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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개요= | ||
사족(士族)은 [[대한제국 (아침해의 원유관)|대한제국]] 시기에 한국에 존재했던 귀족 계급이다. 본래는 지방의 선비들과 향사들을 뜻하는 보통명사의 일종이었으나, 양반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 조정에서 신분제를 개편하면서 구 양반 출신 귀족들과 공신 귀족들을 전부 통틀어서 부르는 말로 거듭났다. | 사족(士族)은 [[대한제국 (아침해의 원유관)|대한제국]] 시기에 한국에 존재했던 귀족 계급이다. 본래는 지방의 선비들과 향사들을 뜻하는 보통명사의 일종이었으나, 양반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 조정에서 신분제를 개편하면서 구 양반 출신 귀족들과 공신 귀족들을 전부 통틀어서 부르는 말로 거듭났다. | ||
이들 중 공이나 선조의 업이 큰 이들은 작위를 가진 작위사족으로 다시 한 번 분류되었으며<ref>쉽게 말해, 기존 조선의 사대부 계층의 포함 범위를 넓힌 뒤 등재조건을 바꾸고, 개혁으로 공을 얻은 이들이나 모든 사대부들이 존경할만한 조상이나 가세를 둔 이들에게는 작위를 추가적으로 부여했다고 보면 된다. 즉, 작위가 없어도 사족에 해당된다면 작위사족에 비해서 급이 낮을 뿐이지, 엄연히 사족은 맞았다.</ref>, 보통 작위사족의 경우에는 죽은 후 조선의 전통을 따라 궁내부에서 회의를 거치거친 뒤, 황제의 친필로 시호를 하사했다. | 이들 중 공이나 선조의 업이 큰 이들은 작위를 가진 작위사족으로 다시 한 번 분류되었으며<ref>쉽게 말해, 기존 조선의 사대부 계층의 포함 범위를 넓힌 뒤 등재조건을 바꾸고, 개혁으로 공을 얻은 이들이나 모든 사대부들이 존경할만한 조상이나 가세를 둔 이들에게는 작위를 추가적으로 부여했다고 보면 된다. 즉, 작위가 없어도 사족에 해당된다면 작위사족에 비해서 급이 낮을 뿐이지, 엄연히 사족은 맞았다.</ref>, 보통 작위사족의 경우에는 죽은 후 조선의 전통을 따라 궁내부에서 회의를 거치거친 뒤, 황제의 친필로 시호를 하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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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 =시스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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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족들의 경우에는 귀족들의 신분을 따로 구분했는데, 기존 만주 귀족들 및 친한파 인사들은 여진귀족이라는 자리에 앉혀서 기득권을 유지시켰고, 만주 황실인 아이신기오로 가문은 애신각라 왕가(愛新覺羅王家)로 대한제국 황실에 편입시켰다. | 만주족들의 경우에는 귀족들의 신분을 따로 구분했는데, 기존 만주 귀족들 및 친한파 인사들은 여진귀족이라는 자리에 앉혀서 기득권을 유지시켰고, 만주 황실인 아이신기오로 가문은 애신각라 왕가(愛新覺羅王家)로 대한제국 황실에 편입시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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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3대 내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사족이 될 자격을 얻은 이가 있으면 작위나 사족 자리를 반납해야 했고, 본인이 저지른 것이라면 사회에 공개되고 처벌받았다. 이는 기존 조선신분제의 혼란으로 인해 필요없을 수준으로 많이 늘어난 양반의 머릿수를 조정하기 위한 정책이기도 했다. | 또한, 3대 내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사족이 될 자격을 얻은 이가 있으면 작위나 사족 자리를 반납해야 했고, 본인이 저지른 것이라면 사회에 공개되고 처벌받았다. 이는 기존 조선신분제의 혼란으로 인해 필요없을 수준으로 많이 늘어난 양반의 머릿수를 조정하기 위한 정책이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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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생활= | ||
광무 시대, 융희 시대 초기의 사족들의 주거지는 주로 서양식 건물과 한국식 건물의 양립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당시 한국 황실에서 광무제가 주도한 서구화 정책과 서양을 순방한 양반, 구 유생들이 퍼트린 입소문이 이에 큰 역할을 했는데, 서구화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 황제의 접대를 할 방과 점점 대세가 되가는 구화주의에 밀리지 않으려는 한편, 한국적인 면모를 버릴 마음이 없던 이들의 입장에서는 생활용인 한옥과 응접용인 양관을 따로 건설하여 일석이조를 보는 것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 광무 시대, 융희 시대 초기의 사족들의 주거지는 주로 서양식 건물과 한국식 건물의 양립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당시 한국 황실에서 광무제가 주도한 서구화 정책과 서양을 순방한 양반, 구 유생들이 퍼트린 입소문이 이에 큰 역할을 했는데, 서구화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 황제의 접대를 할 방과 점점 대세가 되가는 구화주의에 밀리지 않으려는 한편, 한국적인 면모를 버릴 마음이 없던 이들의 입장에서는 생활용인 한옥과 응접용인 양관을 따로 건설하여 일석이조를 보는 것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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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 시대에는 얼마 못 가 김창암 집권기에 들어서면서 사족들의 임명이 비교적 적어졌고, 이에 따라 저택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파시즘의 국가주의 풍조에 따라 석재 한옥으로 이루어진 저택이나 완전한 한옥 구조에 서양식 접대시설을 구비한 저택, 그리고 둘을 절충한 제 2차 한양풍 양식 등도 나타났다. 이후 한국이 항복하고 환태평양 사령부의 압박으로 사족제도가 폐지되면서, 여러 저택들은 대부분 대중시설로 개방되었다. | 성덕 시대에는 얼마 못 가 김창암 집권기에 들어서면서 사족들의 임명이 비교적 적어졌고, 이에 따라 저택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파시즘의 국가주의 풍조에 따라 석재 한옥으로 이루어진 저택이나 완전한 한옥 구조에 서양식 접대시설을 구비한 저택, 그리고 둘을 절충한 제 2차 한양풍 양식 등도 나타났다. 이후 한국이 항복하고 환태평양 사령부의 압박으로 사족제도가 폐지되면서, 여러 저택들은 대부분 대중시설로 개방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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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 | =특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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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보통 특권은 작위사족들에게 몰려있었는데, 일반 사족도 미미하지만 특권이 없는 것은 아니였다. 앞서 언급한 고등과 진학 보증은 사족 전원에게 해당되었던지라 저것만으로도 꽤 큰 특권이기에 상대적으로 불만은 적었고, 일반 사족의 경우는 머릿수가 꽤 되었기에 평민들의 불만을 사지 않기 위해서 특권을 어느정도 제약할 필요가 있기도 했다. | 보다시피 보통 특권은 작위사족들에게 몰려있었는데, 일반 사족도 미미하지만 특권이 없는 것은 아니였다. 앞서 언급한 고등과 진학 보증은 사족 전원에게 해당되었던지라 저것만으로도 꽤 큰 특권이기에 상대적으로 불만은 적었고, 일반 사족의 경우는 머릿수가 꽤 되었기에 평민들의 불만을 사지 않기 위해서 특권을 어느정도 제약할 필요가 있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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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이후= | =종전 이후= | ||
종전 이후, 전쟁에 대한 방조등의 이유로 환태평양 사령부에 의해 헌법이 개편되면서, 사족 제도 또한 폐지되어 기존에 사족이거나 작위사족이었던 이들은 전부 평민으로 강등되었다. 이 과정에서 황실 또한 작위를 받은 서자 출신 황족들이 대거 강등되기도 하였으며, 왕족의 수 또한 많이 줄어 기존보다 황실의 규모가 작아지는 데 일조했다. | 종전 이후, 전쟁에 대한 방조등의 이유로 환태평양 사령부에 의해 헌법이 개편되면서, 사족 제도 또한 폐지되어 기존에 사족이거나 작위사족이었던 이들은 전부 평민으로 강등되었다. 이 과정에서 황실 또한 작위를 받은 서자 출신 황족들이 대거 강등되기도 하였으며, 왕족의 수 또한 많이 줄어 기존보다 황실의 규모가 작아지는 데 일조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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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귀족이라고도 부르지만, 사실 사족의 이미지는 전근대 유럽의 그것보다는 구 조선의 사대부 계층이나 일본의 화족과 더 닮았다. 즉 쉽게 말해 고위 관료, 재벌, 방위관 등의 기득권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중 대중에게는 현대나 삼성같이 부르주아로서의 성격이 강한 면모가 더 유명한 편. | 흔히들 귀족이라고도 부르지만, 사실 사족의 이미지는 전근대 유럽의 그것보다는 구 조선의 사대부 계층이나 일본의 화족과 더 닮았다. 즉 쉽게 말해 고위 관료, 재벌, 방위관 등의 기득권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중 대중에게는 현대나 삼성같이 부르주아로서의 성격이 강한 면모가 더 유명한 편. | ||
한국의 우경화에 사족들의 책임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종종 존재하는데, 국체유학의 창시를 한 게 사족을 위시한 귀족층인것은 맞으나, 이미 현대 한국의 우경화 행보는 대부분 국체유학과 동시에 유교 파시즘에 기반하는 것들이 주류가 된지라 부분적으로만 맞다고 할 수 있는 지적이다. 애초에 국체유학 자체가 원래 유교와는 다른 점이 상당히 많은 변형본이고, 여기에 극단주의까지 끼얹은 유교 | 한국의 우경화에 사족들의 책임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종종 존재하는데, 국체유학의 창시를 한 게 사족을 위시한 귀족층인것은 맞으나, 이미 현대 한국의 우경화 행보는 대부분 국체유학과 동시에 유교 파시즘에 기반하는 것들이 주류가 된지라 부분적으로만 맞다고 할 수 있는 지적이다. 애초에 국체유학 자체가 원래 유교와는 다른 점이 상당히 많은 변형본이고, 여기에 극단주의까지 끼얹은 유교 파시즘과 일민주의는 말할것도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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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아침해의 원유관]] | [[분류:아침해의 원유관]] |
2024년 3월 25일 (월) 17:4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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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쉽게 말해, 기존 조선의 사대부 계층의 포함 범위를 넓힌 뒤 등재조건을 바꾸고, 개혁으로 공을 얻은 이들이나 모든 사대부들이 존경할만한 조상이나 가세를 둔 이들에게는 작위를 추가적으로 부여했다고 보면 된다. 즉, 작위가 없어도 사족에 해당된다면 작위사족에 비해서 급이 낮을 뿐이지, 엄연히 사족은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