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국/황제 (아침해의 원유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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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8일 (목) 22:4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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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아침해의 원유관
아침해의 원유관은 임진왜란 축소로 인해 뒤바뀐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세계관입니다.
청화대에 이화문이 꽂혀있는 이 세계의 국가, 사회, 정치 및 문화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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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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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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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관련 문서
[ 정치 · 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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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 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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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역대 대한국 대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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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대황제
Emperor of Korea
현직 명화제 이순제 5대
즉위 2010년 5월 5일 대한국 한성부 환구단
경칭 금상(今上), 황상(皇上), 폐하(陛下)
연호 명화(明和)
관저 대한국 한성부 청우전
제1조:대한국 대황제는 한국인의 지도자이자 한국의 통합자로서 국가를 대표하며, 이는 주권을 가진 대한 국민들의 총의에 의거하여 정해진 자리다.
- 대한국 헌법 제1장 황제(帝皇) 제1조

황제(帝皇)는 대한국의 군주이다. 현 황제는 제 5대 대황제인 이순이며, 2010년 5월 5일에 공식적으로 즉위했다. 연호는 명화(明和)로 선정되었으며, 2024년 현재는 연호로 계산할 시 명화 14년이다.

역사적으로는 한국 사회 내의 유교적 질서의 중심이자 중국의 황제를 제외하면 한국 입장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자국 내 세속적 유교 지도자인 사람을 부르는 명칭이기도 하다.

본래는 중국의 제후로 취급되었으나, 개항 이후 아편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순나라와 옆나라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대한 전보가 전해지자 칭제 요청이 조정에 빗발쳤고, 결국 '옛 천하가 저무는 새 시대에는 새 천하의 천명이 필요하다' 라는 명분을 내세워 우선적으로는 고려식 외왕내제 제도를 택했다가, 이후 금나라와 순나라의 동맹을 확실하게 박살내면서 칭제건원에 대한 명분을 얻게 된 조선 왕조는 1894년 양력 10월 3일에 완공된 환구단에서 완공식과 동시에 의식을 거행, 유교적 질서에서 황가로서의 자격을 얻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황제의 권력 자체는 초창기 조선왕조 시기보다 약해진 편이었는데, 이는 개항 이전까지 권력이 어느정도 억제된 상태에서 세도정치가 있었으나, 세도정치기가 말기때와 중간중간의 불안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을 세계무대로 보내준 기반을 마련한 나름 성세였기에 실질적인 왕의 권력이 일부 부재한 상황에 한국인들 자체가 익숙해져서 가능했다는게 정론이다.

신미개혁을 단행한 이후에는 독일과 일본을 본따, 대한제국의 사실상 국교급 위상의 이념이였던 국체유학의 정점이자 대한제국의 국가원수(元首), 대한제국군의 대원수(大元帥)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성 내전과 항복 이후, 새롭게 시행된 현행 대한국 헌법하에서는 '한국인의 지도자'이자 '한국의 통합자'로 규정었다. 그러나 황실의 새로운 문을 연 황제인 이현의 위상이 꽤 컸던지라 헌법 개정 이후에도 대중에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황실의 권력은 일부 건재하며, 때문에 옆나라인 일본처럼 완전히 상징적인 존재라고만 보기는 힘들수도 있는 존재로 자리잡고있다.

명목상의 국가원수인 관계로 각국의 정상들과 만날때 최소한 얼굴을 한 번 비추는 정도는 관습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타국 왕족의 접대는 전면적으로 한국의 군주로서 대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