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군(皇軍)'이라는 표현 또한 많이 사용되는데, 이는 '황제의 군대'라는 뜻이다. 보통 이 명칭이 자주 등장한 성덕시대, 융희시대 말기 이전에는 더 예스러운 표현인 황사(皇師: 똑같이 황제의 군대)가 더 자주 쓰였다. [[제 2차 동아시아 전쟁]] 당시 한국군과 싸워야 했던 중국인들은, 이 군대의 황군들을 누리 황(蝗)자를 써서 황군(蝗軍), 즉 '메뚜기 떼 같은 군대'라는 멸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황군(皇軍)'이라는 표현 또한 많이 사용되는데, 이는 '황제의 군대'라는 뜻이다. 보통 이 명칭이 자주 등장한 성덕시대, 융희시대 말기 이전에는 더 예스러운 표현인 황사(皇師: 똑같이 황제의 군대)가 더 자주 쓰였다. [[제 2차 동아시아 전쟁]] 당시 한국군과 싸워야 했던 중국인들은, 이 군대의 황군들을 누리 황(蝗)자를 써서 황군(蝗軍), 즉 '메뚜기 떼 같은 군대'라는 멸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흔히들 동시베리아 전쟁 당시 한국군이 시베리아에서 보여준 [[총폭탄 전법]]이나, [[제국결사옹위정신]]같은 기행 때문에 한국군을 현 타이완 인민군과 같은 형편없는 수준의 군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으나, 대한제국의 서구화 직후에는 일본에 이어 가장 강력한, 특히 육군 면에선 일본을 넘는 가히 아시아 최강의 군대였다<ref>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아시아에서 일본군을 제외하면 '''한국군을 막을 수 있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일본군도 해군에선 압도적이었으나 육군의 무장과 위력 면에서는 한국군보다 모자랐고, 더불어 고조라는 한국사 최고의 성군 중 하나가 정부 권위의 강화를 위해 개화 과정에서 체제 및 군사력에 급진적인 변화를 준 것 또한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다만 중기부터는 늘상 압승으로 끝나는 침략전쟁만이 계속되었고, 군 내 원로들도 다 사라지고 군국주의 정신도 식민지를 넘어 전국에 퍼진데다, 소련과 시베리아에서 총격전을 주고받던 말기가 되었을때는 마치 옆나라 일본의 군대를 연상시키는 막장군대로 거듭났다.</ref>.
흔히들 동시베리아 전쟁 당시 한국군이 시베리아에서 보여준 [[임전무퇴 (아침해의 원유관)|임전무퇴]]나 [[결사보위정신]]같은 기행 때문에 한국군을 현 타이완 인민군과 같은 형편없는 수준의 군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으나, 대한제국의 서구화 직후에는 일본에 이어 가장 강력한, 특히 육군 면에선 일본을 넘는 가히 아시아 최강의 군대였다<ref>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아시아에서 일본군을 제외하면 '''한국군을 막을 수 있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일본군도 해군에선 압도적이었으나 육군의 무장과 위력 면에서는 한국군보다 모자랐고, 더불어 고조라는 한국사 최고의 성군 중 하나가 정부 권위의 강화를 위해 개화 과정에서 체제 및 군사력에 급진적인 변화를 준 것 또한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다만 중기부터는 늘상 압승으로 끝나는 침략전쟁만이 계속되었고, 군 내 원로들도 다 사라지고 군국주의 정신도 식민지를 넘어 전국에 퍼진데다, 소련과 시베리아에서 총격전을 주고받던 말기가 되었을때는 마치 옆나라 일본의 군대를 연상시키는 막장군대로 거듭났다.</ref>.
현대 대한국의 국가 방위를 책임지는 단체인 대한 국방군도 엄연히 군사조직이지만, 국방군이라는 명칭이 붙는지라 기본적으로 대한제국군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1945년 9월 9일에 공식적으로 해산된 대한제국의 군사조직을 의미한다. 종종 옛 한국의 군대라 해서 '구 한국군'이라고도 부르지만, 이 경우엔 칭제건원 하기 이전의 대한국도 포함될 수 있기에 통상적으로 대한제국군이라는 명칭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따라서, 본 문서에서 언급되는 한국군은 항복 이후 해산된 그 군대를 뜻한다고 보면 된다.
'황군(皇軍)'이라는 표현 또한 많이 사용되는데, 이는 '황제의 군대'라는 뜻이다. 보통 이 명칭이 자주 등장한 성덕시대, 융희시대 말기 이전에는 더 예스러운 표현인 황사(皇師: 똑같이 황제의 군대)가 더 자주 쓰였다. 제 2차 동아시아 전쟁 당시 한국군과 싸워야 했던 중국인들은, 이 군대의 황군들을 누리 황(蝗)자를 써서 황군(蝗軍), 즉 '메뚜기 떼 같은 군대'라는 멸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흔히들 동시베리아 전쟁 당시 한국군이 시베리아에서 보여준 임전무퇴나 결사보위정신같은 기행 때문에 한국군을 현 타이완 인민군과 같은 형편없는 수준의 군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으나, 대한제국의 서구화 직후에는 일본에 이어 가장 강력한, 특히 육군 면에선 일본을 넘는 가히 아시아 최강의 군대였다[3].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아시아에서 일본군을 제외하면 한국군을 막을 수 있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일본군도 해군에선 압도적이었으나 육군의 무장과 위력 면에서는 한국군보다 모자랐고, 더불어 고조라는 한국사 최고의 성군 중 하나가 정부 권위의 강화를 위해 개화 과정에서 체제 및 군사력에 급진적인 변화를 준 것 또한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다만 중기부터는 늘상 압승으로 끝나는 침략전쟁만이 계속되었고, 군 내 원로들도 다 사라지고 군국주의 정신도 식민지를 넘어 전국에 퍼진데다, 소련과 시베리아에서 총격전을 주고받던 말기가 되었을때는 마치 옆나라 일본의 군대를 연상시키는 막장군대로 거듭났다.