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문S|한국과 일본에게 1920년대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시대일것이다.<small>-미국 경제칼럼</small>}}
본격적인 감격시대의 쇠락은 유럽으로부터 얻어내던 전쟁특수가 몰락하고, 끝나지 않을 듯하던 수직적인 경제 상승이 멈추고 부터였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성장으로 한껏 오른 국위 덕분에 성장만 멈췄을 뿐 호황 자체는 계속되리라는 시각이 있었으나, 호황이 끝나자 억눌려 있던 노동자들의 사회주의 운동과 조선공산당과 일본 공산당의 발흥 등 사회문제가 심화될 조짐이 보였고,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가 겉으로는 잘 유지되고 있었으나, 약간의 문제가 생기는 순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였다.
결국 일본의 치안유지법 신설과 한국의 치안법 개정을 시작으로 사회의 본격적인 경직이 시작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맘때쯤 재임한 총리들의 무능과 이로 인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 그리고 결정적으로 '''을축대홍수'''와 '''관동대지진''', 나아가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받으면서 호황의 꿈 조차도 사그러들었다. 이때 입은 피해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적인 성과를 사실상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렸고, 타 열강들에 비해 국가적인 역량이 부족하던 이들의 특성상 피해는 유럽 국가들보다 컸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이 사태를 기점으로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치안법을 개정한 이후에도 상당히 활발했던지라 '반공'이 사실상 국내 정치인들의 주 지지도 획득 방법으로 거듭났고, 일본도 관동 대지진 당시 사회에 준 충격으로 인해 다이쇼 시대에 이룩한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대신 정치가 극단적으로 변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적인 인권과 국민의 정신적인지주, 법의 지배라고 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대 사회의 시작 이래부터 함께 협력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로 일한관계의 기초가 아닌가.-아베 신조
동양의 감격시대라는것은 제국주의를 미화시킨 구역질 나는 환상이다. 단지 유럽에서 이미 있던 위선을 조선과 일본이 반동주의적인 식견을 가지고 반복했을 뿐이다.-장 폴 사르트르
감격시대는 일본사, 한국사의 시대구분 중 하나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대한제국, 일본제국에 의해 아시아가 제패되었던 기간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이들의 국제적인 위상이 급부상한 제 1차 동아시아 전쟁의 승전 직후부터 제 2차 동아시아 전쟁의 패배까지를 감격시대로 보는 시각이 주류이며, 일부는 이후 한국과 일본이 다시 경제적으로 부상했기에 이 시기도 감격시대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으나 이 시기는 전반적으로 아시아의 성장세가 큰 시대였기 때문에 특정 국가들만이 제국주의로서 번영한 감격시대와 같은 선상에 두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대세다.
배경
여명기
제 1차 동아시아 전쟁
아시아의 봄날
태극과 욱일의 시대
세계대공황
황혼기
한국과 일본에게 1920년대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시대일것이다.-미국 경제칼럼
본격적인 감격시대의 쇠락은 유럽으로부터 얻어내던 전쟁특수가 몰락하고, 끝나지 않을 듯하던 수직적인 경제 상승이 멈추고 부터였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성장으로 한껏 오른 국위 덕분에 성장만 멈췄을 뿐 호황 자체는 계속되리라는 시각이 있었으나, 호황이 끝나자 억눌려 있던 노동자들의 사회주의 운동과 조선공산당과 일본 공산당의 발흥 등 사회문제가 심화될 조짐이 보였고,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가 겉으로는 잘 유지되고 있었으나, 약간의 문제가 생기는 순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였다.
결국 일본의 치안유지법 신설과 한국의 치안법 개정을 시작으로 사회의 본격적인 경직이 시작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맘때쯤 재임한 총리들의 무능과 이로 인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 그리고 결정적으로 을축대홍수와 관동대지진, 나아가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받으면서 호황의 꿈 조차도 사그러들었다. 이때 입은 피해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적인 성과를 사실상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렸고, 타 열강들에 비해 국가적인 역량이 부족하던 이들의 특성상 피해는 유럽 국가들보다 컸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이 사태를 기점으로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치안법을 개정한 이후에도 상당히 활발했던지라 '반공'이 사실상 국내 정치인들의 주 지지도 획득 방법으로 거듭났고, 일본도 관동 대지진 당시 사회에 준 충격으로 인해 다이쇼 시대에 이룩한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대신 정치가 극단적으로 변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