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景福宮)''', 통칭 '''황궐(皇闕)'''은 [[한성 (아침해의 원유관)|황경 한성부]] 종로구 사직로 161([[육조대로 (아침해의 원유관)|육조대로]])에 위치한 [[대한국 (아침해의 원유관)|대한국]]의 [[틀:대한국의 황궁|황궁]]이자 법궁이다. [[태조 고황제 이단 (아침해의 원유관)|태조 고황제]]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 천도를 단행하면서 조선 시대에 가장 먼저 지은 궁궐이다. 1945년 [[삼부대공습 (아침해의 원유관)|삼부대공습]]으로 인해 심각하게 훼철되었으나, 전후에 다시 재건되어 현재까지 천도 이래 600년간 법궁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경복궁(景福宮)''', 통칭 '''황궐(皇闕)'''은 [[한성 (아침해의 원유관)|황경 한성부]] 종로구 사직로 161([[육조대로 (아침해의 원유관)|육조대로]])에 위치한 [[대한국 (아침해의 원유관)|대한국]]의 [[틀:대한국의 황궁|황궁]]이자 법궁이다. [[태조 고황제 이단 (아침해의 원유관)|태조 고황제]]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 천도를 단행하면서 조선 시대에 가장 먼저 지은 궁궐이다. 1945년 [[삼부대공습 (아침해의 원유관)|삼부대공습]]으로 인해 심각하게 훼철되었으나, 전후에 다시 재건되어 현재까지 천도 이래 600년간 법궁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대한국의 법궁인 만큼 [[대한국 황실 (아침해의 원유관)|황실]]의 수장인 [[대한국 대황제 (아침해의 원유관)|대황제]]와 황후가 거주하고 있으며 경복궁의 시설관리는 [[궁내부 (아침해의 원유관)|궁내부]]가, 보안은 대한국 경찰청 소속 기관인 황권친위본부(皇闕親衛本部)와 규정상으로 대황제 산하 기관인 시위대(侍衛隊)가 맡고, 의료는 궁내부 황립태의원에서 전속 담당한다.
대한국의 법궁인 만큼 [[대한국 황실 (아침해의 원유관)|황실]]의 수장인 [[대한국 대황제 (아침해의 원유관)|대황제]]와 황후가 거주하고 있으며 경복궁의 시설관리는 [[궁내부 (아침해의 원유관)|궁내부]]가, 보안은 대한국 경찰청 소속 기관인 황궐친위본부(皇闕親衛本部)와 규정상으로 대황제 산하 기관인 시위대(侍衛隊)가 맡고, 의료는 궁내부 황립태의원에서 전속 담당한다.
경복궁(景福宮), 통칭 황궐(皇闕)은 황경 한성부 종로구 사직로 161(육조대로)에 위치한 대한국의 황궁이자 법궁이다. 태조 고황제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 천도를 단행하면서 조선 시대에 가장 먼저 지은 궁궐이다. 1945년 삼부대공습으로 인해 심각하게 훼철되었으나, 전후에 다시 재건되어 현재까지 천도 이래 600년간 법궁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대한국의 법궁인 만큼 황실의 수장인 대황제와 황후가 거주하고 있으며 경복궁의 시설관리는 궁내부가, 보안은 대한국 경찰청 소속 기관인 황궐친위본부(皇闕親衛本部)와 규정상으로 대황제 산하 기관인 시위대(侍衛隊)가 맡고, 의료는 궁내부 황립태의원에서 전속 담당한다.
상세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북쪽에 있는 궁궐이라는 의미에서 북궐(北闕)로 불리기도 했다. 신진사대부가 계획한 궁궐이였기 때문에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華而不侈,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유교 이념을 반영하여 이전 왕조들의 궁궐에 비해 화려한 장식 없이 수수하고 검소한 형태로 지어졌었다. 배치는 유교적인 관점에 따라 삼문삼조의 형태로 되어 있었다.
경복궁은 법궁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엄정한 기하학적 공간 분할, 반듯한 축선 상의 건물 배치, 정연한 대칭 구조로 설계되었다. 조선 중기 후반부터는 이궁인 창덕궁(+창경궁)과 양궐 체제를 갖췄는데, 역대 임금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두 궁궐을 번갈아 가며 사용했다.
이후 고조의 치세 당시 궁전 확충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 최대 규모 5,000칸까지 서서히 확장되었던 이전 건물과 다르게 단숨에 7,400칸짜리로 중건되는 등 대대적인 확충 작업을 거쳤다. 단숨에 1.5배 크기가 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본관의 리모델링 작업이 완료된 융희 시대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편전(片箭)인 경무전(武箭)또한 완공되어 포함하는 영역이 훨씬 커졌고, 현재까지 이 확장된 영역이 이어져오는 중이다.
경복궁의 전각들은 대체로 남향으로 건축되었으나 전체적인 구조로 볼 때 완전한 정남향은 아니다. 당대 측량 기술의 한계로 보인다.
명칭
정식 이름인 경복궁(景福宮)이라는 명칭은 과거 조선 시대 정도전이 《시경》의 '군자만년개이경복(君子萬年介爾景福,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란 글귀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 지은 명칭이다.
한편 황궐(皇闕)이라는 이름은 대한제국 시기에 새로 만들어진 명칭으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환태평양 통감청 체제를 거치면서 국내외 모두에서 사용 빈도가 증가했다.
영어명은 The Imperial Palace Gyeongbok[1]. 가끔씩 별칭으로는 Blue House라고도 불린다[2].
그 외에도 여러 호칭이 있다. 법궁(法宮)·정궁(正宮)·본궁(本宮)·궁중(宮中)·황궁(皇宮)·황성(皇城)처럼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호칭도 있고, 북궐(北闕)·경궁(京宮)·성궁(聖宮)·성궐(聖闕)·북궁(宮宮)과 같은 대한국 고유의 명칭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