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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 영토에는 군정이 들어섰으나, 이미 내전으로 파시즘 세력이 축출된 한국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미국은 일본과 같은 직접지배보다는 보다 간접적인 지배를 택했다. 미군의 간접지배하에 헌법이 개정되어, 조선시대때 확보한 영토를 제외하고 모든 영토를 토해냈으며 한국의 황제는 국민적 통합자로서만 명시되었다.이후, 1949년에 체결되고 이듬해 발효된 부산 강화조약으로 완전한 국권을 회복하고 미국과의 동맹을 맺어 제1세계로 편입된 뒤, 많이 남은 편이었던 인프라들을 이용하여 중국 내전과 루스 차르국의 정상국가화에대한 투자 등으로 호황을 이룩하는데 성공하였다. 한국의 정치 · 외교는 이때부터 재형성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대한국 헌법 제1조는 황제의 지위를 '대한국의 상징이고 한민족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일부 눈치채기 힘든 방면에서는 황제의 권력이 유효하다<ref>이는 국내에서 민주주의 세력을 결집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거두가 당시 의친왕으로도 알려진 태화황제 이현이어서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ref>. 실질적인 정치는 의원내각제로 운영되며 최고 실권자는 내각총리대신으로 현직은 안철수다. 외교에 있어선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한 친미/친서방 외교를 고수해 왔고, 중화인민공화국과의<ref>소련이 서방측이기는 하나,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해 딱히 강경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있는지라 소련을 중화인민공화국과 같은 제 2세계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다만, 최소한 소련은 중국이 그랬듯이 [[2021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최소한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침공하지는 않았다.]]</ref> 신냉전이 본격화된 2010년대 후반 이후론 서방 세계 내에서 신뢰받는 대중국 전략 파트너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ref>다만,일각에선 한국의 현 영향력이 제국 시대에 만주지역과 연해주에 기반을 다져 놓고, 그 기반으로 대금민국과 러시아 차르국을 조정해서 현 외교적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주장도 존재한다. 반서방 기질이 강한 편인 러시아 차르국이 한국의 눈치를 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제 2세계 진영에 참가하지 않고 있는게 아니냐는것. 물론, 대금민국과 한국의 관계는 실제로는 껄끄러운만큼 단순히 주장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f>. | 전후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 영토에는 군정이 들어섰으나, 이미 내전으로 파시즘 세력이 축출된 한국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미국은 일본과 같은 직접지배보다는 보다 간접적인 지배를 택했다. 미군의 간접지배하에 헌법이 개정되어, 조선시대때 확보한 영토를 제외하고 모든 영토를 토해냈으며 한국의 황제는 국민적 통합자로서만 명시되었다.이후, 1949년에 체결되고 이듬해 발효된 부산 강화조약으로 완전한 국권을 회복하고 미국과의 동맹을 맺어 제1세계로 편입된 뒤, 많이 남은 편이었던 인프라들을 이용하여 중국 내전과 루스 차르국의 정상국가화에대한 투자 등으로 호황을 이룩하는데 성공하였다. 한국의 정치 · 외교는 이때부터 재형성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대한국 헌법 제1조는 황제의 지위를 '대한국의 상징이고 한민족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일부 눈치채기 힘든 방면에서는 황제의 권력이 유효하다<ref>이는 국내에서 민주주의 세력을 결집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거두가 당시 의친왕으로도 알려진 태화황제 이현이어서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ref>. 실질적인 정치는 의원내각제로 운영되며 최고 실권자는 내각총리대신으로 현직은 안철수다. 외교에 있어선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한 친미/친서방 외교를 고수해 왔고, 중화인민공화국과의<ref>소련이 서방측이기는 하나,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해 딱히 강경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있는지라 소련을 중화인민공화국과 같은 제 2세계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다만, 최소한 소련은 중국이 그랬듯이 [[2021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최소한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침공하지는 않았다.]]</ref> 신냉전이 본격화된 2010년대 후반 이후론 서방 세계 내에서 신뢰받는 대중국 전략 파트너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ref>다만,일각에선 한국의 현 영향력이 제국 시대에 만주지역과 연해주에 기반을 다져 놓고, 그 기반으로 대금민국과 러시아 차르국을 조정해서 현 외교적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주장도 존재한다. 반서방 기질이 강한 편인 러시아 차르국이 한국의 눈치를 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제 2세계 진영에 참가하지 않고 있는게 아니냐는것. 물론, 대금민국과 한국의 관계는 실제로는 껄끄러운만큼 단순히 주장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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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계 한국인들은 근대에 들어서 수가 늘어난 이들로, 제국주의 시기 당시 소련의 탄압을피해 한국의 연해주 자치령 등으로 떠난 다수의 제정 지지자들과 그들이 거느린 식솔들, 또는 만주에 망명한 트로츠키의 추종자를 비롯한 러시아인들이 모인 것에서 초기 인원들이 결집되었다. 이들 중 당시 식민지인이였던 만주인들과 같은 대우를 받기 싫었던 이들이 한반도 본토, 혹은 연해주에 위치한 백러시아 정부로 건너가면서 정식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현재도 동네 하나에서 러시아계 한국인을 한두명은 볼 수 있는 수준의 인구수를 유지하고 있다. | 러시아계 한국인들은 근대에 들어서 수가 늘어난 이들로, 제국주의 시기 당시 소련의 탄압을피해 한국의 연해주 자치령 등으로 떠난 다수의 제정 지지자들과 그들이 거느린 식솔들, 또는 만주에 망명한 트로츠키의 추종자를 비롯한 러시아인들이 모인 것에서 초기 인원들이 결집되었다. 이들 중 당시 식민지인이였던 만주인들과 같은 대우를 받기 싫었던 이들이 한반도 본토, 혹은 연해주에 위치한 백러시아 정부로 건너가면서 정식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현재도 동네 하나에서 러시아계 한국인을 한두명은 볼 수 있는 수준의 인구수를 유지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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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대한 인식== | ==외국에 대한 인식== | ||
조선시대에 한국은 초기에 서양을 상대로 전면개항을 하기 전까지는 자국 내의 진보적 유학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었다. 초기에는 동도서기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었으나, 전면개항 이후부터 시대의 논리에 따라 새로 정립된 해당 사상의 경우에는 구본신참(舊本新參)이라 칭하기도 한다. | 조선시대에 한국은 초기에 서양을 상대로 전면개항을 하기 전까지는 자국 내의 진보적 유학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었다. 초기에는 동도서기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었으나, 전면개항 이후부터 시대의 논리에 따라 새로 정립된 해당 사상의 경우에는 구본신참(舊本新參)이라 칭하기도 한다. |
2024년 3월 25일 (월) 17:0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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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大韓國 | Kore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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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1] | 국장 | ||||||||||||||||||||||||||||||
광명천지 光明天地 | |||||||||||||||||||||||||||||||
동시베리아 전쟁 이전 | 동래 강화조약 이후 | ||||||||||||||||||||||||||||||
대한제국 | 대한국 | ||||||||||||||||||||||||||||||
상징 | |||||||||||||||||||||||||||||||
애국가 | |||||||||||||||||||||||||||||||
무궁화, 오얏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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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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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 |||||||||||||||||||||||||||||||
한성부 | |||||||||||||||||||||||||||||||
한성부 | |||||||||||||||||||||||||||||||
340,744km² | |||||||||||||||||||||||||||||||
동북아시아 한반도, 남만주 일대 및 부속도서 | |||||||||||||||||||||||||||||||
일본국, 대금민국, 러시아 차르국 | |||||||||||||||||||||||||||||||
인문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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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및 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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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대한국 수도 한성부의 전경 |
서경 평양부의 전경 |
개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광명이 빛추는 천지로, 이제는 또 다른 새로운 해로. |
2020년 12월 31일, 한성 TV 보신각 새해기념 방송 中 |
7년의 밤은 새벽녘에 저물어가고, 아침의 근화향(槿花鄕)에 꽃이 피도다.
대한국, 통칭 대한,한국은 동아시아의 한반도와 남만주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동쪽으로 동해, 서쪽으로 황해에 면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동중국해와 면하고 있다. 현재 대금공화국과 간도 지역 일부의 영유권을 두고 분쟁상태에 있다.
전근대와 중세 시대에는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중국 대륙에 지나치게 가까운탓에 중원국가들에게 국력을 억제받았으나, 1592년 부산 전투에서 조기에 왜란을 막아낸것과 명나라와의 합동작전인 만주대첩을 시작으로 국력을 점차 증강하여, 결과적으로 중국이 분열된 상태에서 다시 조각나 부족들이 난립하는 만주를 울타리로 삼는 동북면 방면의 패권을 기반으로 상당한 국력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19세기 중엽 프랑스의 개항 요구에 응하여 서양 열강들과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서서히 모순점이 드러나던 안동 김씨 세도가[4]는 근왕개화파 세력에 의해 몰락하였다. 1873년에는 임신개혁을 단행하여 구시대적 대조선국 체제를 끝내고 대한제국 체제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후금, 순나라와 후송보다는 먼저, 일본보다는 조금 늦게 서양의 제도와 기술을 수용하고 체화하는데 성공했으며 이후 제 1차 동아시아 전쟁, 한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울타리 정도로만 생각하던 만주의 남부는 완전히 합병, 나머지는 식민지화 시키는 동시에 일본과 연해주를 점령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일본에 버금가는 동아시아 열강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1929년 발발한 대공황으로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되자 1938년 김창암을 위시한 파시즘 세력의 집권을 시작으로, 1937년 중일전쟁에 참전해 중국과 몽골 침략에 나섰고, 1941년에는 독일의 비밀제의로 소려과 동시베리아 전쟁을 개시했으나, 결국 1944년 영친왕 이택의 김창암 세력에 의한 피살을 기점으로 황실과 문민세력의 합공작전으로 인한 김창암 내각이 붕괴하면서 평화협정으로 끝을 맺게 된다.
전후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 영토에는 군정이 들어섰으나, 이미 내전으로 파시즘 세력이 축출된 한국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미국은 일본과 같은 직접지배보다는 보다 간접적인 지배를 택했다. 미군의 간접지배하에 헌법이 개정되어, 조선시대때 확보한 영토를 제외하고 모든 영토를 토해냈으며 한국의 황제는 국민적 통합자로서만 명시되었다.이후, 1949년에 체결되고 이듬해 발효된 부산 강화조약으로 완전한 국권을 회복하고 미국과의 동맹을 맺어 제1세계로 편입된 뒤, 많이 남은 편이었던 인프라들을 이용하여 중국 내전과 루스 차르국의 정상국가화에대한 투자 등으로 호황을 이룩하는데 성공하였다. 한국의 정치 · 외교는 이때부터 재형성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대한국 헌법 제1조는 황제의 지위를 '대한국의 상징이고 한민족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일부 눈치채기 힘든 방면에서는 황제의 권력이 유효하다[5]. 실질적인 정치는 의원내각제로 운영되며 최고 실권자는 내각총리대신으로 현직은 안철수다. 외교에 있어선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한 친미/친서방 외교를 고수해 왔고, 중화인민공화국과의[6] 신냉전이 본격화된 2010년대 후반 이후론 서방 세계 내에서 신뢰받는 대중국 전략 파트너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7].
상징
국호
한국이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의 길을 걷기 이전에는 조선, 대조선국등의 국호가 사용되었고, 이후 삼한을 계승한 새로운 자주적 제국이라는 의미해서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신설하였다. 다만, 연합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이후에는 제국주의 색채를 뺀다는 명목으로 제국이라는 국호는 사용하지 않게되었다.
줄여서 부르는 말은 한국 또는 대한으로, 1960년대까지는 대한이 주로 쓰였으나 이후부터는 한국이 주로 쓰인다. 중국, 대금민국과 일본등 한자문화권에서는 ‘한국’이라고 표시하며, 러시아 차르국에서는 ‘Корейская империя(대한제국)’이라고 예외적으로 제국이라고 표기한다.
국기
대한국/국기 문서 참조.
국장
대한국/국장 문서 참조.
황실
대한국/황실 문서 참조.
황제
대한국/황제 문서 참조.
사회
민족 구성
한국의 민족은 한국인과 소수의 러시아인과 일본인, 그리고 만주인으로 구성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순서대로 가장 많은건 한국인, 그 다음으로 많은 러시아인과 일본인 그리고 일본인이며 이 중 한국계가 사회의 주류를 차지한다.
한민족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첫번째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한반도 본토에서 거주하던 이들이며, 두번째는 18세기 말부터 서서히 한반도에 동화되기 시작한 남부 만주인계들로 이루어져있다. 다만 이 때문에 만주계 한민족이더라도 차이점을 찾는 것이 불가능할 수준인지라, 사실상 현재 한국의 한민족은 하나의 분파만 있다고 봐도 될 수준이라고 추측된다. 러시아계 한국인들은 근대에 들어서 수가 늘어난 이들로, 제국주의 시기 당시 소련의 탄압을피해 한국의 연해주 자치령 등으로 떠난 다수의 제정 지지자들과 그들이 거느린 식솔들, 또는 만주에 망명한 트로츠키의 추종자를 비롯한 러시아인들이 모인 것에서 초기 인원들이 결집되었다. 이들 중 당시 식민지인이였던 만주인들과 같은 대우를 받기 싫었던 이들이 한반도 본토, 혹은 연해주에 위치한 백러시아 정부로 건너가면서 정식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현재도 동네 하나에서 러시아계 한국인을 한두명은 볼 수 있는 수준의 인구수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