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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절망
아르크는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부모님과 함께 환한 세상을 맞이했을 언젠가. 잠에서 깨어난 아르크는 다 부숴져가는 침대에서 일어난다. 술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고함을 지르는 아르크의 아버지. 아르크는 두려움에 가득 차 아버지에게 술을 가져다주지만 늦었다는 이유로 아르크를 때린다. 멀리서 아르크를 숨어서 지켜보는 두 동생. 아르크는 이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곳은 낡고 허름한 대저택이다. 언젠가 웅장했을 그곳은 이제 구석구석 거미지고 삭은 나무판들의 습한 냄새만이 가득차있다. 아르크와 마찬가지로 붉은 머리를 가진 아버지는, 쓰러진 아르크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다시 깨어났을 때 아르크의 주변은 두 동생이 곁을 지킨다. 라한은 형에게 많이 아프냐며 묻지만, 아르크는 라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말한다. 아르크는 고작 열 다섯살의 소년이었다. 아버지의 술중독과 난폭함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간다. 매일매일 자신들의 돈을 갚으라며 찾아오는 중앙마법사들. 이제 더 이상 당신은 의원이 아니라며 원로회로부터 온 편지. 아버지. 그 중년은 모든 것을 잃고 망연자실한 상태다. 그래서 답도 없이 아들을 패고 집안의 패물들을 팔며 삶을 유지하고 있다. 아르크는 때때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울던 아버지가 안쓰럽기도 했으나, 그런 날은 줄곧 폭력이 찾아오곤 한다. 그러한 날들의 반복 속에서, 아르크는 매순간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두 동생이 맞는 일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몇날며칠. 어느날 갑작스레 아버지가 지하로 들어가고, 지하에서 나오지 않자 하루동안 폭력없는 날이 이어진다. 라한은 어린 아리사를 꼭 안고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가 형을 안때린다며 기뻐한다. 정말 아버지가 마음을 고친 것일까. 아버지는 다정한 음성으로 삼남매를 지하로 부른다. 그건 아르크를 절망에 빠트리는 첫번째 단추였다.
저항하는 아이들을 강제로 속박하고는 알 수 없는 마법진 위로 올리는 아버지. 아르크는 대체 무슨 짓이냐며 소리치지만, 이미 그는 정신이 반즈음 나간 상태다. 아르크는 직관적으로 위험하다고 확신하고, 어릴 적 엄마가 알려준 마법으로 힘겹게나마 밧줄을 끊어낸다. 붉은 광원과 함께 웅웅거리는 주변. 아르크는 몰래 동생들의 밧줄을 끊고 아버지에게 저항한다. 아버지는 왜 자신의 뜻을 몰라주냐며 소리치고, 아르크도 서슴치않고 덤벼든다. 곧 쇠고랑을 든 아르크는 아버지의 다리를 찍어누르고, 두 동생은 울먹이며 마법진 주변을 서성인다. 마지막으로 아르크가 아버지의 상처를 한번 더 짓이기자, 그 순간 그 피가 마법진에 흐르며 마법이 발동되었고, 아버지는 그 순간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처럼 연기에 뒤덮인다. 고통에 울부짖는 그. 아르크 역시 마법에 영향을 받는다. 곧 아버지와 마도구의 힘이 어린 아르크의 몸으로 흘러들었고 아르크는 의도치않게 아버지를 죽이고 집안의 힘을 계승받은 것이다. 머지않아 누군가 현관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022 저주받은 자
방문한 사람들은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자, 억지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온다. 곧 동생들의 울음소리가 1층까지 퍼지고, 이상한 느낌을 받은 그들은 지하로 뛰어내려간다. 그곳엔 형태가 일그러진 시체와 피를 덮어 쓴 아르크가 있다. 멍하니 바라보는 두 사람은, 이상한 낌새에 사로잡혀 뒷걸음질치고 도망친다. 정상적인 상황은 분명히 아니다. 아르크는 뭔가에 이끌리듯 그 두 사람을 쫓고 후미에 있던 남자의 다리를 짓뭉게버린다. 늘 아버지에게 폭력적으로 맞던 아르크는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끼고, 한 사람이 도망치는 사이 다리가 부러진 남자를 봐주지 않고 무참하게 살해한다. 정신을 차린 건 그로부터 몇 분 후였다. 자신을 아버지를 보듯 처다보는 라한. 아르크는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그제서야 깨닫는다.
아르크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집을 뛰쳐나온다. 그리고 어디로든 뛰어간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앞에 펼쳐진 빈민과 고아들이 아르크를 바라본다. 아르크는 이제 자신이 저 고아들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저들보다 더 불쌍한 존재가 아니었는지 되뇌인다. 허탈하게 웃는 아르크는 모든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들 사이에 섞여들어 잠을 청한다.[1] 두 동생의 행방도, 자신의 처지도 모든 것을 잊자고. 하지만 정말 저주라도 씌인걸까. 세상은 아르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 날 저녁. 야만과의 전쟁의 시작점. 이방인의 습격이 시작된다. 이방인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보이는 족족 모든 사람들을 살해한다. 아르크와 함께 지내던 아이들도 살해당할 무렵. 아르크는 멍하니 그들을 본다. 몸에 이상한 그림과 탈을 덮어쓴 사람들. 아르크는 아무래도 좋았다. 화풀이를 하듯 맨손으로 이방인들을 살해하는 아르크는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그 뒷편, 도시를 지키던 수비대들이 아르크를 목격한다. 어린아이가 성인들을 살해하는 광경을. 이내 지쳐서 쓰러진 아르크를 노베른이라는 남자가 안아주고 쏟아졌던 이방인들이 다시 후퇴하면서 싸움이 끝나게 된다. 023 혹한의 전쟁터로
원로회는 아르크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받으며 충격을 받고, 바로 전쟁터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노베른은 그래봤자 어린아이라며 상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몰래 아르크를 치료병동으로 보내게 된다.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과묵한 아르크. 마찬가지로 병동에 있던 남자애 시빌렌더는 아르크보고 농아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아웬은 아르크에게 왜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느냐며 한 소리를 하지만 아르크는 역시나 과감하게 무시해버린다. 누구하나와도 제대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야 당연히 아르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밤이 되면 늘 깨어나는 아르크는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심하게 땀을 흘리는 아르크. 그때 옆자리에서 자던 한스는 아르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르크는 처음으로 신경끄라는 말을 내뱉는다.
024 타인이라는 것
025 혹자의 죽음
026 전쟁터
027 구출작전
028 오묘한 동맹
029 동경이란
030 안케나의 귀신
031 고립
032 생환자
033 하늘베기
아르크는 자신이 우스웠다. 많은 고통 속에서도 무엇하나 의지하지 않던 자신이, 스스로보다 대단하지도 않고 어쩌면 멍청한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있다. 모두가 죽음을 앞둔듯 눈을 감을 때, 오직 로운만이 바로서서 상황을 직시한다. 아르크는 그런 로운을 바라본다. 그렇다. 이건 죽음이 아니다. 우린 죽지 않을거라고 확신한다. 아르크는 로운에게 이제는 해야한다고 말한다. 설령 로운이 죽을 위기가 닥칠지언정. 로운은 해낼 것이라고.
지평의 사선을 메울 만큼 많은 적들이 오는 지금, 로운은 그들 앞으로 걸어간다. 아르크는 울먹이고 있는 동료들을 엎드리게 만들고, 자신도 여파에 대비하기 위해서 몸을 숙인다. 하지만 아웬은 로운이 뭘 하는거냐며 걱정하는 마음에 뛰어간다. 아르크는 잡아야했다. 하지만, 아르크의 마음 속 하나의 생각이 스친다.
아웬에게 손을 뻗으려는 아르크는, 차라리 로운을 얽매는 아웬이 없다면. 로운과 더 큰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034 다로시
035 진실
036 악의적 이별
037 돌아보며
038 계획
039 진실을 향하여
040 돌아본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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