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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壤府 | Pyeongya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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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 | 문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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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동 | |||
1,849.6km2 | |||
10,115,532명 | |||
김수길 | |||
서문거리 | |||
선진민주당 |
평양부의 전경 |
평양은 대한국의 제 2의 도시이다. 한성부에 이어 대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도시이며, 한국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공식 명칭은 평양부(平壤府)로, 다른 명칭으로는 서쪽 수도라는 뜻의 서경이 있다. 보통 두 명칭이 고루 쓰인다.
한마디로 말해, 번화하긴 했지만 영원히 2등인 서울의 라이벌이다. 그나마 서경 평양부가 20세기에 들어 많이 발전하였고 개발지수 면에선 일부 서울보다 우세이나, 여전히 한성의 규모와 중요도에는 못 미치는지라, 그만큼 한국 내에서 한성이 가지는 위치는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서울보다 문화적으로 개방적이었다보니, 전통적으로 이곳에서 식문화 등의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긴 했다.
원래 평양부는 조선 중기부터 후기까지로 가면 취급이 좋은 편은 아니였으나, 중후기쯤부터 농지를 위해 남만주로 북상하는 농민들의 여관 역할을 하면서 서서히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고, 만주 정벌이 이루어진 이후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라이벌 구도가 본격화된것을 근대화와 영토 확장을 통해 두 도시의 체급이 비대해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이 당시 두 도시는 각각 고구려로서의 수도, 신천명으로서의 수도를 내세우며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또한, 두 도시는 각각 의류산업과 기계산업을 내세워, 일명 '비단의 도시' 한성과 '강철의 도시' 평양으로서의 이명을 이 시기에 확립했다. 둘의 대결은 당시 오사카와 도쿄의 앙금과 더불어 아시아 최고의 라이벌 도시들로 손에 꼽혔고, 이러한 가운데 강철의 도시를 자처한 평양은 유독 신식인 물건과 트렌드에 집착하는 풍토가 자리잡았다.
서울에 비해 리버럴한 성향이 강한 편으로, 때문에 종종 자부심 넘치는 서울 거주민들로부터 경박하다는 소리도 듣는 지역이다. 근방 지역인 대련시와 기타 지역들이 다문화적 성향이 존재하다보니 서울에 비해 이국적인 외국 문화, 예를 들면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 문화도 꽤 보이는 편.
서울에 비해 유교의 기세가 약한 편이고, 기독교의 강세가 나타나는 지역이다. 한국 내 기독교의 50퍼센트 이상이 평양과 그 주위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는 말이 나올 수준. 이 때문에 기독교 특유의 개발주의에 따른 전통에 대한 흥미 상실이 꽤나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또한, 서울과 달리 종교적으로는 주민들에게 보수적인 성향이 있는 편이다.
옛 건축물을 찾아보기 꽤 힘든 지역으로, 대부분 건물이 낡았다 싶으면 철거 혹은 재건축되기 빈번한지라 건물 노후화 문제는 서울보다 적은 편이기도 하다.
대한제국 체제부터 산업화의 핵심 도시들 중 하나였던곳인만큼 대규모의 공장 지대가 발달해 있으며, 한국 내 중공업 산업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도시로 여겨진다. 때문에 한국인들은 통상적으로 평양 하면 콘크리트나 강철 건물이 도배되어있고, 공장주들이 많은 풍경을 떠올리는 경우가 다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