, 르에뤼 왕국


=

베르테르의 수헤일 침공

2차 로기라 대원정

카엔데르의 재앙 =

  1. 로기라상테(벽아랫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거인과 나무에 대한 구설과 언급은 이러한 거인문명의 기원을 적시할 수 있는 근거다.
  2. 신장이 인간의 열배 이상이기 때문에 척박한 기후환경에서 열량을 보충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몇몇 거인들은 깊은 동굴로 숨어들어 오랜 잠을 청하거나, 아예 몇 세기의 기간동안 작아지기 위한 환경적 진화를 선택했다.
  3. 아사락-아사마르에서 지칭되는 그 사막이 맞다.
  4. 이러한 이야기는 설화에서 근거하지만 실제로는 몸에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마석이 흡수되어 인간을 변형시킨 것이라고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5. 아사마르 멸망 이후 150년 정도 후
  6. 인종이 꼭 문화를 대변한다고는 볼 수 없으나, 같은 인종으로서의 동질감과 사회를 구성함에 있어 인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7. 호전적인 아사락 계통의 부족들은 원시적인 문명 형태로, 외교의 대상으론 부적합했다. 또한 청인들 역시 자신들만의 문화를 위협할 거라 믿었기 때문에 로기라에게 관대하지 않았고, 로기라의 건국 이후 지속적으로 로기라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런 적대감 치고는 청인 내부에 단합을 하지 않아 소규모 왕국들에 그쳤으며, 결국 차례차례 로기라에게 합병당하면서 로기라 인근의 청인 세력은 모두 사라졌다.
  8. 투스 왕국의 전통적인 무역대와 자경대의 색깔은 이때 형성되었다.
  9. 실질적으로 정복한 것이 아니라 카미야 유격대에 의해서 패전했다. 그러나 어느정도 영향을 주었다고는 할 수 있다.
  10. 고대 로기라 제국에서 지칭하던 황제를 이르는 표현
  11. 연합의 기인 사슴은 룰라반도라는 이름의 신성한 사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