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걸 저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니까. 이 집안의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도 아닌 그냥 그런 존재니까.. 그런데, 아웬은 오히려 제가 잘못했다는 걸 증명시켜줬어요. 제가 가치있는 사람이래요. 그 떳떳한 말이, 저를 더 바보로 만들었어요. 전 스스로를 바보처럼 여긴거에요. 그게 제 잘못이에요. 그러니까 이젠 그런 실수 하지 않을거에요. 남한테 괴롭힘을 당해도.. 잘못된 일을 겪어도, 바보처럼 가만히 있지 않을거에요.
윈테라 1부 02편에서 헤이랑그의 질문에 답변하는 로운
[ 펼치기 · 접기 ]
1부 2부 3부 4부 5부 6부 7부
챕터 제목 내용
01 모든 것의 시작 로운과 아웬. 두 사람의 첫만남이 시작된다.
02 햇살 행복한 미래가 보였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03 핏빛냉기 또 다시 얼어붙는 세상이 로운을 덮쳐온다.
04 전쟁의 향방 아웬의 고통은 더더욱 심해지고
05 위고 분대 잔혹한 전쟁은 아이들을 전쟁터로 내몬다.
06 가시나무 얼어붙은 숲, 가득찬 것은 오직 가시나무 뿐.
07 흩어진 전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뭉쳐야 한다.
08 포위 살고자 한 최후의 선택이 모든 것을 뒤바꾼다.
09 위기로부터 그 보잘 것 없는 수식어가, 로운을 곤란하게 만든다.
10 하늘베기 복수를 위한 전쟁인가? 전쟁을 위한 복수인가?
11 전쟁의 비극 벽 뒤에 숨었던 자들이, 이제는 스스로를 군인으로 자처한다.
12 학살자 아르크와 로운의 대립, 입장은 극명하기만 하고..
13 의문의 죽음 난데없는 다로시의 죽음에 모두가 웅성거린다.
14 종전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 그런 줄만 알았다.
15 어제의 전우 어제의 전우, 그리고 오늘의 적
16 의심 의심한다. 자신도, 가족도, 모든 걸 뒤로한 채.
17 결연한 의지로 진실에 가까워진 사이, 적도 코앞으로 다가온다.
18 진실을 마주하라 로운은 모든 진실에 근접한다.
19 악연 진실의 대가란 모든 것을 바치는 것.
20 모든 것과의 이별 로운은 모든 것을 버린다. 연인도, 가족도, 친구도, 그리고 자신도.
000 안내문

해당 문서는 윈테라의 줄거리를 압축하여 정리한 내용이며, 상세한 묘사가 생략되고 대략적인 흐름만 표현되는 트리트먼트 문서입니다. PC로 열람하실 경우 700px에 고정되며 모바일 열람도 가능합니다. 이야기에 모순이 있거나 의문이 있다면 사용자:기여자의 담벼락을 이용해주세요. 어려운 문서를 읽어주시는 귀하의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001 모든 것의 시작

윈테라는 우리 모두를 지켜줄 것입니다.[1][2]
기도하는 사람들

이야기는 윈테라에서 시작된다. 바깥세상이 대전쟁에 뒤덮인 시절, 건설자 윈테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이 머나먼 변방에서 요새도시를 건설했다. 그들은 그 안에서 평화를 강구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자 갈등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80년 만에 윈테라 안에서 두 차례의 내전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추위와 배고픔 속에 죽어간다. 반 세기만에 인구는 2/3 가량으로 줄어들었으며, 추운 겨울 부모 잃은 고아들이 차고 넘치게 된다. 지옥과도 같은 시간. 힘없는 아이들 사이에는 로운이란 어린아이도 있었다. 로운의 의식이 희미해지던 찰나, 누군가가 다가와 구해주고, 그 구원이 로운의 인생과 도시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노인은 거지에 불과한 로운을 아무런 차별없이 돌보았고, 로운 역시 이유모를 배려에 의해 추운 겨울을 살아남게 된다. 그는 죄없는 아이들을 안타깝게 여겨 구빈원을 운영하며 고아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로운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총명함이 있음을 알아보았고, 고심 끝에 집안에 들이게 된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알아서 말하고 글을 쓴 애일세. 저 아이는 무언가 달라.
위고가 굳이 고아를 집안에 들이는 것에 대해 묻자 대답한 헤이랑그

헤이랑그는 가족은 물론 도시에서도 존경받는 위인이었지만, 그럼에도 가족들은 그 선택을 공감하지 못했다. 로운은 예상과 달리 가족들에게 전혀 환영받지 못했고, 막상 바쁜 헤이랑그는 자리를 비우기 쉽상이었다. 로운의 재능따위 헤이랑그의 가족들에겐 아무런 장점도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나 손자들은 로운에게 냄새가 난다며 노골적으로 괴롭혔고, 내쫓기 위해서 집요하게 시도한다. 감정표현이 서툴렀던 로운은 아무리 괴롭혀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헤이랑그의 손자들 역시 멈추지 않았다. 고작 9살에 불과했던 로운에게 저항할 수 있는 방법따위 없었다.

더러워.. 너같은게 왜 우리집에 있어야 해?
특히나 장손은 더더욱 로운을 혐오했다.

결국 어느 겨울, 로운은 강제로 차가운 종탑에 갇히고 만다. 극심한 추위에 두려움에 빠진 로운은 자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서럽게 울지만 형제들은 누구하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결국 이를 보다못한 여자아이 아웬은 절대 구해주지 말라던 오빠들의 말을 무시하고 로운을 돕기로 한다. 추위에 배고픔에 덜덜 떨던 로운은, 자신을 구하러 온 금발의 여자아이를 만난다. 그 순간 로운은 아웬에게 단순한 고마움을 넘어 그 이상의 복잡한 감정을 갖기 시작한다.


002 햇살
울지마.. 괜찮아? 마니 추워?[3]
덜덜 떠는 로운의 손을 잡아주며

비록 로운은 한참 어렸지만, 자신을 살려준 아웬을 평생 따르겠다며 마음 속으로 다짐한다. 덜덜 떠는 로운을 바라보는 아웬. 로운의 손을 꼭 잡아서 녹여주곤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고 나와 오빠들과 대적한다. 13살의 장손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웬에게 말싸움에서 밀리고, 안 그래도 너무 심하지 않냐며 동요하던 동생들 탓에 상황도 흐지부지해지고 만다. 이후 아웬이 적극적으로 로운을 보호하면서 괴롭힘이 차츰 줄어들고 마침내 바쁜 일정을 끝낸 헤이랑그가 본가로 돌아오게 된다.

오랜만에 돌아온 헤이랑그는 어째서인지 로운 옆에 꼭 붙어있는 손녀를 보며 웃고,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듣기로 결정한다.

할아버지는 그저 로운과 대화하고 싶은거란다. 자리를 비켜주겠니?

헤이랑그는 로운과의 대화를 통해 손자들이 로운을 괴롭혔다는 걸 짐작했지만, 로운의 감정은 분노와는 사뭇 거리가 있는 말이었다. 로운은 처음으로 또박또박 그리고 아주 길게 말하기 시작했고, 헤이랑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그런 말을 하는 로운에게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된다.

제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걸 저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니까. 이 집안의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도 아닌 그냥 그런 존재니까.. 그런데, 아웬은 오히려 제가 잘못했다는 걸 증명시켜줬어요. 제가 가치있는 사람이래요. 그 떳떳한 말이, 저를 더 바보로 만들었어요. 전 스스로를 바보처럼 여긴거에요. 그게 제 잘못이에요. 그러니까 이젠 그런 실수 하지 않을거에요. 남한테 괴롭힘을 당해도.. 잘못된 일을 겪어도, 바보처럼 가만히 있지 않을거에요.

헤이랑그는 로운과 대화 이후 마음 속 결정을 내리게 된다.

로운은 심지가 있는 아이야. 더 이상 유보할 필요가 없어. 내 아이로 들이겠네.
집안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입양을 결정하는 헤이랑그.

마침내 로운은 정식으로 입양되며, 무려 존경받는 마법사인 헤이랑그에게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시기질투하던 형제들보다 훨씬 더 큰 재능을 보인다. 그야말로 타고난 재능이었다.[4] 그렇게 성장한 로운은 가족의 신뢰와 아웬, 그리고 자신의 능력까지 모든 것이 따스한 햇살과도 같았다. 마침내 로운은 아웬과 함께 이룰 꿈을 정하기에 이른다.[5]

하지만..


003 핏빛냉기
이방인?
60대의 헤이랑그에게도 어색한 표현이었다.

헤이랑그는 이방인들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듣는다. 이제야 내전을 극복하고 도시가 안정되나 싶더니, 난데없이 이방인이 당도한 것이다. 무려 80년만에 처음으로 나타난 존재였고, 그 수도 수만명에 이르는 규모였다. 도시 앞에서 자신들의 겨울나기를 도와달라며 구걸하는 이들. 헤이랑그를 비롯한 도시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무시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그들도 맞이해주지 않자 거대한 벽을 뒤로 한 채 등을 돌리고 떠나게 된다. 원래라면 그렇게 끝났어야 했다.

악마.. 악마가 나타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발과 비명. 빠르게 깨어난 로운은 아웬을 깨우고 다른 가족들을 찾아나선다. 급박한 상황 속, 이미 정체모를 이들이 집안에 나타난 상황. 로운은 빠져나가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가족들은 알수없는 이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부모님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목격한 아웬은 충격을 받아 기절하고, 그로부터 한참 후 헤이랑그가 두 사람을 구하는데 성공하지만 모든 일상은 무너진 후였다. 정신을 차린 아웬은 일가족이 살해당한 진실을 듣고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차가운 눈이 내리는 그날 저녁, 도시는 불타올랐고 도시는 사상 초유의 전쟁을 목도하게 된다.

싸워야합니다.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죽을겁니다.
하문을 비롯한 마법사들은 도시의 지도자들에게 전쟁을 요구했다.

도시는 급하게 전쟁을 선포하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인력을 동원한다. 헤이랑그는 손녀와 로운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려고 하지만 아웬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결정했다.

그럼.. 그럼 어떻게 해? 가만히 있어? 바보같이? 난.. 난 참을 수가 없어..

자신도 적들과 싸우고 싶다며 나선 아웬은 로운과 할아버지의 만류에도 마음을 굽히지 않는다. 이를 너무 악물어 입에서 피가나는 손녀의 모습을 본 헤이랑그 역시 온몸을 떤다. 결국 로운이 헤이랑그에게 아웬을 어떤 상황에서든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두 사람은 전쟁이 벌어지는 전선으로 향한다. 헤이랑그는 자신과 가까운 선임 마법사 노베른위고에게 두 어린아이를 맡긴다. 불과 열네살이었다.


004 전쟁의 향방
이것은 선인과 악인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6]

아무리 지원했다고 한들, 아이가 어른 대신 전쟁을 할 수는 없는 법. 우선은 후방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로운과 아웬.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에 지원한 친구들[7]을 만난다. 지난날 아웬이 살아왔던 환경과는 본질적으로 달랐지만 아웬과 로운은 서로 의지하며 견뎌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부상자들. 상해를 넘어 종종 나오는 전사자들을 보며 아웬의 심리는 더더욱 창백해진다. 이젠 로운조차도 돌아가자는 말을 반복할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
로운은 매일 밤 덜덜떠는 아웬을 밤새 달랜다.

그러던 중, 늦은 야밤 갑작스레 이방인들이 기습을 하게되고, 환자들과 아이들이 있는 장소까지 적이 도달한다. 적은 망설임없이 환자들을 살해하려 들고, 결국 망설이던 로운 대신 아웬이 무기를 집어들고 적을 처리한다. 아웬이 처음으로 두 손에 피를 묻힌 순간이었다.

곧바로 나타난 노베른이 남은 적들을 물리치면서 상황은 나아지지만, 당연히도 아웬의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손을 부르르 떠는 아웬을 로운이 붙잡아주고, 위로도 격려도 아무말도 할 수 없이 그저 안아준다. 참혹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아웬을 두려운 눈초리로 처다보지만 한스는 아웬의 심정을 이해해주며 가까워진다. 전쟁이란 참혹한 것이었다. 한스는 로운에게 이 시기만 지나면 분명 나아질거라며 믿어보자고 말하고, 로운도 반신반의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바램과는 달리 전쟁은 더욱 악화되었고, 전쟁의 향방은 아이들마저 전쟁으로 내몰기 시작한다.


005 위고 분대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아이들을 내몰 수가 있습니까?
노베른이 한 말, 하문의 판단을 지적하며

적들은 너무 많았고 산발적인 기습 탓에 전선은 제대로 유지되기 어려웠다. 따라서 대장인 하문은 날렵하고 능력이 좋은 아이들을 차출하여 수색대를 조직할 것을 명령한다. 말을 들은 노베른은 아이들을 소비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항명했지만, 결국 다수결로 인해 명령은 시행된다. 상황을 지켜보던 위고는 노베른을 안심시키고 자신이 수색대의 대장을 자처한다.[8] 곧 위고는 아이들 중에서도 정말로 생존력이 높아보이는 아이들 위주로 선별했고, 군인들은 그 아이들을 대장의 이름을 따 '위고 분대'라고 부른다.

위고는 솔직하게 아이들에게 이 일의 위험을 경고한다. 그러니 두렵다면 빠져도 된다고 제안하지만, 결국 11명의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남는다.[9][10] 등 합 15인이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마법사의 역량으로 은밀하게 적진에 숨어드는 법, 기록법, 생존법 따위를 약식으로 배우며 위고 분대 내부에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짧은 훈련을 받는다.[11]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마음을 풀기 시작한 아이들은 더 가까워지고, 주로 성적이 가장 좋았던 로운을 대장 정도로 생각한다.

로운은 주로 아웬의 곁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대화할 겨를이 없었지만, 아르크와 대화할 기회를 얻는다. 로운은 아르크와의 대화에서 아르크가 아웬 만큼이나 상처를 갖고 있다고 느낀다. 한편 한스는 한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12] 서서히 아웬을 좋아하기 시작한다.


006 가시나무
언제든 신중하게 움직이고,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절대 교전하지 말고 피해라
위고 분대의 수칙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익숙한 작전을 시작한 위고 분대. 고요한 저녁. 폐허가 된 마을 거리를 누비며 적들의 동선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2-3층의 낡은 목조건물들이 즐비해 시야가 좁은 장소였다. 당장 직면한 위험은 없는 상태. 위고를 중심으로 서서히 이동하던 그들은 적막을 깨는 정체불명의 소리에 얼어붙는다. 로운은 위고에게 자신이 살펴보겠다고 말하고, 재빠른 몸동작으로 건물을 타고 올라 주변을 살핀다. 걱정하던 아웬도 결국 로운을 따라가고, 두 사람은 도시 주변을 지나 빠르게 이동하는 이방인 무리의 이동을 마주친다. 얘기를 들은 위고는 위험을 직감한다.

그때 마찬가지로 주변을 살펴보던 이방인들이 위고 분대를 마주치고, 순간 전투가 시작된다. 다행히도 적도 마찬가지로 소수, 서로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하고 위고는 아이들을 싸우지 않도록 대피시킨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숨어있던 아웬이 적과 마주치고, 위기의 순간 그녀를 구한 건 늘 곁에 있던 로운이 아니라 한스였다.[13] 하지만 한스는 치명상을 입고, 서서히 의식이 흐려지다 그곳에서 죽고 만다. 한트는 큰 충격에 빠지고 아웬을 탓하지만, 위고는 급박한 상황 속 탈출을 위해 강제로 상황을 종료시키고 만다. 적의 추격을 피해 가시나무 숲으로 숨어든 위고 분대.

상처를 받은 것은 분대원을 잃었다는 위고는 물론, 결국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로운.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발렌까지 모두 충격과 공포에 젖어있을 때 즈음. 숲에서 아웬을 가격하려는 한트를 로운이 막아선다. 그 장면을 뒤에서 보며 비웃는 아르크, 시빌렌더와 발렌이 한트를 막아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들은 적들의 동태를 보고하기 위해 본진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한트는 가족을 놓고온 방향을 한없이 바라본다.


007 

그로부터 일주일 후. 한참이나 우울해보이는 한트에게 아웬이 사과하러 찾아온다. 그 뒤를 지키고있는 로운. 한트는 울먹이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둘 사이의 어두운 기류가 흐르고, 한트는 짧게나마 한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분명 오지랖 넓은 성격상 마지막까지 후회하지 않았을거라며 오히려 아웬을 독려하는 듯한 말을 남긴다.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은 아웬은 진정된 마음으로 천막을 벗어나는데, 그 앞을 지나던 아르크는 아웬에게 말한다.

아르크
너 때문에 죽은게 맞아
아르크는 아웬의 코앞에 서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아웬은 순간 멈칫했으나, 금방 아르크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건 그저 비난에 불과한 것이라고. 아르크의 비난에 꺾이기엔 아웬 역시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아웬
그래. 나 때문에 죽었어. 나도 알아.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싶은건데?
아르크
최소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라는거지. 그저 사과하면 끝인 줄 알테니까. 네가 주변에 주는 피해가 돌고 돌아 언젠가 나한테까지 올 수 있으니까. 지금 말해두는 거야. 똑바로 다시 이해해. 한스가 죽은 건 네 잘못이야
격양된 어조 속 아웬과 아르크의 간격이 좁혀지고, 울분 가득한 목소리는 더더욱 커졌다. 보다못한 로운은 결국 아르크를 직접 가로막는다.
로운
이제 그만해
아르크
너도 똑같아. 로운
로운
이렇게 해도.. 아무것도 안 남아.
아르크
씨발! 당연한 말 좀 하지마. 여기서 남는 게 있는 사람이 어딨냐고..
아웬
그만! 나도.. 나도 알겠어. 알겠으니까 그만해. 책임질 수 없는 거 알아. 네 친구가 죽은 게 내 잘못인거 알아.. 그니까.. 그만해. 네 화풀이 알겠으니까.. 됐어. 이제 가자 로운
아르크
...
아웬은 애써 아르크를 무시하고 그대로 앞으로 걸어간다. 아르크를 노려보던 로운도 별 다른 말은 남기지 않고 아웬을 뒤따라갔다. 그 자리에 홀로 서있는 아르크는 여전히 온 몸에 울분이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말을 내뱉고도 스스로가 우스웠다. 친구가 죽었다고 화풀이한 것이라고. 아웬이 그렇게 생각했고, 아르크 자신도 그 진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한스
아웬이랑 꼭 친해질거야
아르크
...
너때문에 죽은 게 맞아. (중략) 그리고 로운, 너도 똑같아.

아웬은 갑작스러운 아르크의 말에 두 눈이 흔들리지만, 곧 말을 맞받아친다. 그러나 아르크도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아웬과 로운 두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결국 주변만 피해를 본다는 식으로 말한다. 분노한 로운은 입조심하라며 아르크의 앞길을 막아서지만, 아르크는 미동조차 없다. 그는 어리다기에는 지나치게 감정이 결여되어 있는 인간이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아웬이 로운을 말리고, 두 사람은 아르크를 피해 돌아간다. 아르크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아웬. 로운도 탐탁치 않기는 했지만, 훈련 때 보았던 아르크를 기억하며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말한다. 아웬은 그 말에 한숨을 쉬고, 다시 시간은 흘러간다.

별다른 충원 없이 다시 작전을 준비하는 위고 분대. 위고 역시도 한스의 죽음 이후 담담하게 눌러오던 감정[14]이 복잡해진다. 마침 분대를 방문한 노베른은 전선의 상황이 나아지면 이 어려운 임무도 끝날테니 조금만 참으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하는데, 이야기를 듣던 아르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아니잖아. 우리가 다 죽을 때까지 이런 일 해야하는 거잖아요. 틀려?

얼어붙은 분위기. 함께 있던 그 어떤 사람도 그 말에 입을 열지 못한다. 아이들은 그 말에 동요되고, 보다못한 시빌렌더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 말에 동의한다. 심상치않은 분위기에 어른인 노베른과 위고도 별 다른 말을 못하고 있던 찰나. 그 앞에 앉아있던 아웬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르크의 두 눈 앞에 똑바로 서서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아르크는 처음으로 말문이 막힌다.

그럼 나가. 무서우면 도망가. 왜 그런 말을 하는건데? 네가 겁먹었으면 우리도 다 겁먹어야해? 대답해. 네 말대로 우리가 죽을 수도 있겠지. 억울할 수도 있어. 그래도 여기까지 오기로 결정한 건 너 아니야? (중략) 그래. 운. 운이야. 우리가 살아있는 건 고작 운이야. 내가 가족이 다 죽고 나랑 로운만 살아남은 것도 운이야. 그래서 난 그 저주때문에 여기 있는거야. 그러니까 가려면 혼자 가라고
야. 아웬. 네가 나보다 먼저 죽을 일은 없어. 죽으면 늘 앞에 있는 내가 먼저 죽겠지. 도망간다고? 도망 갈 수도 없어. 우리가 직접 왔다고? 아니야. 이 모든 상황이 우리를 여기로 내몰았을 뿐이고. 네가 직접 자진해서 왔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이야. 네가 그렇게 용기있었다면 한스가 죽었을까?

충격적인 발언에 아웬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직후 로운이 아웬을 앉힌다.

그만해.[15]

이에 아예 물리적으로 로운을 제압하려드는 아르크를, 오히려 로운이 제압해버리고, 이를 위고가 말리면서 상황이 종료된다. 가라앉은 분위기 속, 노베른은 쓴웃음과 함께 로운의 어깨를 치고 나가고 위고 분대는 다시 작전을 위해 자리를 옮긴다. 다시 폐허를 딛는 위고 분대. 늘 그랬으나 아르크와 아웬 사이 탓에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는다. 로운은 아웬이 속앓이를 할까 말을 붙여보지만 잘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나저러나 작전은 진행되고, 불안한 분위기 속 아르크와 로운을 팀으로 묶어 임무를 지시한다. 원래 늘 과묵하던 로운은, 아르크의 공허한 눈동자를 보며 아르크의 과거를 묻지만 아르크는 오히려 로운에게 되묻는다. 아웬과 로운의 관계는 무엇인가?

인간을 맹신하지마.

아르크는 오히려 로운에게 너무 인간을 믿지 말라며 지적하지만, 그럼에도 로운은 자신에게는 인생의 전부가 아웬이라고 대답한다. 속터지듯 표정 구기는 아르크. 로운은 네가 어떤 과거가 있든. 인간을 부정하려고 해봤자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두 사람은 계속 토론을 이어가지만 당연히 답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 말이 아르크에게는 비수가 됐다.

어린 동생들도 너를 그렇게 생각할까? 아니, 그건 네 판단일 뿐이고, 자만이야.


008 포위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

주변을 살피는 위고 분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위화감을 느낀 위고는 약속 장소에 몇몇 조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함정이었다. 기습을 당한 위고는 곧바로 앞뒤로 화살을 맞으며 치명상을 입고, 살아남은 분대원들은 위고를 엎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대화 중 공격을 당한 아르크로운 덕분에 살아남고, 바로 위고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폐허들이 이어진 장소를 벗어나면 허허벌판인 곳. 내부는 미로였고 외부는 트여있는 장소. 즉 위고 분대는 포위당한 것이었다. 로운은 이방인들이 아예 위고 분대를 잡기 위해서 작전을 세워둔 것이라 판단한다.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적들이 탄 말을 가로채는 것. 아르크와 로운은 곧바로 움직인다.

기습에서 살아남은 아웬고산의 부상을 치료한 후, 인기척을 느끼고는 숨을 죽인다. 가까워지는 발걸음.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상대는 바로 시빌렌더였다. 그렇게 각자 모여든 아이들은 이방인들이 건물을 마구 누비며 자신들을 찾고있다는 것. 로운은 포위를 풀기 위해서는 적에게 혼선을 주어야 한다고 확신했고, 자신이 나서서 말을 탈취해 시선을 끌겠다고 제안한다. 한트는 너무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했지만 아르크는 오히려 자신도 함께 하겠다고 나선다.

혼자하면 혼자 도망간다고 생각할 뿐이야. 숫자가 있어야 쫓아올 생각을 하겠지.
아르크의 말

결정한 두 사람은 오히려 소음을 내며 적들을 유도하고, 말을 탈취해 마을 주변을 겉돌기 시작한다. 많은 적들이 로운을 추격하기 시작하고 숨어있던 위고 분대는 한트가 하나 둘 분대원을 파악하여 마을에서 탈출을 감행한다. 아웬은 한트에게 로운의 행방을 묻지만, 로운은 이미 가시나무 숲에서 적들에게 쫓기고 있다. 결국 공격을 받아 아르크의 말이 고꾸라지고 바닥에 엎어지면서, 로운과 아르크는 포위당한다. 아르크는 이런 일을 지원한 자신이 웃겼는지 허탈하게 웃고, 점차 두 사람은 궁지에 몰리며 아르크는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는데..

아르크가 베이기 직전, 로운은 고민 끝에 자신이 사용하지 않던 마법[16]을 처음으로 사용하고, 엎드려있는 아르크를 제외한 로운의 주변이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겨나간다. 수많은 인간들과 나무들이 해체되어 전경을 메우고, 아르크는 그 전경만으로도 구역질을 낸다. 이후 정신을 차린 아르크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로운을 엎고, 둘은 그렇게 아군이 있는 기지까지 돌아가게 된다.


009 위기로부터
이제 네가 맡아라. 네겐 자격이 있어.

그로부터 1년. 다시 찾아온 혹한의 겨울. 전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위고 분대는 죽음과 부상이 반복[17]되며 인원은 점점 재편성되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작전 중 죽을 고비를 넘긴 위고는 자신을 구한 로운과 아웬을 보고는 자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확신하고, 분대장의 자리에서 내려온다. 그 공석에는 로운이 맡고 대부분 별다른 저항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시빌렌더는 왜 아웬이나 아르크가 아니라 로운이냐고 물었고, 위고는 로운만이 어떤 상황에서든 가장 침착하다는 말을 남긴다. 위고는 로운에게 자신이 사용하던 장갑을 건내주고 자리를 뜬다.

잠깐, 잠깐 대화할 수 있어?

그날 저녁. 아웬과 대화하던 로운은 아르크가 자신을 찾아오자 방에서 나와 단 둘이 대화한다. 아르크는 조심스레 1년 전 자신이 보았던 마법에 대해 묻는다. 로운은 고민하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털어놓는다. 그것은 원치 않는 저주와도 같았다. 로운은 자신에게 섬세한 능력이 없는 대신, 폭발적인 힘을 가졌다는 기질[18]에 대해 말한다. 그 의미는 이 힘이 너무나도 위험하다는 것. 자신이 원하지 않을만큼 대상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르크는 최대한 힘을 숨기라고 조언하고, 혹여나 정말 그런 상황이 있을 때만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문득 로운은 아르크가 자신에 대한 태도가 너무나도 변한 이유가 궁금하다며 묻지만 아르크는 그저 웃어넘긴다.[19]

아웬로운아르크와 친하다는 사실 자체도 좋지 않았지만, 그저 로운에게 너무 사람을 믿지 말라고만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을 이용하려 든다는 것이다. 이미 몇 차례 생사를 넘나든 싸움에서 아르크와 함께 있던 로운은 충분히 아르크를 신뢰했지만, 아웬에게 장난을 치듯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너도 날 편히 사용해. 기꺼이 네 쓸모가 되줄게.[20]

그 말에 로운을 꼭 껴안은 아웬은 로운에게 제발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말하고, 로운은 당연하다고 답한다.

아침이 되어 정비를 하는 위고 분대[21] 비등비등해진 상황 속에서, 이제 전쟁의 끝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한 로운은 아군이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적들의 약점을 찾기로 결정하고 작전을 준비한다. 이제는 모두가 하나하나 능력을 갖춘 위고 분대는, 더 이상의 큰 희생은 없으리라 확신했고, 스물다섯명은 전쟁터로 향하게 된다.


010 하늘베기
죽음이 다가오는구나.

이른 새벽, 시야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큰 분지. 그곳에 누군가가 뛰어다닌다. 화살을 맞아 누군가 쓰러지고, 로운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로운은 2시간 전을 회상한다. 작전을 진행중이던 위고 분대는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의 적과 마주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싸움에 동요한 분대는 희생이 점차 커져가고, 아웬 역시도 팔에 큰 상처를 입는다. 살아남은 위고 분대는 숲에서 내려와 분지에 도착하고 적들의 추격을 피해 도망친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적.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숫자의 적이 시야를 덮을 만큼 밀려들어온다.

모두가 망연자실하는 상황 속, 모든 게 끝났다고 말하는 시빌렌더와 멍하니 적을 바라보는 한트. 강력한 의지를 보이던 아웬조차도 끝이라고 생각하며 로운을 안고 토닥여준다. 그러나 아르크만은 다르다. 아르크는 로운의 옆에 서서 말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가 온거야.[22]
나도 알아[23]

로운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힘을 사용하기[24]로 마음먹는다. 곧 로운은 마법의 여파로 입과 코, 귀에서 피가 흐르고 로운의 바깥 방향 방향으로 거친 바람이 흐른다. 아르크는 위고 분대 전원을 바닥에 바짝 엎드리게 만들었지만,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아웬은 아르크를 쳐버리고는 로운의 곁으로 달려간다. 아웬은 대체 무슨 생각이냐며 말리지만, 로운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마법을 계속한다. 곧 모두의 귀에서 피가 터질만큼의 굉음과 광원. 하늘의 구름이 갈라지는 마법이 시전된다.

세상이 하얀 빛에 잠식되고, 로운은 정신을 잃는다.


011 전쟁의 비극
깨어났나? 자네가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네.
하문의 말, 로운의 주변에는 하문을 포함하여 군의 핵심 인사들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로운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흘이 지나있었다. 깨어난 로운이 주변을 살펴보자, 아웬을 포함한 친구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걱정하던 로운에게 곧 하문이 설명해준다. 동료들은 모두 바깥에 있다고 설명해준다. 하문은 냅다 로운에게 전쟁의 진정한 영웅이라며 추켜세우지만 로운은 전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곧 로운은 자신이 마법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의 적들을 물리쳤고, 그 사실이 도시에 대대적으로 홍보되며 엄청난 영웅이 되었다는 전말을 듣는다. 하지만 로운은 그러거나 말거나 마법에 휩쓸렸을 아웬을 걱정하며 침대에서 기어서 내려오고는, 아웬을 찾아다닌다.

하문이 몸에 손을 대자, 로운은 어눌한 발음으로 아웬을 부르짖고, 그의 눈치를 보던 사람들은 자리를 비운다. 곧 부름을 받는 노베른과 위고가 나타나 로운을 일으켜주고, 옆에 쓰러져있는 아웬에게 데려다준다. 아웬 역시도 그 마법의 여파로 병환에 누워있었던 것.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두려워하는 로운. 하지만 곧 깨어난 아웬이 로운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은 멀쩡하다고 말한다.

왜.. 죽기라도 할까봐? 나 그렇게 약하지 않거든.
로운에게 베시시 웃음을 보이며

그제야 안심한 로운은, 자신이 잠들었던 동안의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마지막 싸움으로 인해 전황이 완전히 뒤집혔고, 도시로부터 대대적인 지원들이 들어오면서 전쟁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웬과 로운은 함께 주변을 걸으며 한껏 나아진 분위기를 살펴본다. 로운과 아웬은 성치 않은 몸으로 산책하면서도 서로 웃음 가득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아웬이 이 전쟁을 시작한 이유, 자신의 분노와 괴로움. 전쟁의 잔인함. 여전히 슬프고 고통스럽고, 또한 피를 묻힌 자신이 죄책감이 들었기에 이젠 모든 걸 끝내고 싶다고 말한다. 로운은 아웬에게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며, 두 사람은 함께 전쟁 이후의 미래를 계획하기 시작한다.

(어떤 일을 하고싶냐는 말에)난, 조부님처럼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 학교. 큰 학교를.
로운의 대답

아웬은 그 말에 눈물을 흘리고, 빨리 할아버지를 보고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동안 침묵하는 두 사람. 아웬은 여태까지 직접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아웬은 로운의 손을 잡고, 자신과 결혼하는 것이 어떻냐고 묻고, 멍하게 바라보는 로운에게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선 함께 전쟁을 끝내고 학교를 만들자며 환하게 웃는다. 로운도 옅은 웃음을 보이며 동의하고 그렇게 다시 행복을 찾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도시 내부로부터 파견된 중앙마법사들은 포로로 잡혀있던 이방인들을 대학살하기 시작한다. 로운과 아웬은 물론, 전쟁터에서 오랜 시간을 누볐던 수많은 군인들도 하지 않았던 일을, 3년이라는 세월동안 도시만 지키던 작자들이 도시를 위한 일이라며 대학살을 벌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로운은 끔찍한 일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을 느꼈으나, 하문을 포함한 고위 마법사들은 이것이 모두 도시를 위한 일이라며 로운을 순응토록 만들었다.

마치 지난날 전쟁이 시작했던 이유가 떠오를 만큼, 그것은 잔인하고 혹독한 일이었다.


012 학살자
눈을 가려. 세상을 멀리해.
로운의 혼잣말

로운은 오랜 전쟁 속에서도 자신의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왔다. 특히 위고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처럼, 괴물이 되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중앙마법사들이 이방인들을 지속적으로 사형시키면서 로운은 괴로워진다. 하지만 로운을 제외한 대부분은 모두 응당한 대가라며 합리화했고, 발렌한트마저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전쟁동안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로운과 가까웠던 한스도, 위고와 같이 선생님이었던 고산도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넘겨도 되는건가. 고통스러운 마음 속, 아웬은 로운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견뎌내라. 견뎌내야 한다고.

로운은 그 누구보다 아웬에게 의지했으나, 이 일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아르크는 로운의 마음을 알아차리지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아웬은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아웬의 지위는 할아버지의 후광 아래에 번듯하게 성장했고, 중앙마법사들도 아웬에게 함부로하지 않는다. 그 대상은 로운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헤이랑그도 활력있는 숲을 지나 로운과 아웬을 만나 안아주고, 아웬은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을 할아버지에게 털어놓는다.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꿈, 로운과 함께 하고 싶은 미래. 헤이랑그도 마땅히 그것을 인정하였고, 로운은 헤이랑그로부터 직접 차기 도시를 이끌어갈 의원이 되라며 손을 꼭 맞잡는다. 그러나 로운은 자신의 손이 더럽고 추악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넌 벗어나지 못해. 그러니까 따라야 해.
아르크는 로운에게 그렇게 말한다.

아르크는 그런 로운에게 무엇도 하지 못하리라 말한다. 그것은 악담 따위가 아닌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아르크는 로운은 결코 아웬을 배반할 수 없으며, 따라서 로운은 그 현실에 차차 순응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로운은 아르크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말에 결국 순응키로 한다.

다로시는 어때?

그와 상관없이, 로운은 아르크가 중앙마법사인 다로시와 친한 사실을 언급한다. 아르크는 공공연하게 다로시와 가까이 지냈고, 서로 사귀는 사이라는 건 제법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아르크는 당연히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로운은 그 속내에 알 수 없는 씁쓸함이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


013 의문의 죽음
다로시..?

작은 축제가 있던 날. 늦은 저녁에 사라진 다로시가 돌아오지 않자 하문은 급한 마음에 대대적인 수색을 게시한다. 이때 다로시가 죽은 채 발견된다. 다로시를 발견한 아르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부짖고, 모두가 그 장면을 씁쓸하게 바라본다.[25] 하지만 로운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르크가 진심이 아니라는 걸. 다로시의 죽음은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이방인들의 패잔병이 벌인 일로 몰아갔고, 이것은 전쟁을 제대로 끝내려는 최후의 화약이 되었다. 이 사건을 빌미로 더욱 잔인해진 학살이 자행된다. 아웬은 다로시의 죽음이 의문투성이라며 아르크에게 묻고 따졌지만, 아르크는 결코 제대로 된 대답을 주지 않는다.

분명 전쟁터에서 아웬 다음으로 가까웠던 아르크의 냉담한 태도에 로운은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거냐고 묻지만, 아르크는 자신을 따르는 다른 전우들과 함께 자리를 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복잡한 심경 탓에 점차 무너지는 로운. 오히려 전쟁 말미에 로운의 괴로움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자신은 권력의 하수인에 불과한가? 로운은 무너질 것만 같은 감정이 들었으나 아웬을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긴다.

외면하자. 세상을 외면하자.


014 종전
도시의 기나긴 역사에서 가장 암울한 역사였으나 또한 가장 환히 빛나는 승리였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이방인들까지 모든 가시나무의 숲을 걷어내 잡았습니다. 위대한 도시의 아버지시여 보고 계십니까? 이제 도시는 다시 어두운 장막을 지나 새롭게 발돋움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기를,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전쟁이 끝난다. 공식적인 선언. 헤이랑그의 연설에 모두 눈물과 박수를 자아낸다. 단지 로운만이 퀭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럼에도 아웬은 로운의 손을 꼭 잡는다. 3년이란 세월동안 지낸 전선의 막사들이 정리되고, 로운과 아웬은 헤이랑그와 함께 마차를 타고 완전히 변한 시내를 마주한다. 그들이 보지 못한 시간동안 도시는 재건되고 어쩌면 과거보다 진보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아웬과 달리 로운은 왜 바깥에서 그토록 사람들이 죽어나간 동안, 도시는 이렇게도 멀쩡했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새롭게 마련된 집. 로운은 억지로라도 웃는다. 아웬은 이제 이곳에서 새롭게 살아가자며 로운을 다독인다. 적어도 로운은 모든 생각을 정리하고 단지 아웬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로운 역시도 "꿈"에 자신의 모든 걸 걸어보고자 한다. 로운은 적어도 더 이상의 싸움은 없으리라 믿었다. 이제 더 이상 전쟁은 없다. 그래.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독한 운명은 로운을 다시 밑바닥으로 끌고 간다.

원로들을 잡아라!

새벽. 잠도 제대로 들지 못한 로운은 도시의 지배자들인 원로회로부터 호출된다. 정체불명의 세력들이 원로회를 습격했다는 이야기다. 아웬은 차라리 자신도 같이 가겠다고 말하지만, 로운은 자신이면 충분하다며 서둘러 짐을 챙기고 그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그야말로 아수라장. 사방이 불타오르고, 일부 의원들은 사로잡혀 있었다. 로운은 자신이 불길을 들어가겠다며 가면을 쓰고, 그곳에서 적들과 마주한다. 그들은 바로..

왜? 도대체 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

로운과 3년이란 세월동안 함께 싸웠던 전우들이었다.[26] 로운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의심한다. 회관을 불태운 당사자들이 바로 자신의 동료들이다.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 도시에서 반란을 일으킨 셈이다. 로운을 따르는 중앙마법사들. 로운은 싸우기를 망설이지만 가면을 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동료들은 로운과 중앙마법사들을 공격한다. 로운은 적들을 심문해야 하니 죽이지 말라고 지시하고는 하나 둘 제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나타난 대상은 그 누구도 상대하지 못한다. 2층에서 뛰어내린 아르크는 로운과 함께온 중앙마법사들을 모두 살해하고, 로운에게까지 공격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로운이 손쉽게 제압당하지 않자,

너구나. 로운.

로운의 가면을 벗기는 아르크. 두 사람은 그곳에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본다.



015 어제의 전우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했지?
로운의 말
네가 올거라 예상했어. 속으론 오지 않길 바랬지만.
아르크의 말

서로를 경계하며 거리를 두고 원을 그리며 걷는 두 사람은 조금씩 대화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겉도는 주제. 아르크는 계속 자신이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로운은 발에 걸린 하문의 시체를 보며, 어쩔 수 없는 살인은 없다고 지적하지만, 아르크는 그건 자신 뿐만 아니라 로운도 해당한다고 말한다. 아르크는 계속 로운이 도망갔으면 하고 바라지만 로운 역시도 나갈 수 없다. 인질로 잡힌 사람 중 하나는 자신의 할아버지(헤이랑그)였으니. 누구도 물러설 수 없다. 이제 피할 수 없음을 느낀 두 사람은 격돌하기 시작한다.

로운
왜? 감투라도 쓰고싶었나? 그래서 그랬어?
로운이 아르크를 노려보는 표정과 언사는 마치 이방인을 볼 때 그것과 닮아있다. 아르크는 로운의 말이 어이가 없는 양, 비꼬는 말투로 대답한다.
아르크
넌 아무것도 모르는거야. 세상에 눈과 귀를 막고 살아가는거지. 왜? 평생 아웬만 쫓아다닐 테니까. 그게 네 삶의 전부잖아. 자기의지도 없이, 아웬한테 자아의탁하면서 말이야. 난 그런 네가 불쌍했었지. 그게 우리가 가까운 유일한 이유고..
로운
...
아르크
왜? 그럼 네가 정상일 줄 알았어? 대단한 인격자야 네가? 꿈 깨. 네가 혐오스러운 인간인 이유는 네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넘어서 아무것도 알기 원하지 않는다는 거야. 힘이 있으면서도 세상을 외면한다고. 이 비겁한 새끼야.
그 말을 하는 사이 로운은 아르크에게 파고든다. 순식간에 접근한 로운을 아르크의 공격을 능숙하게 받아치고, 감정에 동요된 로운에게 오히려 반격해 상태가 좋지 않던 로운의 오른팔에 상처를 입힌다. 곧이어 로운은 아르크에게서 물러나 몸을 부르르 떨며 아우성친다.
로운
내가.. 내가 뭘 모른다는 건데! 뭘 외면했는데? 내게.. 알려줄 수도 있는거잖아. 내가 씨발. 그만한 인간도 못 됐다고?
그러나 아르크의 대답은 단순했다.
아르크
알려주면? 알려주면 달라져? 아니. 넌 그럴 수가 없어. 애초에 넌 아웬에 죽고 살고, 원로회의 사람이니까.

계속 되는 싸움 속, 결국 아르크가 지치기 시작하고 로운은 회심의 일격으로 겨우 아르크를 제압한다. 하지만 아르크의 무기를 빼앗을 뿐 결코 죽이려고 들지는 않는다. 로운은 계속해서 자신이 모르는 게 묻냐고 윽박을 지르고, 아르크는 눈을 꼭 감고 말한다.

전쟁은.. 전쟁은 원로회가 벌인거야. 몇백 몇천명이 죽고 죽인 그 전쟁이, 원로회가 스스로 벌인 전쟁이라고. 이 씨발아..

로운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며 처음엔 부정하지만, 아르크라는 인간을 알기에 조금은 흔들린다. 그러나 역시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굳이 전쟁을 일으킬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역시 그렇지만, 고민 끝에 로운은 아르크를 일으키지만

아르크 이 개새끼!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괜찮아 로운?

중앙마법사가 된 시빌렌더가 나타나, 아르크를 뒤에서 찌르고 쓰러트린다. 지원군들이 도착한 것이다. 반란군 중 가장 강했을 아르크를 로운이 마킹한 틈을 타 시빌렌더가 우회하여 나머지를 처리한 것. 중앙마법사들은 이제 모든 게 해결됐다며 기뻐하지만 로운은 그들 사이로 떨떠름한 기분을 벗어낼 수 없다. 그렇게 결국 사로잡힌 12명의 동료들은 모두 사형[27]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로운의 오랜 전우였다.


016 의심
난 네 꿈 좋아. 네 꿈이 곧 내 꿈이니까. 이름.. 이름은 브레이튼 어때?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난다. 로운은 이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과거를 흔쾌히 잊고, 아웬 그리고 할아버지와 좋은 생활을 하며 도시가 재건되는 것을 지켜본다. 아웬은 새로운 학교를 짓기 위해서 많은 의견을 제시하고 소프랑, 다일이라는 유능한 교원들도 찾고 이야기를 나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로운은 밤이 되면 늘 집을 빠져나온다. 로운은 한시라도 잊은 적이 없다. 아르크의 이야기. 전쟁은 원로회가 벌인 것이다. 도시가 전쟁을 일으켰다.. 로운은 진실을 원했다. 하지만 이미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아웬에게 더 이상의 짐을 얹고싶지 않았다.

오늘도?
잠시 일을 보러 나간다는 말에 아웬이 묻는다.

외출을 준비하는 로운에게 아웬이 다시 묻는다. 그러자 아웬은 잠시 생각에 빠지다가, 말한다.

있잖아 로운. 정말, 만에하나 너무. 너무 힘든 일 있으면 꼭 알려줘. 알았지?
로운을 안아주며

그 말에 멋쩍은 웃음을 하는 로운. 그는 지난 6개월 간 과거의 자료를 열심히 찾았다. 그리고 점차 그 날의 자료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적이 처들어왔다면 어떻게 처들어왔는지, 방벽은 어떻게 뚫었는지,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자료도 없었다. 그저 어느날 한시에 갑자기 나타났고, 갑작스레 사람들을 죽이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쟁은 정말 원로회가 일으켰다고 확신하게 된다. 자료를 확인하고 나가는 로운. 그러나 그 뒤 시빌렌더가 그 모습을 지켜본다. 시빌렌더는 로운의 행적이 의심스럽다고 느끼고, 이를 원로회에 보고하고 있었다.

이제 로운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어쩌면 이 모든 일에 당사자일 수도 있는 자신의 조부. 헤이랑그와 대화하는 것이었다. 로운은 아웬과 인사를 나눈 후 다시 외출한다.

마지막까지 아웬은 환하게 인사해준다.

잘 다녀와. 사랑해. 안부도 전해드려줘.
은은한 웃음과 함께


017 결연한 의지로
이 문서에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열람하실 내용은 본작의 가장 중요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입니다. 열람에 동의할 경우에만 스크롤해 주십시오.

로운은 점차 진실과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남아있는 자들을 끌어들인다면, 사형당한 동료들처럼 그들도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다는 걸 로운 스스로 깨닫고 있다. 로운은 자신만큼은 진실을 알고 싶기에. 그 강렬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조부의 방에 도달한다. 당연히 시빌렌더를 통해서 이 사실을 보고받은 헤이랑그는, 담담하게 로운을 소파에 앉힌다. 로운은 헤이랑그가 자신을 키워준 사람인 만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물었다. 그리고 헤이랑그는 비로소 대답한다.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진실이란 그런 것이야. 우린 본래 무언가의 희생으로 살아가지. 그 본질을 받아들이면 돼.[28]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가족이잖아요. 왜..?
로운이 분노에 사로잡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그 대답은 로운이 원치않은 결정적인 대답이다. 헤이랑그의 말에 충격을 받은 로운은 그에게 분노를 일으켰고, 그렇다면 왜 헤이랑그의 가족들이 죽어야했느냐고 묻자 또 다른 진실을 말해준다.

그렇게.. 그렇게까지 진실이 알고 싶더냐? (중략) 그건.. 네 잘못이 아니란다 얘야.

아웬의 가족들이 살해당한 건, 아웬을 지키고자 했던 로운의 힘이었던 것[29]이다. 그말에 로운은 평생토록 믿은 우상에 대한 모순과,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분노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헤이랑그는 로운을 안아주며 자신을 이해하려 들고, 비록 이제야 진실을 말하지만 이렇게 됐다면 로운에게 아웬과 이곳을 떠나라고 말한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듯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헤이랑그는 자신이 맞이하겠다며 로운을 비밀통로로 보낸다.

로운은 그 말을 믿고 비밀통로를 빠져나가지만, 머지않아 할아버지의 저택에서 큰 폭발이 일렁이고야 만다.


018 진실을 마주하라

그로부터 3시간 전. 로운의 외출 이후 잠들지 않은 아웬. 웬지모르게 시빌렌더의 말이 계속 머리를 스친다. 로운의 이상한 행적에 대해서 말해주는 시빌렌더. 아웬은 그럴 리 없다고 되뇌였지만 혹여나 걱정되는 마음은 계속 일렁인다. 혹시나 원로회에 반감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괜히 사형당했던 동료들이 아른거린다. 결국 마음을 다잡은 아웬로운이 자신에게 감추는 비밀을 묻기로 결정한다. 어떤 일이든 자신은 로운을 믿어줄 수 있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곧 창밖 머나먼 곳에서 거대한 화마를 마주한다. 다시 시간이 지나, 아웬은 두 손과 온몸을 파르르 떨며 불길로 뒤덮인 할아버지의 저택을 바라보고 있다.

비밀통로에서 나온 로운은 당황함도 잠시, 자신을 쫓는 중앙마법사들을 피해 거리를 누빈다. 어떻게 안건지 사방에 깔려있는 추적자들. 로운에게는 아무런 장비도 없는 맨몸. 로운은 어쩔 수 없이 추격대의 물건을 빼앗아 그들을 상대한다. 이제 로운에게 남은 일은 아웬을 찾아 이곳을 떠나는 것. 그러나 이미 로운은 제정신은 아니다. 지난 몇달간 반복된 스트레스로 만신창이가 된 몸 탓에 힘을 조절하기 어렵다.

로운님! 따라오셔야 합니다.
자신을 둘러싸맨 중앙마법사들

로운을 두려워하며 손을 떠는 추격대. 로운 역시도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친숙했다. 중앙마법사들은 쓰러질듯 힘들게 서있는 로운의 상태를 보곤 일제히 달려들고, 놀란 로운은 그들에게 실수로 마법을 시전하고 만다.[30]마치 그 어느 과거처럼 산산조각 난 사람들. 온 몸이 피로 뒤덮인다. 그렇다. 그건 오래 전 자신이 받은 저주였다. 로운은 죄없는 자를 죽이는 자신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워진다. 형태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조각난 사람들을 보고 로운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스트레스로 무너진 자신이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조각조각 나버린 마법사들을 바라보며

그런 상태로 눈물을 흘리며 로운은 조부가 있던 저택으로 돌아간다. 지친 발걸음으로. 그리고 곧 그곳에 있던 시빌렌더에게 포박당한다. 로운은 이제 뭐가 뭔지 구분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로운 앞에 아웬이 나타난다.


019 악연
뭐야?

저항도 하지 않고 잡힌 로운은 아웬의 목소리가 들리자 서서히 고개를 든다. 둘은 서로를 응시하다가, 로운이 질문에도 아무런 대답을 않자 계속 물어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로운은 이 복잡한 상황을 설명할 방법도 없었고, 이미 혼란스러워 말을 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아웬은 결국 로운에게 아우성을 내며 왜 이렇게 된거냐고 몇 번이고 물었다. 자세히보니 아웬은 이미 불길에 그을린 옷과 두 팔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로운..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건데. 응?
내가 그런 게 아니야.

잔뜩 쉰 목소리로 말하는 로운은 나지막하게 자신이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한다.

피는 왜 잔뜩 뒤집어썼어? 왜? 왜.. 왜 그렇게 밤마다 나간건데? 뭘 그렇게 찾아다녔어? 할아버지는 왜 뵈러 간거야? 왜? 대답을.. 대답을 해!!!!! 무슨.. 무슨 말이라도.. 말이라도 제대로 해보라고 제발... 나는 왜.. 아무것도 몰라야 하는건데... 나한테.. 왜 제대로 아무런 설명도 안해주는거야...

바닥에 주저앉아 숨이 막혀 쓰러질듯 절규하는 아웬에게 로운은 아무런 말도 건낼 수가 없다. 아웬은 두 주먹을 움켜쥐고, 자신의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불길에 던진다. 그 순간 로운은 생각한다. 왜 일이 이렇게까지 된걸까. 어쩌면, 아르크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고민하지 않고 놈을 죽였더라면, 처음부터 순순히 원로회를 따르고 현실에 순응했다면, 아니. 최소한 아웬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함께 얘기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로운은 찰나의 시간 속 그 모든 기억을 돌아본다.

나 이제 알겠어.

울부짖던 아웬은 울음을 그치고 로운의 앞에 서서, 내려다보며 말한다. 그것은 처음으로 겪는 감정이었다. 그 감정은 경멸이자 혐오다.

네가 할아버지를 죽인거야.

그것은 깊은 악연의 시작이었다.


020 모든 것과의 이별
난.. 뭐지?
거울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되묻는다.

로운은 초췌한 모습[31]으로 어느 구석진 집에 도착한다.

피고의 죄질이 무거우나, 지난 날의 공로를 인정하여 사형을 면한다.

그는 그간의 공적으로 사형만은 제외받고 목숨을 보장받으며 풀려났다. 의미있는 말은 아니었다. 로운은 모든 걸 잃었다. 죽음을 원할만큼 너무나도 많은 것을. 사랑하는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짧지만 얻은 명예도 말미에는 자신조차 잃었다. 스스로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되묻던 로운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비관한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고. 나는 죽어야한다고. 좁고 낡은 집에서 비가 새는 천장 아래에서 멍하니 누워있는다. 몇 남지 않은 사람들은 이따금 원로들의 눈을 피해 로운을 찾아오지만, 로운은 그들마저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대로 죽을거야? 그게 끝이냐고.
속삭이듯 작게 말하는 한트
그럼.. 내가 왜 살아야해? (중략) 결국.. 모든 게 내 죄야. 내가.. 내가 이렇게 만든거야.

로운에겐 더 이상 삶의 의지가 없다. 천장에 밧줄을 메고 그 앞에 서서 모든 걸 끝내기 위해서 목을 멘다.

그러나 그 순간, 로운을 만나러 온 여자아이가 로운을 발견하고, 로운은 흐려져가는 의식 속에서 울먹이는 아이가 자신을 발견했다는 걸 깨닫는다. 아이는 두려움 속에서도 마법으로 불을 일으켜 밧줄을 태워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로운은 콜록거리며 눈을 뜬다.

아저씨.. 죽지마세요.. 제발..

그리고 자신을 깨우며 우는 여자아이를 보고 어린시절의 아웬을 떠올린다. 삶이란 무엇인가? 로운은 다시금 되묻는다. 로운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며 숨을 들이마시고, 자신을 살려준 아리사를 끌어안으며 평생 처음으로 울부짖는다.

비겁할 뿐이다.
도망가고 싶을 뿐이야.
내가 속죄하려면, 난 살아가야 한다.
내가 설령 죽어야 옳더라도, 나는 살 것이다.

그리곤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속삭이며 자신을 이렇게 만든 원로회의 모든 진실을 밝히고자 결심한다.

7부 보기
2부 보기
Copyright 2009. Aperne all rights reserved
[ 펼치기 · 접기 ]
줄거리 열람 윈테라 1부 · 윈테라 2부 · 윈테라 3부 · 윈테라 4부 · 윈테라 5부 · 윈테라 6부 · 윈테라 7부
등장인물 핵심인물 로운 · 아웬 · 아르크 · 워렛 · 아리사 · 레서스 · 슈펜 · 다일 · 라한
조연인물 한트 · 한스 · 헤이랑그 · 소프랑 · 나사린 · 단리 · 위고 · 노베른 · 시빌렌더 · 레이먼트 · 베히모스(더 보기)
설정 도시 안 윈테라 시 · 리히텐 · 아인트 · 슈타인 · 40인 의회 · 슈테헨롯 · 브레이튼 대학원 · 결사대
도시 밖 수도 레마니아 · 드레난 · 마법사 가문 · 프리테리나베 계획 · 트라시온의 손
마법 본문 · 마법의 원리 · 마법사의 기질 · 마법의 종류 · 마도구 · 트리마 · 라피렘 · 레니암 · 아키텔
그 외 타임라인 · 등장인물 관련자료 · 한 눈에 보기 · 행정체계 · 줄거리 목차 · 전체 열람
사건(플롯순서) 종언의 겨울 · 야만과의 전쟁 · 안케나의 귀신 · 대재앙 · 사이아 전투 · 레마니아 사건 · 천사들의 행진
정보 관련 틀:윈테라 · 타이틀 · 평가 · 사이드바 · 제작노트 · 좌측 · 우측 · · 윈테라/연습장1 · 윈테라/연습장2 · 윈테라/연습장3 · 윈테라/정리 · 윈테라/연습장4

4.72

  1. 아침 9시, 종이 울리고 명상을 하는 시간에 읊는 구절
  2. 훗날 의원들이 밥먹듯이 하는 관례표현이기도 하다.
  3. 어린 아이의 어눌한 발음
  4. 헤이랑그는 로운에게 잠재된 능력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 어린나이에 너무 많은 마법은 치명적일 수 있으므로 더 알려주지 아니했다.
  5. 이 시점에서 아웬과 로운은 어느정도 서로에 대한 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6. 전쟁 선포문
  7. 한트, 한스(쌍둥이), 발렌, 시빌렌더, 아르크
  8. 하문은 중요한 인력을 그렇게 낭비할 수는 없다고 말하다가, 그 말 자체로 아이들을 소비재로 인식한 스스로를 깨닫고는 위고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9. 당시 위고 분대원은 위고, 로운, 아웬, 한트, 한스, 시빌렌더, 발렌, 아르크, 고산
  10. 고산은 아이는 아니었으며 위고와 같이 위고 분대에 포함된 성인 전투원이었다.
  11. 그러나 그 과정을 보는 위고 스스로도 아이들을 종용한다는 자신에게 괴로움을 느끼지만, 방법이 없어 스스로에게 무력감을 느낀다.
  12. 아웬이 처음으로 자진해서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한트는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13. 로운은 그 순간 입구를 지키고 있었지만, 적은 다른 곳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14. 아이가 죽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15. 와중에 아르크는 '얼씨구'라고 대답한다.
  16. 작중 시점에서 이 이전까지 제대로 마법을 사용한다는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
  17.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윈테라/줄거리/2부에서 다뤄지며, 이 과정에서 발렌이 다쳤다는 언급이 나온다. 즉 발렌은 부상으로 인해 중간부터 부재한다.
  18. 때문에 강력한 마법을 시전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위험한 것은 물론, 대상에게 끔찍하고 비인륜적인 고통을 선사한다는 것.
  19. 2부에서 나오지만, 아르크는 자신의 힘이 저주받은 힘이라고 생각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로운에 그런 사연을 보고서는 오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크는 로운에게 무엇 하나 자신에 대한 건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20. 얼굴을 바짝 붙이고
  21. 로운은 여전히 자신들을 위고 분대라고 명시했다.
  22. 유일하게 아르크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23. 이후 로운은 숨을 들이마시고, 적들 앞으로 걸어간다.
  24.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그리고 적들에게 고통을 안긴다고 하더라도.
  25. 이때 다로시의 아버지였던 의원 베히모스는 그런 아르크의 모습을 보고 그의 생들들을 지원해주기로 한다. 그러한 내용이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26. 위고 분대원이 아닌, 작중 여러번 등장하는 일반 마법사들
  27. 그 중에는 이상하게 아르크의 시체는 없었다.
  28. 멸망 직전에 몰린 도시에서 나타난 이방인들은, 도시에게 있어 한 줄기 희망이었다. 그들과 싸움으로서 하나가 되고, 내부를 분열시키는 적을 처단하며, 마침내 그들을 잡아 노예로까지 이용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던 것이라고.
  29. 이방인들이 처들어온 직후 아웬은 쓰러졌지만, 살아남은 로운이 그들에게 저항하다 자신만의 마법을 시전하게 된다. 그러나 강력했던 힘 탓에 아웬을 제외한 일가족 전원이 적과 함께 죽어버린 것.
  30. 그 중에는 시빌렌더의 여동생이 있었다.
  31. 몸은 앙상해지고, 머리는 삭발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